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라는 단어는 쉽게 소비된다. 특히 병역 담론에서 그렇다. 이를테면 "남자도 군대에 가는데 여자도 가야 공정하지 않냐"라는 말은 직관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직관적으로 그럴듯한 것과 실제로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 사이에는 종종 꽤 넓은 간극이 있다.
우선 공정의 사전적 정의는 "공평하고 올바름"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로 공평하기만 해서는 부족하고, 둘째로 올바름이 빠지면 공정이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을 똑같이 부당하게 대우하는 건 공평할 수 있어도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올바르지 않은 건 절대로 공정하지 않다.
그렇다면 현재의 징병제가 올바른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먼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저출생으로 인한 징집 인력 감소로 인해 병역판정검사 기준은 갈수록 완화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현역 판정률은 2018년 80.4%에서 2023년 83.7%, 2024년 86.4%로 다시 오르는 추세다. 문득 숫자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병역자원이 줄어들수록 국가는 기준을 낮춰서라도 현역 숫자를 채우려 한다는 것.
지금처럼 모든 남성을 이 잡듯이 징집하는 형태는 저출생이 대두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선발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상 긁어모으기에 가깝다. 징병제가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공식 명분과 기준을 낮춰서라도 숫자를 채우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이미 상당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상태에서 여성 징병을 도입한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지는가?
여성 징병 찬성론자들이 가장 자주 드는 논거는 두 가지다. 병역자원 부족 해결, 그리고 공정.
그러면 우선 병역자원 문제부터 보자. 한국국방연구원이 주요 모병제 국가의 인구, 매년 공급되는 청년 수, 지원율 등을 종합한 결과, 한국의 청년 인구로 모병 시 모을 수 있는 병력은 전군 15만~20만 명 정도였다. 그래서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총원 45만을 맞추려면 현역 기준 완화, 복무기간 연장, 또는 여성 징병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표면적으로 여성 징병이 숫자를 늘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여성을 징집한다고 해서 현재 신체 기준이 미달이 되었음에도 현역 판정을 받는 남성들이 군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저출생이 지속되는 구조에서 국가는 여성을 추가로 징집하면서도 기존의 기준 완화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대체가 아니라 추가인 것이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같은 구조 안에 편입되는 것이다.
또 저출생 문제 자체는 여성 징병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만약 현재 총원인 45만 명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병역판정검사 현역·보충역 기준 완화, 보충역·상근예비역·승선 근무 요원 폐지 등을 시행할 것인데 이는 모두 부작용과 국민의 반발이 크다. 게다가 암만 여성을 추가해도 20년 뒤에는 그 여성들도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제 핵심으로 돌아오자. 과연 여성 징병은 공정한가?
먼저 공정을 논하려면 먼저 현행 징병제가 올바른 제도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징병제가 본질적으로 부당한 의무 부과라면, 그것을 여성에게까지 확대하는 건 부당함의 교정이 아니라 부당함의 확산이고 이는 공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징병제가 정당한 제도라면, 그 제도 안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적 적용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입장을 택하더라도 여성 징병은 여러 실질적 문제에 직면한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입법자가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을 병역판정검사 대상으로 정한 것이 현저히 자의적이라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리고 이 판단의 근거 중 하나는 신체적 특성이다. 물론 기술전의 발전으로 이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반론은 유효하다. 그러나 "미래의 전쟁 양상이 바뀔 것"이라는 전제를 현재의 정책 근거로 삼는 건 논리적으로 취약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여성 징병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여군의 전투 능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 두 입장은 논리적으로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여성이 만약 전투에 부적합하다면 징집을 아무리 해도 실질적인 전투력의 증강이 없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투력에 실질적인 기여가 가능하다면 여군 무능력론은 틀린 것이다. 그래서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이러면 꼭 남녀 모두가 전투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징병제 자체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여성 징병 담론이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동안, 정작 징병제의 실질적 문제들은 논의의 주변부로 밀려나곤 했다.
이를테면 병사들의 월급은 올랐지만, 초급 간부들의 처우는 제자리다. 그로 인해 실질 전투력의 핵심인 숙련 간부층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 또 예비군 훈련은 강제성은 유지하면서 보상은 생업 포기 비용에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훈련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도 현장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결국 징병제가 "싸다"라는 통념은 청년 개인에게 전가된 기회비용, 숙련 인력 공백, 생산성 손실을 국방부 예산에 잡히지 않는 비용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문제들은 누가 군대에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느냐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여성 징병 담론은 이 불편한 질문들을 회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왜냐하면 제도를 고치는 건 예산과 정치적 의지가 필요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분노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건 쉽다. 결과적으로 징병제의 구조적 결함은 그대로 유지되고, 논쟁은 소진된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래서 난 공정을 원한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고 본다. 과연 지금의 제도가 올바른가? 그래서 만일 올바르지 않다면 그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적용하는 건 공정이 아니다. 만일 올바르다면 그 제도의 구체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그렇기에 여성 징병이 공정이라는 주장은 공정의 절반인 공평함만을 보고 나머지 절반인 올바름을 생략한 결론이라는 것. 이것이 나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