그래, 정신이 아픈데 어떻게 사람을 가르쳐?

"죽지 마요, 제발. 당신은 저한테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by 어진의

* 글쓴이가 경험한 가정 폭력, 자살 사고 등을 다루고 있으니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너 과 설문 조사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 애래" 에서 적은 바와 같이, 나는 객관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울 정도의 갖은 폭력을 겪었다. 그 모든 경험은 지금도 내 몸에 질병 코드로 치환되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원인 불명의 편두통, 그 외에도 자잘한 심신 고장이 무시무시하게 많이.


만성종합병원상태인 내가 하루에 반드시 먹어야 하는 약만 이미 십수 알이다. 원인 불명의 신경 통증으로 온몸의 살갗이 타오르는 통증을 겪거나 공황발작으로 심장이 쥐여 짜이는 것만 같을 때는 그럴 때만을 위해 별도로 처방된 약이 있어 하루에 총 스무 알을 먹을 때도 있다.


가장 급한 부분만 때워가며 어떻게든 견디고 있는데도 식비보다 병원비가 더 나간 달에는,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내 몸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까? 약으로 어떻게든 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컨디션임을 알지만, 동시에 거식증으로 약조차도 토해버릴 때는 희망 고문을 당하는 것만 같아서.


그래도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꼭 시간을 내어 작가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대체로 친구가 서울까지 와주지만, 지난번에는 내 몸상태가 아주 좋아 인천까지 갈 수 있었다. 내 얼굴보다 훨씬 큰 경양식 돈가스를 사주고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으라고 격려해 준 친구 앞이라 마음이 편해서, 어떻게든 절반 정도는 먹을 수 있었다.


브런치에 옛날 일을 적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건강할 때 절필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한 번도 건강한 적이 없어 못 이루겠다."라고 말하며 웃는 내게는, "나는 지금 천재가 계속 글을 써주니 기뻐해야 좋을지 아니면 그냥 네 말에 엉엉 울어야 좋을지 모르겠다!"하고 답하는 친구가 있다. 정말 이기적이지만 내 친구는 꼭 내 장례식에서만 울어주었으면 좋겠다. 그전까지는 나와 함께 웃기만 했으면.






내가 다닌 사회교육과는 일반사회전공과 공통사회전공으로 나뉘어서, 일반적으로 다른 과에서 교직이수나 복수전공을 택하는 시기인 2학년 때 공통사회전공을 고르지 않으면 역사 계통 교과를 가르칠 수 없었다. 그러니 고3 담임선생님처럼 근현대사를 가르치려면 나는 공통사회전공을 해야 했지만 철학과 복수전공을 택했다. 이것이 얼마나 분위기 파악을 못한 행동이었는지, 과 전체에서 공통사회전공을 택하지 않은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가 끌어안은 수많은 질문의 답을 원했다. 선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자살은 어떤 때라도 안 되는가…. 백만 권의 장서가 있는 대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닥치는 대로 씹어 삼켰던 책들은 철학과의 강의계획서들과 함께 제대로 된 목차가 되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2학년 1학기까지 여전히 과 수석을 유지했기에 사회교육과 교수님들은 내 일탈을 웃어넘기셨다. 쉬는 시간 10분 안에 철학과 강의가 있는 다른 건물로 달려가야 하는 나를 위해 조금 강의를 일찍 끝내주시기도 하셨지.


식이장애, 특히 거식증은 자각 증세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나는 어째서인지 목구멍 안으로 쑤셔 넣어도 도로 나와버리는 밥 대신, 캔커피 하나와 담배 한 대로 끼니를 때웠다. 흡연구역의 벤치에 쪼그려 앉아 논리학의 기초 문제 중 하나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은 조금 즐거웠다. 심신 건강이 바짝 깎여나가는 느낌이 생생했지만, 적어도 대학에서는 내가 계속 수석을 한다고 계단에서 떠미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복수전공을 시작하고 두 번째 학기, 나는 결국 수석 자리를 놓쳤다. 철학과 2학점짜리 강의 하나에서 B+을 받았다. 부모님의 성화로 본가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밖에 없던 날 오빠에게 배를 걷어 차이고, 그 다음날 하혈을 하며 시험을 쳤기 때문이다.


오빠는 내가 담배를 피운다고, 우선 뺨을 때렸다. 나보다 20cm는 큰 남자가 때리니 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았을 때 발에 턱을 걷어차였고,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을 때 다시 배를 걷어차였다. 나는 안방으로 기어들어가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했는데, 오빠는 그제야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다 너를 사랑해서 그래."라고 하며 끌어안았다.


나는 슬슬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하루 3시간을 자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과 수석을 하고 월세와 생활비를 버는 동안 내 정신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깔깔 웃으면서 친구에게 "쥐약은 맛있을까?" 하는 소리를 하고, 정말 약국에서 쥐약을 사려다가 내 상태가 이상함을 알아챈 약사에게 만류당하고.


자살하자.

오늘 이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하면,

이 PPT를 완벽히 외우지 못하면,

그래서 A+를 받지 못하면, 자살하자.


그렇게 버텨왔는데 정말 A+를 못 받게 된 것이다! 그것도 나 자신의 나태함이 아니라 나를 무자비하게 다루는 주변 환경 탓에. 그렇다면 슬슬 편해져도 되지 않나? 나는 책임을 다했다! 이 이상은 내 능력으로도 어떻게 못하는 일이다! 나는 어머니처럼 죽음 뒤의 진짜 삶을 바라지도 않으니, 자살할 자격 정도는 생긴 것 같다! 와!


하하, 신난다. 죽을 계기가 생겼어.

사랑은 무슨? 개새끼도 그렇게 후려패지 않겠는데.

내가 자살한 뒤에 꼭 인생 지랄 났으면 좋겠다.


이후의 기억은 아주 모호하다. 단편적인 기억 조각만이 남아있다. 공황에 빠져 미친 것처럼 소리치르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다가, 당시에는 그저 같이 글을 쓰는 친구였던 파트너에게 문자를 했다. [이제 죽으려고 해. 고마웠어요.] 출혈과 수분부족으로 끝내 기절하고 내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아침이었는데.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수십 통이 와 있었다.


죽지 마요

제발

당신은 저한테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지금 갈게요

왔어요

문 좀 열어줘요

벌써 죽은 것 아니죠

전화 좀 받아요

제발

제발


나는 자취방 문까지 기어가 문을 열었고, 그 사람은 경찰에 신고할 생각조차 못하고 철문 바깥에서 웅크린 채 내내 울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를 이토록 번거롭게 만들고도 죽지 않은 나를 보고 형편없는 얼굴로 웃었다.


"다행이다."라고 말해주었고,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사랑을 깨달았다.






예민하고 병약한 천재의 삶에 완전히 말려든 내 파트너는 사실 이 글도 읽고 있다. 내 수많은 필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는 것은 이 사람뿐이다. 내 모든 조각을 긁어모아 완전한 형태를 맞추어 품에 안고 어여삐 여길 수 있게 허락하는 이는, 죽을 때까지 이 사람뿐이다.


이 무례만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보는 사람까지 다 괴로워질 우여곡절 끝에

나는 끝내 첫 번째 휴학을 하고, 파트너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래, 정신이 아픈데 어떻게 사람을 가르쳐? 하고

나 자신을 구제불능으로 여기면서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파트너의 말에 한껏 기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직 덜 죽었을 뿐인 상태였고,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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