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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Jul 21. 2024

노자 도덕경 41장 부지런히 실천하는 사람

도는 숨어있지만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노자 도덕경 41장 번역 및 해설


본문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실천하려 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 망설이며, 못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그저 비웃을 뿐이다. 이렇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 할 수 없다.


그래서 옛말에도 그랬다. 나아가는 도는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고, 평평한 도는 우묵해 보이며, 최상의 덕은 계곡처럼(텅 비어) 보이고, 결백한 것은 흠집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백한 것은 흠집 있어 보이고, 넓은 덕은 좁아 보이며, 믿음직스러운 덕은 오히려 촐랑대는 것처럼 보이고, 바탕이 참된 것은 변덕스러 보인다. 큰 모서리는 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큰 그릇은 서서히 만들어지며, 큰 소리는 희미하게 들리고, 큰 모양새는 형태가 없다.


도는 드러내지 않아 이름이 없으나, 오직 도일 경우에만 잘 빌려주고 잘 이루어낸다(술술 풀어낸다).



해설 


우린 몸부림치며 날아봐야 겨우 느릅나무나 소방나무 위에 올라가고, 그나마도 거기에 못 미쳐 땅에 떨어지고 마는데, 어찌 구만 리를 남쪽으로 날아간단 말인가. -장자


장자 첫머리엔 붕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물에 사는 ‘곤’이란 존재가 승천하여 ‘붕’이란 새가 되어 한 번의 날개짓에 구 만리를 날아가고 한 번 날아오르면 아홉 달 동안 쉬지 않고 날아간다. 이를 들은 매미와 새끼 비둘기는 작은 나무에 오르는 것도 어려운데 무슨 말같지 않은 소리냐며 비웃는다.


인간은 그렇다. 누군 하고, 누군 고민만 하고, 누군 비웃는다. 이 일을 시작하면 당신은 큰 성공에 이를 수 있다 해도 사람들은 곧바로 시작하지 않는다.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지고 공부를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알아도 실제 그것을 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래서 누군 해서 결국 실현하고, 누군 고민만 해서 죽을 때도 고민하고, 누군 비웃어서 마지막엔 자신을 비웃는다(자조한다).


마찬가지로 ‘이것이 도’라고 알려줘도 그것을 믿는 이가 부족하고, 내 눈 앞에 진리가 있어도 선뜻 마음을 내는 이가 적다. 그랬다면 다들 성인이 되었거나 성인에 버금가는 사람이 되었을 테지만 실제로는 성인이 되는 것도 어렵고 버금가기도 어렵다. 그냥 보통사람으로 살다 보통사람으로 죽는 게 편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 고통이다.


게다가 도는 숨어있다.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지만 드러낸다 해도 긴가민가 하는 모습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나아가는 것은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고, 결백한 것은 흠집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인간은 자신이 가진 크기만큼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한다. 못난 사람 눈엔 못난 것만 보인다.


장자의 아내가 죽어 혜시가 문상을 갔을 때, 장자가 다리를 뻗고 앉아 대야를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의아했던 혜시가 도대체 무슨 짓이냐 물었다. (혜시가 못난 사람이란 의미가 아니다.) 그러자 장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럴 리 있겠는가? 나라고 해서 슬프지 않겠는가? 그런데 가만히 그 근원을 살펴보니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야. 생명이 없었을 뿐 아니라 형체 역시 없었어. 형체만 없었을까. 본래 기마저 없었지. 까마득하고 어렴풋한 것들 속에 무언가 섞여 있다 변하여 기를 갖게 되었던 게지. 그 기가 변해 형체를 가졌고 그 형체가 변하여 생명을 갖게 된 거야. 그리고 또 변하여 죽음에 이른 거고. 이는 기가 어우러져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계절이 운행하는 것과 같다네. 아내는 천지라는 거대한 방에 편안히 누워 있는데 내가 꺼이꺼이 울며 곡을 한다면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울음을 그쳤다네. -장자


가만히 살펴보고 깊게 바라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삶의 비밀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에. 1장에서도 노자는 도는 미묘하고 미묘하다 표현했다. 그만큼 알기 어려우나 알고 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인다. 3차원에 살던 인간이 4차원, 5차원의 세상을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대기만성’이라는 유명한 한자성어가 등장한다. 큰 그릇은 서서히 이루어진다. 한 번의 날개짓에 구 개월 간 구 만 리를 날아가는 붕이 되려면 그 몸이 얼마나 거대할 것이고, 그 몸을 지탱하는 날개 또한 얼마나 튼튼할지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물 속 곤이 하늘 위 붕이 되기까지 또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했을까.


더욱이 그 큰 그릇은 작은 그릇이 담기 어려운 것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큰 그릇의 쓰임새가 생긴다. 32장과 36장에서도 보았듯 온갖 경험 속에 굴욕과 실패를 경험하고 찬밥더운밥 가릴 것 없이 그런 모든 것들을 담을 수 있어야 큰 그릇이다. 그러면서도 자기자신을 잃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일을 하는 사람. 그러하니, 모든 것을 빌려주고 모든 것을 이루어줄 수 있겠지.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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