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당하지 않으려고 가는 군대는 전쟁이 나도 안간다

by Edward Alistair Lang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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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곳에 자발적으로 온 사람은 없다는 것을. 불참하면 고발당하기 때문에 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생업을 접고, 교통비를 자비로 충당하고, 하루를 통째로 날려가며 나타난 이들이 레이저총을 들고 VR 화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게 과연 전쟁을 위한 훈련인가?


그리고 그 질문 뒤에는 더 무거운 질문이 따라온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예비군이 실제로 전쟁이 났을 때 과연 전력이 될 수 있는가?


현행 예비군 제도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참여를 강제하고, 불참하면 형사 처벌한다. 예비군 법상 훈련 불참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국가가 형벌로 의무를 강제하는 구조다.


그런데 그 강제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는가. 2026년 기준 동원훈련 I형 보상비는 95,000원이다. 최저임금 기준 하루 일당 82,560원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다. 또한 기본 훈련은 27,000원, 작계훈련은 16,000원이다. 생업을 포기하고 온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 프리랜서에게 이것이 보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교통비도 문제다. 당일에 바로 지급되지 않는 구조 탓에 당장 차비가 없어서 다음 훈련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한다. 국가가 강제로 부르면서 오는 데 드는 비용조차 제때 보전해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지금처럼 강제성은 유지하면서 보상은 생업 포기 비용에 한참 못 미치는 이 구조는 사실상 청년의 시간을 강제로 징발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비단 보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의 내용 자체도 문제다.


레이저 모의 교전 장비라던가 여러 가지 것들을 하는, 이른바 과학화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각종 시스템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사격은 형식적으로 두 번 정도 하고 끝난다. 비가 오면 훈련을 축소한다. 폭염이면 또 축소한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은 날씨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해서 그 사실을 증명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폭풍우 속에서 감행됐다. 또한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은 유대교 최대 명절 당일 기습으로 시작됐다. 결국 결론은 이렇다. 악조건을 버티는 훈련을 하지 않은 군대는 악조건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현행 과학화 훈련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훈련 설계가 실질적인 전투 숙련도의 향상이 아닌 "훈련을 완료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데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이게 훈련이냐"라고 느끼는 순간, 예비군 제도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그리고 신뢰 없는 강제는 복종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전투 의지는 만들어낼 수 없다.


이번엔 타국과 비교를 해보겠다. 먼저 이스라엘의 예비군 제도(밀루임)는 세계에서 가장 실효적인 예비군 체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스라엘에서는 현역이 17만 6,500명, 예비군이 46만 5,000명으로 전체 병력의 72%가 예비군이다. 그리하여 2006년 레바논 전쟁, 2012년 하마스와의 교전 등 각종 전쟁과 분쟁에서 예비군이 주력으로 싸워왔다.


보상 체계 역시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비군 수당은 개별 당사자 월 평균 임금의 1.5배를 지급하고, 동원훈련 일정이 연장되면 추가 수당도 준다. 만약 직업이 없으면, 실업수당에 해당하는 금액을 훈련 수당으로 준다. 생업 포기에 대한 보상이 생업 수입을 초과하는 구조다.


또한 미군의 예비군 훈련 수당은 현역에 준하는 수준으로 병사 하루 16만 원, 장교 37만 원을 지급한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2023년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시 확인됐다. 48시간 만에 예비군 30만 명이 소집됐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유학 중이던 예비역 장교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예비군 복무 나이가 지난 고령층도 자원입대했다. 소집 통보를 받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귀국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강제적인 수단이 없어도 오는 예비군. 이게 바로 실질적인 전력이다.


그래서 이제 문제가 명확해졌으니, 개혁의 방향도 명확할 것이다.


첫째. 보상을 현실화해야 한다. 예비군 훈련 보상비는 최소한 최저임금 기준 일당 이상이어야 하며, 교통비는 당일 지급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생업을 포기하고 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손해를 감수하게 만드는 구조는 없애야 한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의 실질 손실을 반영한 별도 보상 체계도 필요하다.


둘째. 강제성을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 형사처벌로 참가를 강제하는 구조는 표면적인 숫자를 채울 순 있어도 실질적인 전투 의지는 만들지 못한다. 보상과 훈련의 질이 매우 높아지면, 강제 없이도 오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전환을 목표로 단계적인 강제성 완화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훈련의 내용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날씨를 이유로 훈련을 축소하는 관행은 없애야 한다. 또한 과학화 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실질적인 전투 숙련도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실제 전술 훈련, 실사격, 부대별 전술적 협동 훈련이 예비군 훈련의 핵심이 돼야 한다. 기록을 남기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싸울 수 있게 만드는 훈련이어야 한다. 날씨를 이유로 멀쩡히 해야 하는 유격, 화생방 등의 훈련이 축소된 채로 교육 듣고 시험치고 끝나선 안 된다.


결국에 예비군 제도의 실질적인 전력은 숫자가 아니라 의지에서 나온다. 고발당하지 않으려고 가는 사람은 전쟁이 나도 오지 않는다. 반대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소집 통보가 없어도 귀국한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제도의 설계다. 강제냐 선택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주느냐의 문제라는 것. 그런데 지금의 예비군은 그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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