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뜯어보기<9>
* 세상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역사 매거진
한국사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당파싸움, 즉 당쟁입니다. 정치에 있어 당쟁은 한 가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 더 깊은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건설적일 수 있죠. 당쟁이 조선을 망친 원인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장점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대개는 정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소모적인 다툼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욕지거리와 드잡이가 심심풀이로 벌어지는 현재의 국회에서 이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죠.
정치적 신념과 정체정 대신
정치적 프레임으로 여론에 균열을 일으켜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정치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동아리인 정당은 곧 당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정치적 색채가 드러나기 때문이죠.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정치적 색채라고 할 만한 게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정치적 색채라 했을 경우에 그것은 '정치적 신념'이 되거나 '정치적 정체성'이 되어야 하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요? 신념은 권력 앞에 한조각 휴지가 되고 정체성은 사라져 철따라 이동하는 철새마냥 헤쳐 모여 하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정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세를 불리는 한편, 자기의 반대 편에 선 사람들을 더 작은 세력으로 분열시켜 맞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바로 국민입니다. 유권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거나 적어도 상대 편에게 투표하지 못하도록 유도해야 하죠. 그간의 대한민국 정치는 감정적 대응이나 정서적 편가르기가 일반적이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프레임'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거나 세계를 이해하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의 프레임은 이러한 좋은 의미가 아니라 왜곡이나 편견을 의미하는 색안경에 해당하죠. '지역주의'나 '진보 대 보수'와 같은 프레임을 통해 주요한 정치적 사안의 본질을 흐릿하게 만드는 데 이용하죠. 프레임 간의 대결 구도를 통해 국민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방식입니다. 대화나 합의와 같은 민주적 절차는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죠.
'이념의 대결' 또는 '세대의 대결'과 같은
'프레임'에 가두는 정치 행태를 극복해야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개인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망설임과 어느 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이라는 두 가지 어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죠. 하지만 최근 제 3의 선택도 가능하단 사실을 국민 스스로 체험했습니다. 이제 이것을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 주권자인 국민 스스로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더 다양한 프레임을 만들어 내고, 그 프레임이 더 발전적일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죠.
대한민국에서는 20세기 말이나 되어서야 이러한 근대 민주주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1987년 6월 일어난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민주사회가 도래했습니다. 당시 ‘6・29민주화선언’은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를 시작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까지 이어진 오랜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는 역사적 순간이었죠. 이때의 민주항쟁으로 국민투표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5년 단임제)가 도입되면서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투표를 통한 대통령 선출이 당연하게 된 것은 30년이 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러한 민주화의 분위기는 사회적으로도 여러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정치적 권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시민들에 의해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이 생겨나며 비로소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사회의 문제에 발 벗고 나서는 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죠. 이렇게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정치적 주체를 ‘시민’이라 하고, 그 시민들이 모인 사회를 가리켜 ‘시민사회’라 부릅니다.
- [세계사, 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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