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영 글쓰기 Aug 09. 2020

내가 싫어하는 걸 분명히 하는 것이 주는 놀라운 변화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 이동영이 이동영하는 삶을 꿈꾸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 다행이’는 나를 '인간 이동영'답게 만들어준다. 그건 다행이가 고양이다운 덕분이다. 아니 고양이도 다 똑같지 않으니까, ‘다행이답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행이는 ‘다행이로서’ 산다. 꽃을 두고서 ‘꽃답다, 꽃스럽다’라고 굳이 말하지 않듯이 다행이도 그저 다행이로서 온전히 존재할 뿐이다.          


나에게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라도 껌딱지처럼 종일 붙어있는 다행이란 녀석은 '시크'하다. 내가 오라고 할 때는 안 오고, 자기가 오고 싶을 때만 ‘냐아웅’하면서 꼬리를 치며 온다. 내가 바닥에 나란히 누워서 자꾸 쓰다듬으려 면 녀석은 가장 꼭대기에 점프해 올라가 나를 내려다본다. 샤워 대신에 고양이 전용 바디 티슈로 몸을 닦아주면 녀석은 자기 혀로 다시 처음부터 구석구석 제 몸을 그루밍한다. 

              

다행이는 자주 발라당 배를 보이고 눕는데, 만져달라는 게 아니라 편안한(기분 좋은) 상태라는 걸 나에게 보여주는 바디랭귀지다. 그때, 다행이 배를 손으로 만져주면 녀석은 바로 앙-하고 이빨로 물어 버린다. 세게 상처를 내려고 무는 게 아니다. 배를 만지는 게 싫다는 걸 알리는 정도로 무는 ‘시늉만’ 한다.

고양이 부위별 스킨십 반응도

전혀 아프지도 않고, 상처는 커녕 약간의 자국조차 남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물었던 내 손의 그 지점을 혀로 날름날름 핥아준다. 싫어하는 걸 분명히 표현하되, 관계의 선은 지키는 것이다.


이런 고양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다행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 인간인지 한참을 생각다. 인간 이동영으로서 싫어하는 것. 그건 바로 다른 시선을 신경 쓰느라 잊고 살았, 내가 그어 놓은 ‘선’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

나는 선 넘는 사람이 제일 싫어

오랜만에 만났을 때 삶을 부쩍 업그레이드한 지인들을 보하나같이 비슷한 점이 있었다. 본인이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해서 자신으로서 삶을 개척한 모습이었다.


다시 전처럼 가난해지는 게 지독도 싫어서 돈을 악착같고 투자해 알부자가 된 친척. 시스템 없는 작은 회사에서 주말까지 붙잡혀 대책 없이 일하는 게 싫어서 세계적 기업에 취업해 자리잡은 . 더는 연애로 방황하며 상처 받는 게 너무 피곤하고 끔찍이도 싫어서, 결혼하고 정착해 애를 둘이나 낳아 열심히 사는 동기 녀석. 그들의 업그레이드는 한순간 로또 당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싫은 것이 지배하는 삶의 반복그치 자기다움정확히 지향하기 시작했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끝내 성취했으며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나는 다행이와 지인들을 보며 깨달았다. 나와 내 주변 환경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내가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일이란 걸. 그것이야말로 주체적으로 사는 비결이었다. 나 역시 스스로 솔직해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불행하게 사는 건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에서 머물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먼저 관계를 정리했다. SNS를 하며 자꾸 인정 투쟁하는 내가 싫어 페이스북 친구를 몇 만여 명에서 0명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 글에 악평을 다는 악플러의 댓글을 전부 삭제하고, 신고 조치했다. 오랫동안 함께 했지만 내 감정을 힘들게 하는 사람과 관련 모임도 과감히 끊어 버렸다. 처음만 불꽃 같고 시간이 맞지 않사람과의 연애도 마무리를 지었다. 회사도 그만뒀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도 멈추고, 나에게 툭 하면 상처를 준 사람들의 연락도 전부 차단했다.


나다움을 위한 모든 끝은 내 다음을 만드는 법이라고 믿었다. 그 새로운 시작은 내가 진짜로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어야 했다. 개인 페이스북을 끊은 대신 브런치를 시작한 것이 1만 구독자로 이어졌다. 관계 정리는 내가 어려운 시절 나를 도와준 몇몇 소중한 친구를 추리는 계기로 이어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모임으로 이어졌다. 퇴사는 프리랜서 작가와 강사로서 독립해 자리잡은 지금 내 모습으로 이어졌다. 입사동기에 자소설을 쓰 취준생의 모습이나 겨우 입사해 내 성향 맞지않는 조직생활에 매번 나를 끼워 맞춰야 하는 직장인의 모습은 이제 내 일상엔 없다.        

모든 게 새로워졌고, 나다워졌다. 내가 싫어하는 걸 분명하게 하는 작업은 나를 이동영으로서 온전히 우뚝 서게 했다. 만약 새롭게 사랑하게 된 이 모든 내 다음의 것들이 나를 또 괴롭히면 나는 어떻게 할까?


우선은 다행이처럼 이빨(이)로 앙-하고 문 다음, 당신(혹은 그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괴롭힘이 싫어서 그런 거란 제스처를 취하겠다. 그리고 내 다음 전략을 세울 것이다. 나에겐 분명한 선이 있고, 그 선이 내가 싫어하는 것임을 확실히 할 라고. 나는 그로써 성장해가며 그 정기적 업그레이드(성장의 거듭)가 내 생의 목적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며 살아갈 것이다.


매일 공개 글쓰기 24일 차 no.24


이전 08화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