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를 찾아서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by 김담유

이팝나무를 찾아서


저 세상 꽃을 피운다는 이팝나무 찾아 조계산 오르는 길에는 계곡이 따라 흐르고 있었어요 서늘한 물소리가 잡목들 촘촘히 어깨 결박한 숲 지붕에까지 텅텅 울리고 있었지요 한 보 내딛을 때마다 천년만년 눌러앉은 그림자가 반향하는 물소리와 더불어 내 허약한 발밑을 감아 돌고, 시선은 자꾸만 길바닥으로 땅속으로 이름 모를 나무들의 뿌리 속까지 내려가 진저리를 쳤어요 나를 둘러싼 十方의 식물들이 맹수의 입김으로 목 언저리를 감아 죄던 길, 너울대는 비존재들의 살의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지요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이 환해져 고갤 드니 다 쓰러져가는 요사채 하나가 떡 버티어 서는 것이겠지요 버려진 세월처럼 홀연히 낡아가는 요사채 위에 세계의 지붕이 막막히 뚫려 있는 것이겠지요 그 사이로 석류빛 기둥이 번개처럼 내리꽂히고 있는 게 아닌가요 나는 그 빛에 눈멀어 잠시 길을 놓쳐도 좋았어요 그렇다면 하늘도 땅도 뚫린 이쯤에서 발견되어도 좋을 이팝나무는 어디로? 눈물처럼 아름답다는 그 흰 꽃들은 어디로? 그 순간, 수만 생 꾹꾹 눌러 밟아왔을 내 등 뒤의 길이 숲의 아가리에 먹혀들며 성큼성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요 옴짝달싹 않는 두 발은 돌아갈 길이 없으니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고요 아름드리나무도 계곡의 물소리도 사라진 그곳, 어쩌면 다 쓰러져가는 요사채는 幻으로 흔들렸을, 눈앞이 하얗게 번지며 마침내 온몸이 가쁘게 터지던 그곳이 바로 이팝나무였을까요? 이팝나무가 피워 올린다는 그 흰 꽃 같은 세상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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