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륜(不倫)은 무엇입니까? 하루 한 편 단막극, 상상 불륜.
병원에 도착한 남유경에게 의사는 걱정스럽지도,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게 말했다.
“검사 결과 조울증 소견이 있습니다.”
“조울증? 그게 뭐죠? 우울증인가요?”
“우울증을 포함하는 게 조울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울증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쳐져 있는 상태라고 하면 조울증은 하늘과 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겁니까?”
“누구나 감정의 변화를 겪습니다. 다만 환자분은 감정선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유지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양극단을 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력으로 조정하기 힘든 상태이시고요.”
“하….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여건이 되신다면 입원치료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이전에 정신과 진료를 받으신 적이 있으실까요?”
“아니요. 난생 처음입니다.”
“그러면 약물치료부터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몸에 나쁘지 않나요?”
“모든 약물 치료에는 부작용이 수반됩니다. 하지만 정신의학과에서 처방되는 약물은 가장 표준화되고 검증된 치료과정입니다. 혹여나 부작용이 있다면 약을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무슨 약을 얼마나 오랫동안 투여받아야 하죠?”
의사는 그에게 약의 종류와 효능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 안내했다. 하지만 그는 집중하기는 커녕 멍하게 앉아 열심히 나부끼는 의사의 입술만을 보았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 의사의 말소리가 서서히 흩어지며 화장실에서 겪었던 현기증이 재현되었다. 시야에 반점들이 하나 둘 피어나 노이즈가 끼더니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내 균열이 일어날 듯하여서는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양도광 이사의 집무실에서 김하은이 했던 말이었다.
자유의지란 이미 뇌에서 먼저 내린 결정에 불과합니다. 즉, 모든 인간은 스스로 결정하기에 앞서 이미 결정된 존재인 것입니다.
그녀의 말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약을 이주일 치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네?”
의사에게서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남유경은 주도권을 잡은 듯해 묘한 쾌감을 느꼈다.
“약을 복용하면 제가 달라지겠죠. 당연히 검증된 치료법일 테니까요. 하지만 약물을 통해 정신을 조종하는 걸 과연 치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약물 치료에 대해 환자분들께서 많은 염려를 하시기도 합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아니요. 굳이 달래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단지 철학적인 소견을 말씀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환자분, 우리는 지금 환자분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의학에 관해서라면 당연히 선생님께서 전문가시겠죠. 하지만 저는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니 그 부분에 있어 선생님께서 왈가왈부 하실 수는 없는 겁니다.”
“무슨 뜻이실까요?”
남유경이 보기에 의사는 애써 불쾌함을 감추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안목은 정확했다. 실제로 의사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 기분이 상당히 언짢았다. 남유경은 머리 위에서 노니던 이를 끌어내린 듯하여 몹시 통쾌했다.
“리벳 실험 아십니까?”
“리벳 실험이요?”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인지하기도 전에 판단을 마쳐둡니다. 그러니 우리의 자유의지란 허상인 거죠. 따라서 우리는 현재가 아닌 두뇌의 미래를 살아가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두뇌와 다른 시간선에서 살며 두뇌의 의지를 재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흥미롭군요.”
의사는 무언가를 빠르게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유경은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제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되든 그것은 모두 이미 결정된 사항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아요. 두뇌의 연산 처리에 반응하는 피지컬 컴퓨터일 뿐이니까요. 다시 말해 인간은 알고리즘에 종속된 유기체인 것입니다.”
“그래서요?”
“이미 지배된 상태에서 약물을 복용한다면 저의 의지, 그러니까 두뇌의 프롬프트라 하는 게 훨씬 정확하겠죠? 그 프롬프트를 구성하는 파라미터에 변수가 추가됩니다. 이는 복잡한 연산 과정을 초래할 뿐이죠. 저는 제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 병적인 상태 또한 제 자신이라는 겁니다. 약물로 점철된 선생님의 자유의지가 저의 알고리즘을 침범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만, 치료를 거부하겠습니다.”
“환자분, 치료는 선생님의 자유 의지를 파괴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의지가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보조하는 과정입니다.”
“그 자유의지가 무너지는 것 또한 자유의지의 발로입니다. 지금 드리는 이 말씀도, 저의 자유의지일까요 아니면 두뇌의 리스폰스일까요? 사실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약물 따위에 지배 받는 약해 빠진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죠. 저는 저 스스로를 등대 삼아 나아갑니다.”
“환자분께서는 치료가 시급하십니다.”
“환자의 선택권이라는 것도 있다지요. 저의 자유의지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남유경은 그대로 수납을 마치고 퇴원했다. 밖으로 나오니 거리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노란 하늘에 청록빛 태양이 떴고 자홍색 구름이 불기둥처럼 타올랐다. 때마침 남유경의 스마트폰에 연락이 왔다. 확인해보니 처음 보는 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용기내어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남유경 주임님 맞으실까요?”
앳된 여자의 목소리였다.
“맞습니다만.”
“인사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저는 마케팅부의….”
김하은. 김하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