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이야기를 꺼내면 반응이 두 갈래로 갈린다.
한쪽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한다. 불평등이 심각하고, 부자들이 너무 많이 가져갔으니 돌려줘야 한다고. 또 다른 한쪽은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일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냐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손해 보는 구조가 말이 되냐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입장 모두에 동의하지 않는다.
복지는 빼앗는 것도 아니고 시혜를 베푸는 것도 아니다. 나는 복지를 사회적 보험으로 본다. 그리고 그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평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안전망이 있어야 하는 위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를 천천히 풀어보겠다.
먼저 한국 복지의 현실부터 짚자.
한국은 OECD 국가 중 복지 지출 비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세금도 적게 걷고, 복지도 적게 준다. 저부담 저복지 구조다. 거기다가 한국 복지의 핵심은 선별 복지다. 즉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에게만 지원한다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왜 문제인가. 첫째.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 기초생활수급자 기준이 너무 좁아서 실질적으로 빈곤하지만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도 밖에 있다. 둘째. 역설적으로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이 편법으로 받는 구조가 생긴다. 재산을 숨기거나 가족 관계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자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셋째. 복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낙인이 된다.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심사받아야 하는 구조는 복지를 시혜로 만들고 수급자를 열등한 존재로 분류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특정 범주에 종속시키는 구조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이 보편복지다. 조건 없이 모두에게 기본적인 안전망을 제공하고, 고소득자는 세금으로 더 많이 환수하는 방식. 행정 비용이 줄고, 낙인이 사라지며, 사각지대가 줄어든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효율성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왜 부자들이 이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하는가. 여기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원래 봉건 귀족의 윤리에서 나왔다. 능력과 지위를 가진 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진다는 논리다. 이것은 평등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위계를 전제로 한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지, 모두가 같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도덕적 훈계에 그치지 않으려면 왜 부자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 논거가 있어야 한다.
논거는 이렇다. 부자도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이것이 감정적 협박처럼 들릴 수는 있지만, 사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된 현실이다. IMF 외환위기 때 중산층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이 망하고, 사기를 당하고, 갑자기 아파서 일을 못 하게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오늘 상위 10퍼센트에 있는 사람이 10년 뒤에도 거기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부자들이 지금 복지 시스템을 탄탄하게 만들어두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시혜가 아니다. 자신이 나락에 떨어졌을 때 받을 안전망을 미리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타심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 자기 이익의 문제다.
여기에 더해 가톨릭 사회 교리에서 말하는 연대성 원리를 덧붙일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은 서로에 대해 구조적 책임을 진다. 이것은 강제적 평등화가 아니라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상호 의무다. 내가 이 사회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회의 법, 제도, 인프라, 그리고 다른 구성원들의 노동 덕분이기도 하다. 그 구조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존하는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복지를 이렇게 정의한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 누구나 필요로 할 순간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두는 구조적 안전망이다. 그 비용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이 안전망을 유지할 더 큰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복지의 문제는 이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저부담 저복지와 선별 복지의 결합은 정작 필요한 사람은 못 받고,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은 편법으로 받으며, 중산층은 낸 것에 비해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느끼는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에서는 복지가 계속 정치적 갈등의 소재가 된다. 내 세금이 저 사람한테 가는 것이 불만인 구조. 이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은 더 보편적인 안전망을 만들어서 나도 언젠가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당신이 복지를 반대하는 이유가 내가 낸 세금이 아깝기 때문이라면, 사실 그 세금이 당신을 위한 보험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복지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면, 그 비효율을 없애는 방향은 복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설계하는 것이다.
복지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설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