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들고 스며들며 젖어들기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이는 알지 못한다. 입구(구멍)를 막고 문을 닫으며, 날카로운 것은 무디게 하고, 복잡하게 얽힌 것을 풀어주며, 빛이 비치는 것처럼 은은하고, 먼지가 가라앉는 것처럼 잔잔할 따름이니, 이를 일러 ‘현동(玄同, 지극한 동일함)’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가까이하기도 하고 멀리하기도 하며,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며, 귀하기도 하고 천하기도 하다. 그리하여 (진정) 세상에서 가장 귀할 수 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가 아는 것에 말하지 않는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이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는 이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거나 무언가를 말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침묵할 수 없다면 사색은 어렵고 사색이 어렵다면 새로운 통찰을 얻기도 어렵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왜 이 구절이 여기에 속해 있는지 조금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여하튼 속해 있기에 무언가 속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번역하는 것이 고전 풀이이기도 하다. 그러다 이것이 아니라면, 다른 것을 발견하고 다른 이해와 의미로 살을 붙여나가기도 하니까. 그렇게 맥락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지면서도 똑같아지지 않지만, 소인은 똑같아지기를 바라며 결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논어>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가까이 있으나 들여다보면 멀리 있고, 저어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지만 돌아보면 곁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또한 나에게 이로워 가까이하고 싶지만 그가 바라는 이로움을 주는 것은 아니고, 해로운 느낌이라 멀리 떨어져 있고 싶으나 지나고 보면 그것이 꼭 해로운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이로울 때가 있다. 귀하고 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때는 귀하고 어느 때는 그 귀한 것이 가장 천한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남들 바짓가랑이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직장이니, 같은 직급이니 너와 내가 무엇이 다르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비슷한 족속이 되어야 하고, 좀 다르거나 튀어 보이거나 잘나 보이면, 온갖 수단과 뒷말을 동원하여 눌러버리거나, 아니면 아주 보내버리거나. 그래서 얻는 것은? 아주 잠깐의 안정. 그리고는 또 누굴 사냥할까, 하며 탐색하기 바쁘다.
도에는 본래 한계가 없고, 말에는 본래 법칙이 없다. 말에는 구별이 생기는데, 그 구별에 대하여 말해 보고자 한다. 말에는 왼편이 있고 오른편이 있으며, 이론이 있고 설명이 있으며, 분석이 있고 분별이 있으며, 대립이 있고 다툼이 있다. 이것을‘여덟 가지 덕’이라 말한다.
세상 밖의 일에 대해 성인은 살피기만 할 뿐 논하지 않고, 세상 안의 일에 대헤서는 논하기만 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춘추春秋>는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책으로, 옛 임금들의 의도가 실려 있는데, 성인은 이를 헤아릴 뿐 따져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구분해야 할 것에 대해 구분하지 않고, 따져 물어야 할 것에 대해 따져 묻지 않는다. 어찌 그러한가? 성인은 모든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나 보통 사람은 모든 일을 따져물음으로써 자기를 내세우려 하기 때문인 것이다. 따져묻는 이들은 대개 잘못된 견해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장자>
그리하여 진짜로 아는 이는 세상에 녹아드는, 젖어드는, 스며드는 이들이다. 세상과 함께하면서도 절대로, 결코 자기자신 역시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다. 그들은 다른 존재들과 갈등하지 않고, 그들을 차별하지도 않으며,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과 완전히 똑같아지지는 않기에, ‘지극한 동일함’이다.
이 ‘현동(玄同, 지극한 동일함)’은 \<장자\>에 등장하는 ‘제물’로도 이해해볼 수 있다. 제물(齊物)이란 세상 만물을 가지런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그 차이를 넘어서 동일한 가치로 동등하게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장자에는 ‘똥에도 도가 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인간이 가장 하찮게 여기는 것도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다를 게 없다는 뜻. 똥이나 도나, 금이나 똥이나, 그것이 그것.
인간은 이 커다란 우주에 속해 있는 지구에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 아주 짧은 순간 생명으로 존재하다 다 흩어져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정신도 물질도 모두 우주의 구성 물질로 잘게잘게 쪼개어져 다시 머나먼 우주로 사라질 뿐. 그러하니 너무 가지려 애쓰는 대신 적당히, 세상과 나누며, 그렇게 살아가기.
*노자 도덕경 1-30장은 아래에서
https://brunch.co.kr/brunchbook/taoteching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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