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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Oct 31. 2019

(작가의 재구성) 시대를 앞선 예술, 왜 백남준인가?

세계를 넘어, 시대를 넘어

예술플랫폼 <아트렉처> 연재 중인 글이다.

주말의 토요일을 떠올려 보자. 어떤 사람은 약속을 위해 아침부터 일어나 분주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꿀맛같은 휴식을 위해 아침 늦도록 자리에서 꾸물댈 것이다.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서는 사람에게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을 것이고 잠자리에서 깨지 않은 사람 앞에는 스마트폰 또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을 것이다. 미디어가 생활의 일부가 된 세상, 이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어쩌면 인간 생활의 일부라기보다 인간이 미디어의 일부가 되었다고 볼 정도로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다. 그리고 그 강력함을 예술로 끌어올린 사람이 있다. 바로 백남준이다.

'TV 안경'을 쓴 백남준. 재기 넘치는 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한다. 작가는 죽어도 그의 작품은 그보다 더 오래 남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백남준은 이걸 비틀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예술이 갖는 속성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회화와 조각이 전부였던 과거의 미술과 달리 미디어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은 ‘전기’의 힘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전기의 힘에 의존하여 영상을 내보내는 ‘모니터’는 그 수명이 매우 짧다. 그리고 그것을 관람하는 관람객도 과거와는 달리 찰나의 이미지를 경험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기념을 위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했던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이 그 수명을 다했다. 2003년 당시 모니터를 모두 교체한 후 2018년 또다시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후 이 작품의 복원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고, 2019년에 이르러서야 3년에 걸친 복원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다다익선’은 총 1003개의 브라운관 모니터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나선형의 탑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1003’이란 숫자는 10월 3일, ‘개천절’을 의미한다. 관람객이 나선형의 오르막을 오르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설계하였다. 모니터의 숫자만큼 말 그대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1988년 <다다익선> [출처 : 국립현대미슬관 과천관]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하나 둘 이상을 갖고 있고 사람마다 영상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현재의 시점에서 브라운관 모니터 1003개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웅장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5G는 고사하고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당시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였던 텔레비전 1003개로 만든 작품이었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체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던 백남준의 말을 적용해 보면 모니터 1003개를 통해 보여주는 이 작품은 1003개의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1003개의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영상까지 합치면 그 경험치는 몇 배로 확장된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불린다. 비디오 아트란 1960년대에 등장했던 새로운 시도의 예술로 말 그대로 ‘비디오’라는 영상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을 가리킨다. 1950년대에 텔레비전이 가정에 보급되면서 인간의 생활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영화와 연극, 그리고 각종 쇼를 보기 위해 극장이나 공연장에 직접 갈 일 없이 집에 앉아서 가족 또는 홀로 텔레비전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이라는 아주 작은 미디어 속으로 세계라는 거대한 실재가 빨려들어온 것이다. 인간이 직접 바깥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집안에 앉아 텔레비전을 통해 경험하는 세상의 비중이 점차 비슷해져갔다.


세상의 변화에 누구보다도 더 민감한 예술가들은 비디오라는 영상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백남준이었다. 백남준은 브라운관을 통해 제공되는 수많은 이미지의 조합과 왜곡을 통해 현대인들이 어떤 이미지들을 보고 있는지,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애썼다. 기술이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될지 모르고 인간이 기술에 종속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반성이자, 인간이 어떻게 하면 기술을 주도적으로 사용하고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실험했다. 이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자각이자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좌)와 <TV 부처>(우)
<찰리 채플린>(좌)와 <슈베르트>(우)


1963년 독일에서 있었던 첫 번째 전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에서 부쳐온 돈을 탈탈 털어 산 브라운관 모니터 13대로 백남준은 새로운 예술 세계를 알리는 첫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백남준은 그의 대표작 <Global Groov>(1973)에서 세계 모든 나라가 케이블 TV로 연결될 때 일어날 수 있는 국가와 민족, 종교, 인종의 경계를 뛰어넘는 소통과 공감의 미래를 그렸다. 또 다른 대표작인 <Good Mornig Mr Owell>(1984)에서는 소설가 조지 오웰이 예측했던 억압과 광기의 미래 대신 자유와 창조가 넘치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세계 유명 예술가들이 총 출동했던 이 프로그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으로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에서 다원생중계로 이루어진 생방송이었다.

 

SNS가 생활이 되고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되고 한 사회의 문화가 된 지금, 다시 백남준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그가 상상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백남준은 끊임없이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현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남는 것마저 거부하고 30세기, 즉 3,000년의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상상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재미에 대한 추구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백남준을 영원한 예술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세계적인 예술가, 이제 백남준을 돌아볼 시간이다.


예술, 인간 이상을 향한 진격
by 김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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