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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n 03. 2020

나와 내 주변 환경을 바꾸고 싶을 때

취향은 속력보다 방향을 정해주니까

사회의 분위기나 남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오롯한 기준으로 '호불호'를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쉽게 흔들리는 법이 없다. 자기 나름의 기준 안에서 싫은 것을 과감하게 외면하는 철칙을 고수할 뿐이다. 이건 자신을 지켜내며 삶을 운영하는 인생의 철학과 관계한 일이기도 하다. 싫은 것을 분명히 하니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고, 삶의 방향성이 뚜렷해져서 자기 색깔이 채워진다. 퍼스널리티가 생기는 거다.


이건 곁에 있는 사람들과도 싸울 일이 없 것이, 개인 취향의 문제 굳이 논리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 그때그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서로 배려하면 갈등이 생길 이유도 없으니까. 아마 그런 것에 갈등이 생길 상대라면 호불호 분명한 사람이 그를 그때까지 곁에 리도 만무하다.


말이나 행위, 물건이나 취미, 사람이나 스타일 그 무엇이 되었든 호불호가 있다는 건 다시 말해, 그에 대해 평소 자기만의 정의를 내리는 사유의 시간이 충분히, 수시로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 않나. 어렸을 적부터 현재까지 자라온 환경 속에서 영향도 막대하고, 읽은 책이나 데인 상처도 호불호에 영향을 준다.


어떤 사람이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독서량, 비슷한 상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건 외적인 작용이어서 그렇다. 내적으로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곱씹고 사유보아야 비로소 변화가 일어나는 법이다. '난 그거 싫어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내적•외적 상황에 맞닥뜨려야 할까. 그걸 정면으로 부딪쳐본 이만이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안다.


세상에는 세 부류 사람이 있다.

1. 싫어하는 것에 질질 끌려가며 당하고 참으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

2. 싫어하는 꼴 보기 싫어서 저항하거나 싸워 끝내 세상에서 그것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사람

3. 싫어하는 것 과감히 외면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


1번은 평범하거나 찌질하고

2번은 비범하거나 또라이이고

3번은 현명하거나 똥고집이다.


본래 '정상이기만' 한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이가 있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를 구원해줄 신 아닌지.


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싫어하는 것을 먼저 분명히 해보자. 그것에 시선을 두지 말고 과감히 방향을 틀어 버리는 연습을 해보자. 몇 년 후에는 자신조차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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