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도, 마음엔 덕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도가 낳고, 덕이 기르며, 사물이 짓고, 기세가 이룬다. 그리하여 만물은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긴다. 도가 존중받고 덕이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누군가 명령한 것이 아니라(억지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도는 낳아주고 덕은 길러주며 어르고 달래고 보듬어주고 덮어주기 때문이다.
낳아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더라도 기대지 않으며, 기르더라도 지배하지 않으니, 이를 일컬어 현덕(지극한 덕)이라 부른다.
참, 생산적인 51장이다. 자본주의로 따지면 최고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공장에 대한 묘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공장은 세계이자 우주에 대한 묘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생산한다. 게다가 그 존재들을 무한하게 먹여 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5장에서 보았듯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아 그 에너지는 결코 소진되는 일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하다. 노자가 말하는 이 무한의 공간에는 무한의 에너지가 있어 무한의 생성과 양육이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부와 풍요이자 그러한 세계를 가리킨다.
자본주의를 발명하면서부터 -그렇다. 자본주의는 발명된 것이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로 커져갔고, 전세계를 아우르는 대기업도 등장하여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인간이 가진 문명의 발전 속도가 빨라진 만큼 환경의 파괴로, 인간의 파괴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문명의 발전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발전한 문명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의 마음 또는 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노자는 지속적으로 나누고 채우고 보태주는 가치를 중요시 여긴다. 인간이 잃어버린 건 이러한 가치이다.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치열하게 부딪히는 경쟁과 누구에게도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지배하는 곳이다.
기성세대가 다음세대에게 가르친 것은 남들보다 못해서는 안 되고 절대로 져서도 안 된다는 가치이다. 일말의 양보나 희생 따위가 무엇인가. 자존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 아니 그냥 존심만 가르친다. 누구에게도 무시 당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 누군가 자기를 공격하면 그대로 갚아줘야 한다는 가치, 그것은 결국 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로 이어질 뿐이다.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 해야 할 일과 가져야 할 모양새를 계획하고 그것대로 살아갈 인형을 길러왔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기계적 계산에서 비롯된 발상이자 오로지 하나의 가치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데에서 비롯된 결말이다. 선도 없고 상식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기준, ‘지극한 주관’이 최고의 기준일 뿐이다.
자기자신이 되어 살라는 말은 너무 위험하다. 그보다는 자신을 죽이고서라도 사회가, 모두가 바라는 가치를 쟁취해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다다라야할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그러니 그 어느 누가 노자처럼 나누어주고 보태주고 채워주려 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안전하기를 바라고 평온하기를 바라며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모든 철학은 결국 윤리를 향한다. 그런데 왜 도를 이야기하고,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신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왜 이런 것들은 뜬구름처럼 다가올까. 그 이유는 현실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현실이 그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현실의 인간들이 도를 통해, 이데아를 통해, 신을 통해 말하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과 그러한 이성과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전체 피조물 가운데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것은 또한 한낱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목적 그 자체다. 인간은 자유의 자율에 힘입어 신성한 도덕법칙의 주체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칸트는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존재나 기계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윤리를 실천하는 자율성을 지닌 존재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로부터 인간의 고귀함이 가능하고 모든 이가 고귀하다는 이 보편성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실현하며, 이것이 바로 인간다움을 실천하는 일이자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임을 주장하고 있다.
51장은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5장에서도 등장했던 그 지극한 현덕을 오늘날의 개념으로 바꾸자면 바로 타인에 대한 동정, 공감, 공존, 연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은 곧 타인을 나처럼 존중하고 고귀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곧 노자가 말하는 도이자 덕이다. 하늘엔 도, 마음엔 덕.
내 위엔 빛나는 하늘이 있고, 내 마음속엔 도덕법칙이 있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노자 도덕경 1-30장은 아래에서
https://brunch.co.kr/brunchbook/taoteching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ohmykorea-desiresubjec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