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5분
큰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5분 남짓. 주위를 다 둘러보고 슬렁슬렁 걸어도 10분을 넘지 않는다. 어릴 때 그 길이 훨씬 멀게 느껴졌던 건 아마도 대나무 밭과 작은 저수지를 끼고 있는, 당시 아무도 살지 않던 큰집이 무섭게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지금보다 내 다리가 훨씬 짧기도 했고. 동네 담벼락이 내 머리를 넘지 않을 만큼 커버린 지금은 딱 5분!!. (아, 마치 내가 걸리버가 된 것처럼 썼지만 동네 담은 애초에 그리 높지 않았고 꼬꼬마 시절의 나와 비교했을 때 큰 거지 지금도 내 키는 작은 편이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볏짚단 들을 우리 집과 큰집 창고에 쌓아두었는데 그것이 당시 키우고 있던 두 마리 소의 1년 치 양식이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우리 집 창고에 있는 볏짚이 다 떨어지면 큰집에 있는 볏짚을 다시 우리 창고로 옮겨와 소들을 먹였다고 한다.
별과 노래, 아빠 그리고 나
까만 어느 밤.
그날이 오늘처럼 개구리가 많이 우는 봄과 여름 사이였었는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하늘은 짙고 깊었고 그리 춥지는 않았다. 아빠는 경운기를 몰아 큰집으로 갔고 볏짚단을 산처럼 쌓아 올려 다시 돌아왔었다. 산같이 높은 짚단은 역시 꼬꼬마 신효정의 눈높이 기준이다. 그날 아빠를 쫓아 나선 나는 탈탈거리는 빈 경운기를 타고 갔다가 가득 쌓인 푹신한 소 밥 위에 누워서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그 잠깐의 시간이 내게는 꽤나 길게 느껴졌다. 지루했던 게 아니라 빨리 끝나지 않아 좋았다. 행복한 시간은 느리게 흘러도 괜찮다. 그것보다 훨씬 더 느려도 괜찮다...
흔히들 쓰는 표현처럼 그날 하늘에 별은 쏟아질 것 같이 많았다. 가끔은 그 사이로 별똥별이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별자리를 찾아 읊어댔다.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마치 쏟아지려는 별들을 그 자리에 꼭꼭 박아 넣듯이 말이다. 목청이 좋고 노래를 좋아하던 아빠는 이런 시간에는 늘 노래를 불렀다. 경운기 엔진 소리에 묻혀 무슨 노래인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탈탈 거림을 뚫고 나오는 그 흥얼거림을 사랑했다.
행복한 시간은 소음 속에서도 아름답기만 하다.
오히려 그 경운기의 소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그날의 따뜻하고 뭉글뭉글한 기분들을 다 기억해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저건 큰 곰인가? 작은 곰인가??”
“흥얼흥얼”
“탈탈탈.....”
아름다운 삼박자와 그날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