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을 밝히는 일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세상에 시작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세상의 어미다. 어미를 얻어 자식을 알고, 자식을 알고 어미를 지킨다면, 평생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입구를(구멍을) 막고 문을 닫아두면 평생 수고롭지 않으나, 그 입구를(구멍을) 열고 문을 열어두면 평생 구하지 못할 것이다.
작은 것을 드러내는 것이 곧 ‘밝음’이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곧 ‘강함’이다. 빛을 이용하되 밝음으로 돌아간다면 몸에 재앙을 남기지 않으니, 이를 ‘습명(밝음을 이어감)’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동양철학이 그러하듯 도덕경의 대부분은 외적 요인보다는 내적 요인을 더 중요시한다. 인간은 그저 육체를 가진 물질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삶은 하나의 단순히 거대한 사실들의 집합체이지만, 그것을 뜯어보면 수많은 감정들과 의지와 의도와 이를 넘어선 환상과 꿈과 이상과 의미들의 집적체이다. 이처럼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고, 영적인 세계에 다가서는 일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하면, 사실 부정부터 할 수 있다. 이를 긍정하기보다 부정이 더 쉽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적일까? 묻는다면, 긍정의 답을 기대하긴 어려울 테니. 현실에거 먼저 보이는 것은 물질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육신으로 살아가는 이 세계를 욕계라 부른다. 쉽게 말하면 욕망으로 가득찬 곳, 무언가 바라고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세계이다. 다음이 색계, 일종의 형상에 갖힌 세계이다. 욕계에서와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났지만 망상과 같은 이미지로부터 완전 해방된 세계는 아니다. 무색계는 욕계나 색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세계를 가리킨다.
노자가 말하는 도에 이르는 것은 불교식으로 보자면 무색계에 당도한, 무색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가치라 볼 수 있다.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자신이 만든 생각의 감옥 또는 관념이라는 생각 덩어리를 따라가는 것도 번뇌일 뿐이다. 그리하여 노자는 입구를 막고 문을 닫아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여긴다.
인간의 몸엔 여러 가지 구멍이 있다. 눈, 코, 입, 생식기, 이를 포함한 온몸의 감각, 여기에서 나아가 지각하고 인식하는 의식 작용에 이르기까지. 그곳으로 온갖 음식과 배설물과 정보와 그 정보를 받아들인 인식과 그에 따른 의도와 행동까지 온갖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들이 드나든다. 중요한 것은 욕망이나 자극(부정적 자극)을 따르지 않는 데 있다.
그보다는 자신의 본질, 다시 말해 진짜 자기를 찾아 그것으로 살아가야 한다. 노자가 말하는 ‘습명’이란 지속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밝히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은 저절로 밝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습관이 되도록,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외적인 밝음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기보다 내적 밝음이 있어야 자기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52장에서 말하는 어미와 자식 또는 작음과 밝음은 곧 본질이자 핵심을 가리킨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가장 큰 것이자 가장 작은 것이기도 하다. 작음은 내적으로 가장 작고 큼은 외적으로 가장 크다. 일종의 은유이다. 작음은 내면의 깊이를, 큼은 외면의 폭을 의미한다. 1장에 본 것처럼 그것은 존재가 가진 미묘함이자 존재의 경계이다.
여러 장에서 여러 번 걸쳐 말했지만, 인간의 자기 실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자 삶의 궁극적 목적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융은 이를 ‘개별화’라 불렀다. 그는 인간에겐 자기만의 무의식과 집단으로서의 무의식이 있었다. 이를 벗어나 진짜 자기를 찾아가는 것이 인간의 자기 목적이자 이의 실현이라 보았다.
우리가 비밀을 가지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지니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인생을 어떤 비개인적인 신성한 힘으로 가득 채운다. 이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중요한 것을 놓친 셈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는 마음속으로 예상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외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노자 도덕경 1-30장은 아래에서
https://brunch.co.kr/brunchbook/taoteching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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