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의 시) 나는 내가 아니다,Walk-in

by 제이엘 JL


(JL의 시) 나는 내가 아니다, Walk-in

**워크인(Walk-in)뜻: 누군가의 몸 속에 나도 모르는 다른 영혼이 깃드는 것**


1 스며든 나


나는 들어왔다

아무도 모르게 틈새를 파고들어

너의 시간과 기억을 잠식한다


너는 나를 경계하며

나는 너를 살아간다


거울 속 너는 무심히 나를 응시한다

그 무표정하고 차가운 눈빛 속에서

네가 나를 간신히 견디고 있음을 안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밀어낼 수도

서로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2 희미해진 나


어쩌면 나는 지워지고 있다

나에 대해 가장 모르는 건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3인칭이 되어간다

거울 속의 나는 이제 나를

타인처럼 낯설게 바라본다


내가 울었던 이유를 알 수 없고

내가 한 말은 허공에 흩어진다

나는 그저 나를 흉내 내는 껍데기

갈수록 점점 흐릿하게 희미해진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라는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부르는 이름 뒤에 묻혀

세상이 씌워준 가면 뒤에 숨어

가짜의 나를 진짜라 믿었을 뿐

점점 경계가 지워지는 것일 뿐


3 나는 내가 아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꿈속을 헤맨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슬픔에 젖는다


나는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의 생을 살고 있는가

이 몸은 누구의 것인가

이 영혼은

어느 육신의 그림자인가


나는 또 묻는다

눈을 뜨는 것이 깨어남인가

영원히 감는 것이 깨어남인가


나는 깨어나고 싶다

아니 깨어나야만 한다


잠든 적 없는 잠 속에서

꿈인 줄 몰랐던 꿈에서


나는

나를 살고 있는 타인이다


그리고

그 타인은

'나'라고 불린다


나는 내가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니다


탕진할 것조차 없는

텅 빈 생에 잠시 깃든


나도 모르는,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4화(JL의 시) 내 안의 울림, 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