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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l 05. 2020

"이름을 바꾼 마음이면 못할 게 없어"

제일 친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초중고대학교 학창 시절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남은 친구가 딱 한 명 있다. 동창회 따윈 과거에도 안 나갔고 지금도 안 나가며 미래에도 나갈 생각이 1도 없는 나에게 신비롭게도 그 고등학교 친구만은 베프로 남아있다.


알고 보니 공부머리가 상당히 좋은 녀석이었는데, 전교 1~2등을 넘어 모의고사 성적이 전라북도 1등까지도 기록했다고 한다. 그건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졸업 후 S대를 갈 정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데 그가 나에게 다가와서 툭하고  건 일이 우연히 친해진 유일한 계기다.


"너는 왜 밥을 맨날 혼자 먹냐?"


이것이 그 친구의 첫마디. 나는 속으로 (그러는 넌?)이라고 외쳤지만 그냥 무시하고 계속 먹었던 것 같다. 그 친구도 동창들 사이에서 '아는 게 많고 선생님들이 유독 좋아해서 질투를 한 몸에 받는 ' 모범생 타입이었는지, 아니면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따돌림을 는지 구내식당에 혼자 자주 다. 럴 때마다 녀석은 내 테이블에 와서 합석했다.


나는 하고 달달한 돈가스가 3000원이라 자주 사 먹곤 했다. 그 돈가스에 딸린 옥수수 콘을 친구는 곧잘 뺏어먹었다.


"너 이거 맨날 남기더라? 내가 먹어도 되지?"


그렇게 전교 꼴등까지 기록한 공부에 관심이 1도 없던 나와(OMR답안지에 엽기토끼를 그려 꼴찌가 됐) 전라북도 1등까지 기록 중이던 모범생의 만남이 시작됐다.


초중고 내내 친구와 오래 사귀는 법도 몰랐고, 상처도 잘 받는 예민한 소심인이었다. 그 친구도 가끔은 신경 쓰이는 말을 하곤 했지만 나를 내치진 않았다. 간혹 내가 생각지 못한 생각들을 내게 많이 건네주는 일이 난 흥미로웠다.

그 친구 따라서 선택과목을 '경제'로 선택해 수강하기도 했다. 결과는 그 친구는 경제학과에 진학했고, 나는 점수가 더 떨어졌다는 건 비밀로 하고 싶었지만 이미 써 버렸네.


아무튼 우리가 졸업하고 나서도 자주 보고, 군대를 가서도 면회를 가고, 그 친구가 결혼을 할 때도 우리 어머니와 함께 서울까지 가서 축하해줄 정도로 늘 함께인 막역지우가 되었다. 더 신기한 건 그 친구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회사 동료 출신이란 사실이었다. 인연은 인연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그 친구로부터 아쉬움을 살짝 느낀 사건이 생겼다. 바로 나의 '개명'사건. 이름을 비싼 돈 주고 바꿨는데, 바꾼 이름으로 안 부르고 자꾸 예전 학창 시절에 부르던 이름으로 부르는 게 아닌가.


결국 매번 예전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친구에게 백기를 들고, 그래 넌 특별한 내 친구니까 허용해줄게. 하고 설득을 포기했다. 며칠 후 친구의 명언은 함께 맥주를 마실 때 나왔다. 가 말했다.


난 언젠가 '강의'를 하고 싶어.
책도 계속 써서 작가로서도 자리매김할 생각이야.
근데 잘 될랑가는 모르겄다.


이 말을 듣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시 준비를 하던 친구가 응원의 한마디를 해주었다.



야, 이름을 바꾼 마음이면 못할 게 없어.
그게 얼마나 큰 결심 인디.
넌 참 특별해.
나한테 없는 게 있거든. 넌 잘 될 거여.


그 친구가 이 말을 자기가 해줬단 사실을 기억할는지는 모르겠다. 난 힘들 때마다 이 말을 홀로 꺼내놓고 반복 재생하곤 한다.


'이름을 바꾸는 마음'이라.. 요즘이야 개명이 흔해졌지만 내가 개명신청을 하던 당시만 해도 이제 막 개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첫 시기였다. 흔하지는 않았던 거다. 20년을 넘게 하나의 이름으로 살아오던 내가 휴대폰 번호 바꾸듯이 한 순간 이름을 바꾼 일이 그 친구가 보기엔 특별해 보였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내가 힘들 때마다 아낌없이 손을 내밀어 주고, 직설화법으로 정신 차리게 해주곤 했다. 가장 좋았던 건 내 자존을 회복하는 말을 자주 해주었다. 엘리트 집단에 입성으니 노는 물이 달라서 가볍게 나 정도는 무시할 만도 한데, 그딴 거 없이  한결같은 의리를 발휘해준 고마운 친구였다.


너 정말 흔치 않게 살았잖아.
나나 내 주위에 사람들보다
넌 진짜 스토리를 많이 품고 있는 친구여.

그래서 네가 작가도 된 거 가텨.
강사를 해도 잘 해낼 거여.
너 같은 친구가 작가하고 강사를 해야지.
맞어. 그려야지.


이름을 바꾼 계기는 그 이름으로 살아온 지난 과거를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깨끗이 잊어버리고 싶어서였다. 법적으로는 개명 사유에 '발음이 어려워서'라고 써서 통과했지만 그보다 더 진한 사유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고픈 희망의 결단이었다.


그와 동시에 성형외과 상담까지 받아 봤는데, 피부 트러블이 당시 심해서 견적과 소요기간이 상당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걸 아예 할 수 없어서 이름 바꾼 걸로 그쳤지만, 그때 그 독한 마음은 이름뿐만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많이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그다음은 지금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수순이 필요했다. 이걸 친구의 말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이름을 바꾼 마음이란 단순히  글자를 바꾼 사실을 뛰어넘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개명 이후의 삶이다. 친구가 나의 과거 '스토리'가 강사의 기반이 되고 작가의 콘텐츠가 된다고 격려해줬을 때, 나는 지금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됐다. 인정하고 직면하기로 했다. 처에 매몰되고 보잘것없는 나의 과거가 아니라, 그걸 딛고 다시 시작하려는 굳은 의지의 인간이 나라는 걸 사랑스러워하기로 한 것이다.


과거의 나라고 해서 지금의 나와 무관하지 않다. 누구나 사람은 바보 같은 시절이 있고, 잊고 싶은 순간이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변화하고자 하는 굳은 마음, 그것을 관철시켜 나가는 담대함이라면 못할 게 무엇일 쏘냐.


이름을 바꾼 마음은 상징이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만이 전환점을 맞이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걸 선택한 내가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실제 다르게 살아간다는 점이 고무적인 거다. 누구든 '이름을 바꾸는 마음'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나를 정의하는 마음이다. 부캐든 필명이든 가면을 쓰거나 배역을 맡 것이든 간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 자기 마음이면 충분하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고 지속되는 법이니까.


어쩌면 나에게는 그게 퍼스널 브랜딩의 시작이었다.


MBC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중에서
극 중 김삼순은 다른 이름으로 개명 신청을 한다. 바로 이어지는 회상 씬. 대학 MT에서 '삼순이'라는 이름에 놀림을 받고 울며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타는 장면이다. 택시 기사는 삼순의 사연(이름이 촌스럽다고 놀리잖아요)을 듣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그런다고 울어. 애도 아니면서~ '삼순이'만 아니면 됐지~"

삼순이는 이에 오열한다.
실제 이 드라마가 인기를 많이 얻은 덕분에, 개명 절차가 수월해졌고 개명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드라마 방영 전에 비해 수십 배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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