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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Oct 02. 2019

취약하면 어른이 아니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1>

때론 '단어'가 내 숨통을 트이게 해 준다.

짙은 우울감에 빠진 누군가의 머릿속



'낯선' 우울.

약 한 달여 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생각들이다. 매섭게 '우울감'이 휘몰아쳤다. 하루에 몇 초 그리고 두세 번씩 암흑 같은 상상에 빠져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충동이 함께했다. 뜬금없는 순간에도 문득, '죽어야 되는데.'란 생각이 들어왔다. 낯선 모습이 본래의 '나'를 파괴해버릴까 조마조마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까 봐, 혹시나 그 상상이 현실로 되어 버릴까 봐 무서웠다.


'우울하다'라는 말.

당시, '우울'이란 단어는 내 감정을 나타내기엔 역부족인 듯 느껴졌다. 날 뒤덮어 버린 외로움과 허무 그리고 무기력함과 무가치함이 저 두 글자로 표현된다고? 아닌 것 같았다. "우울해."라고 했을 때 과연 상대방이 나의 상태를 얼마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것 같았다.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실제 병원에서 MDD(Major depressed disorder, 주요 우울장애) 환자들을 간호했던 적이 많았지만, 그들이 하는 말과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공감은 하지 못한 채 그저 동정만 했다. '지금 내 상태를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도 날 동정할지 몰라. 동정은 필요 없는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도움이 필요한 상태.

끝없이 빠져드는 우울감은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정도였다. 멀쩡히 살아있기 위해선 누군가를 만나야만 한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쉽사리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선택할 수 없었다. 정신의학과를 찾아갈 것인가, 심리상담가를 만나러 갈 것인가. 선택지는 두 개인 듯 보이지만 수많은 정신의학과와 수많은 심리 상담가 중에서 어느 병원을 혹은 어떤 상담가를 찾아가야 할지 결정하기가 난감했다. 깊은 곳의 감정과 생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에 심리적인 저항감이 강하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이곳저곳 검색해봤지만, 좀처럼 마음을 굳히기가 쉽지 않았다. 관자놀이의 묵직한 통증만이 심해졌다. 답답함이 깊어져 절로 뱉게 된 한숨과 함께 꾹- 몇 초간 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조차 지겨웠다.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펼친 책.

구석진 곳의 동네 카페로 향했다. 사람이 적고 조용한 곳이었다. 노트북과 머그잔을 올리고 나면 공간이 차는 테이블에 앉았다. '나를 어쩌면 좋을까.' 기력이 없어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 쉬었다. 그냥 느껴지는 대로 글을 적어볼까 하다가 내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해서 더 답답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 낯설고도 짙은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절벽으로 몰아가는 우울이란 감정을 제대로 설명해낼 자신이 없었다. 문득 책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서점을 가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릴 에너지는 없었기에, 전자책 사이트를 뒤적였다. 누군가의 우울증 극복기 같은 책 말고, 차분히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미치도록 고마울 것 같았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봐야겠단 심정이었다.

시킨 커피가 식어갈 무렵, 읽고 싶은 마음이 간지럽히는 책을 찾았다. 앞, 뒤 표지 어디에도 '우울'이란 단어가 없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마음 가면』, 브레네 브라운

 나를 우울하게 만든 '무엇'의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단 기대감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취약성'에 대한 편견.

『마음 가면』의 핵심 키워드는 '취약성'이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취약한 존재라 함은, 힘도 없고 용기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존재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나. 이 책이 던지는 취약성과 관련된 여러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동아줄을 잡는 심정이었으니 책이 묻는 질문에 차분히 고민하고 적어 내려갔다.)

   

취약성(vulnerability)의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취약성이란, '존재의 불완전함'이다.

내게 대입하여 생각해보자면, 나라는 존재를 설명할 때 필요한 어떤 성장과정이나 환경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단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 확장시켜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한 것 같다.


취약성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은 무엇인가?

취약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너무나도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언제 나의 취약함에 잠식되어버릴지 나조차도 알 수 없기에.


당신의 가족들은 취약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잘 모르겠다. 암묵적으로는 우리가 '취약한 존재'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 같다.


어릴 때 취약해지는 것에 관해 뭐라고 배웠는가?

취약해지는 것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나의 취약성을 감추기에 급급한 삶을 살았다.


어릴 때 취약성의 본보기가 있었는가?

없었다.


현재 취약성을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가?

나는 취약성을 견디는 것이 너무도 괴롭다.

삶을 끝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견디기 힘들다.


취약해진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쥐구멍에 가서 숨고 싶은 느낌이다.

치욕스럽다. 발가 벗겨져 만천하에 나의 민낯을 내보이는 듯한 느낌.


당신이 취약하다고 느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취약하다는 것에 빠져들지 않도록 멈춰 선다. 그만..

자책하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내게 취약함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부터 도망간다.


가장 취약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나조차도 나의 모습을 안아주고 인정하기 싫을 때 스스로가 가장 취약하다고 느낀다.


취약성의 반대 개념을 기준으로 해서 취약성을 정의해보라.

내면이 단단하지 못한 상태,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상태 = 취약함


취약성은 유의미한 경험들의 핵심이며 심장이며 중심이라는 명제에 동의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쨌거나 '취약성'이라는 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겪었던 어떤 경험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핵심이며 심장이며 중심이라는 것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취약한 것이 당연하다, 라는 말.

취약한 사람은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인 줄 알았다. 당연히 취약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강하지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왜 자꾸 바보같이 흔들리고 감정적으로 반응할까?' 머릿속, 메인 고민이었다. 알면 알수록 불확실한 세상과 불안한 삶을 과연 잘 살아낼 수 있을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가장 취약한 상태(그 취약함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미치기 일보 직적인 상태)에서 읽게 된 이 책은, 나를 수 십 번 멈춰 서게 만들었다. 멈춰 서게 만든 그 문장들을 옮겨 적으며 나의 취약성을 곱씹었다.

취약성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취약성은 모든 감정과 느낌의 핵이다. (중략)
나는 취약성을 불확실성, 위험, 감정 노출로 정의한다.  
삶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의 영역을 되찾고 열정과 목표의식에 불을 붙이고 싶다면 자신의 취약성을 끌어안고 취약한 상태 그대로 세상에 참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략) 가장 좋은 출발점은 취약성을 정의하고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르고 여린 곳들을 알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상처를 입을 위험은 더 커지지 않겠는가? (중략)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가'가 아니라 '우리가 취약성을 얼마나 인정하는가'가 핵심적인 변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불확실성, 위험, 감정 노출을 선택적으로 피해 갈 수가 없다. 삶 자체가 취약한 것이다. (중략) 살아있다는 것은 취약성이 있다는 뜻이다.


나약해져 버린 내 모습.

취약함과 나약함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취약한 게 나약한 거라고, 나약한 게 취약한 거라고 생각했다.

 vulnerability (취약성) : '상처 입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vulnerare'에서 유래했다.
취약성의 사전적 정의에는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과 '공격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을 수 있는'이 포함된다.
weakness (나약함) : '공격이나 상처를 견뎌낼 수 없다'
나약함은 취약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을 만큼 깊은 우울감에 빠진 이유는 나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삶과 존재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끊임없이 상처를 받다가 더 이상의 공격을 견뎌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거였다.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https://youtu.be/qNBUQEZnaZw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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