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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정 Jun 21. 2024

05 도쿄에서 비행기 타고 도쿄, 20시간 만에 온 썰

하치조지마八丈島에서의 20시간 체류기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봤을 때 도쿄는 서울과는 매우 다르다  

도쿄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도쿄는 서울과는 달리 구区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도쿄는 도都이다. 서울시는 25구로 구성된 반면, 도쿄도의 경우는 구(23구区), 타마多摩 지역(26시, 3정町, 1촌村), 도서 지역(2정町, 7촌村)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서 지역의 경우 도쿄에서 남쪽으로 수백~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도서 지역에는 작은 섬이 여러 개 있다. 오시마(大島), 토시마(利島), 시키네지마(式根島), 니지마(新島),  코즈시마(神津島),  미야케지마(三宅島),  미쿠라지마(御蔵島), 하치조지마(八丈島), 아오가시마(青ヶ島)등의 섬은 태평양과 필리핀해 사이에 위치해 있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우리 집 강아지 새발이를 데리고 코로나를 피해서 한적한 섬으로 휴가를 가기로 했다. 2박 3일의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에 섬이 크지 않아야 했고, 도쿄에서 비행기로 한 번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춰서, 하치조지마를 가게 되었다. 하마마츠쵸에 있는 다케시바 터미널에서 저녁에 페리를 타면 아침에 하치조지마에 도착하는 교통편이 있으나, 강아지를 동반할 경우에는 객실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 강아지를 태워야 했는데, 긴 시간을 떨어져 있기 불안해서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원시적인 섬에 도착하다

하치조지마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287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비행기로 55분 정도 날아가면 갈 수 있다. 도쿄와 하치조지마를 연결하는 비행 편은 아나항공에서 운항하고 있으며 하루 세 번 운항 편이 있다. 행정구역 상으로 도쿄에 속하고, 자동차 번호판에는 모두 시나가와라고 적혀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원래 우리의 일정은 8월 6일 금요일 도쿄 출발 12:15- 하치조지마 도착 13:10, 8월 8일 일요일 하치조지마 출발 14:00- 도쿄 도착 14:55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바람이 불고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충돌한 듯, 쿵 소리와 함께 거친 랜딩을 했다. 비행기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원시적인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에도 시대에는 죄수들의 유배지였던 섬이라고 하는데, 유배지의 풍광이 참으로 아름답다. 결국 이곳의 주민들은 유배를 온 죄수들의 후손인 셈인데, 스스로 이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고. 


해가 들었다 숨었다를 반복했다. 공항으로 픽업을 오신 렌터카 사장님의 차를 타고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서 우리 일정을 확인하더니 태풍이 2개 오고 있다고, 다음날 오후 비행기를 놓치면 월요일까지 섬에서 떠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사장님이 다음날 14:00 비행기를 추천해서, 일단 아나항공 어플로 예약을 변경했는데, 펫 동반 정보를 넣을 수가 없어서 렌터카를 받아서 일단 공항에 있는 ANA 카운터로 다시 돌아갔다. 직원이 말하길, 14:00 비행기는 캔슬될 것 같으니 9:00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편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날 9:00 비행기로 변경했다. 8월 6일 금요일 도쿄 출발 12:15- 하치조지마 도착 13:10, 8월 7일  토요일 하치조지마 출발 9:00- 도쿄 도착 9:55.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비싼 20시간의 체류를 하게 되었다. 


태풍의 영향권에 들기 전까지 놀아야 했다

일단 예약을 한 에어비앤비로 가기로 하고, 근처 슈퍼에 가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샀다. 렌터카 사장님께서 우리 숙소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을 거라고 해서 장을 보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태풍 때문에 다음날 아침 7:00에 체크아웃을 할 거라고 미리 말해 두었다. 아, 슈퍼는 물가가 진짜 비쌌고, 야채와 과일의 원산지는 토호쿠 지방이 많았다. 장을 보고 나오니 장대비가 내린다.

 

작은 섬이었지만, 오키나와에 비해서 길이 잘 닦여 있었다.  운전을 하는데 도로 주변의 원시적 열대우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야자나무와 빨간 히비스커스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오키나와와 매우 흡사했다. 우리 숙소는 하치조후지산 입구 가까이 있었는데, 숙소로 가는 길에 사진으로 보던 하치조코지마를 보고 너무 예뻐서 차를 세우고 구경을 했다. 


숙소는 '하치조지마 180'이라는 곳으로 숲의 한가운데 있었다. 큰 반얀트리 한 그루가 주차장에 있었다. 숙소 입구에는 여러 마리의 도마뱀이 붙어 있었다. 숙소는 기대 이상으로 넓고, 쾌적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호스트도 태풍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우리 사정을 생각하여 1박의 숙박료를 환불해 준다고 했다.  


짐을 대충 풀고, 새발이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들짐승도 보고, 들짐승의 배설물도 보고, 도둑고양이도 만나고, 모기들의 공격에 시달리며, 신이 나서 새로운 냄새를 맡으러 다니는 새발이를 따라다니려니 습하고 더운 날씨에 죽을 맛이었다. 길마다 무성히 핀 양치류의 식물과, 도시에서는 돈 주고 사야 하는 몬스테라가 마구마구 자라고 있었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남의 집 마당이 나와서 더는 걷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서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20년 운전 경력에 이런 차는 처음이었다

아, 렌터카에 관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빌린 차는 마치 1999년 이후로는 출시되지 않았을 것만 같은 구형 모델이었는데, 내가 일본어가 서툰 한국인에, 일본 운전면허를 발급받은 지 겨우 1년이 넘은 초보운전자라서 사고라도 나면 내게서 상당한 자기 부담금을 받고  '이게 웬 횡재!'라고 외치며 폐차를 시킬 것 같았다. 계약서에는 폐차를 할 경우에는 자기 부담금 외에도 30일 치 영업 손실 비용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순전히 사장님의 욕망을 담은 조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었고, 자동차 열쇠를 꽂아서 자동차 문을 열고 잠가야 했으며, 내부에는 트렁크를 여는 버튼이 없어서 차에서 내려 문을 직접 열어야만 했는데, 손잡이 부분이 고장 나서 이게 열릴 때도 있고 열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다행히 창문을 열 때는 레버를 돌리는 식이 아니라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으나 극단적으로 끝까지 열리거나 완전히 닫혔고 어쩌다가 내가 원하는 만큼만 열렸다가 멈추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기어는 생전 처음 보는 방식이었는데 마치 슬롯머신에 숫자가 돌아가는 것처럼 PND1D2D3 기어를 움직일 때마다 계기판에 글자가 표시되었는데, 이는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얇은 종이 조각이 내부에 들어 있는 듯이 보였고,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비치발리볼 경기의 점수판을 닮았다고 표현하겠다. 그리고 기어는 너무 얇디얇았고 조금만 힘을 줘도 빠져 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에 나는 기어를 움직일 때마다 핸들 쪽으로 기어를 살짝 밀어 넣는 느낌을 유지하며 운전했다. 라이트는 오토기능이 없어서 수동으로 켰다 꺼야 했고, 자동차 양쪽문의 모서리 부분은 녹이 슬어서 3센티가량은 부식되어 사라졌고, 여러 곳에 붉은 녹이 피어있었다. 렌터카를 빌릴 때 스크래치 체크 할 때, 사실 스크래치가 없는 부분을 체크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장님이 너무 설렁설렁 체크를 해서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이 정도의 스크래치는 괜찮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며 하나하나 지적을 하니 사장님 왈, "그런 스크레치까지 체크를 하면 세 시간이 걸려도 안 끝나요!"라고 짜증을 내셨다. 암튼 나는 이런 구식 차를 처음 몰아 보았는데 하루 빌리는데 5,000엔이었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은 없었다. 다만, 사장님이 바랄지도 모르는 폐차 사고는 절대 내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섬의 서쪽, '차선이 하나뿐이지만 일방통행은 아닌 길'을 지날 때는 이 차가 리어카인가 자동차인가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서행을 했다.


하치조지마는 화산섬이라서 해변이 검은 모래로 되어 있다.  아래로 보이는 곳이 원래 우리가 스노클링 스폿으로 점찍어 둔 곳이었다. 큰 바다거북이, 형형색색의 바다 달팽이, 화려한 열대어로 가득한 바다라고 들었다.


곤잘레스 씨가 일몰 스폿으로 유명한 언덕이 있다고 해서 30분 정도 산을 올랐다. 모래언덕에서 내려오는, 20대 초반의 무섭게 생긴 남자 셋을 만나서 조금 움찔했으나 친절하게 '곤니치와!'하고 인사를 건네길래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코로나 때문에 관리를 안 해서 중간에 트레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 흔적은 남아 있어 풀을 헤쳐가며, 풀독에 올라가며, 모래 언덕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검은 모래언덕을 까치발을 들고 바라보았는데,  멋지긴 했으나 솔직히 잘 보이지 않아서 실망했다. 이렇게 까치발을 들고, 풀독에 오르고, 곤충의 공격을 받으며 일몰을 보는 일은 즐거울 수 없는 법이다. 물론 곤잘레스 씨는 키가 커서 나보다 많은 부분을 보았을 것이다. 이 스폿을 끝으로 트레일이 완전히 보이지 않았고 새까만 산모기가 윙윙거리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고 (해가 지는 숲에서 모기는 무척 저돌적이다!) 뱀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풀숲의 모습에 서둘러서 하산을 했다.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다가 해가 넘어가기 전에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하치조지마 앞에 있는 작은 섬, 하치조코지마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감상했다. 절기에 따라서 해가 넘어가는 각도가 변하는데, 어쨌거나 하치조코지마가 해를 감추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할밖에. 우리 부부는 남들에게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싫어서 여행 중에도 별로 인물 사진은 찍지 않는 편인데, 사진 속 두 남성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6시에 일어나서 짐을 싸고, 쓰레기를 치우고, 주유소를 들렀다가 렌터카 사무실로 갔다. 사장님이 다음에 꼭 다시 오라고, 다음에는 스노클링도 하고, 온천욕도 하라고 하시길래 말로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다음에는 다른 섬에 가고 싶다. 


하치조지마의 바닷속에서 누구나 본다는 거북이는커녕, 바다에 발도 넣어 보지 못하고, 새발이 구명조끼는 가격표도 떼지 못하고 우리는 하치조지마에서 돌아왔다. 도쿄로 돌아오는 항공편은 하치조지마 엑소더스였다. 전날 비행기에서 본 가족들도 보였다.  도쿄행 비행기가 이렇게 사람으로 붐비는 건 처음 본다며 낚시 여행객들이 하는 말이 들려왔다. 비행기는 바람 때문에 지연이 되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만일 우리가 8월 7일 토요일 9:00 비행기를 놓쳤더라면 10일 화요일에나 도쿄로 돌아올 수 있었을 거다. 뭔가 억울하지만 동시에 다행이라고 안도했던 20시간 동안의 여행이었다. 


신기했던 점은 하치조지마에 겨우 20시간 머물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창밖 풍경이 무척 삭막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전혀 인지하며 살아가지 못했는데 도시의 삭막함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눈 앞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 같았고, 곤잘레스 씨에게 물어보니 그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날의 도시뷰는 정말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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