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의 시) 피어날 꽃은 피어난다

by 제이엘 JL

(JL의 시) 피어날 꽃은 피어난다


저 봄꽃은

자신이 피어날 시절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서두르지 않고

다만 제 안의 숨이 깊어질 때를 기다리며

온 힘을 다해 생의 한 마디를

조용히 밀어 올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혼자만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하고

나만 숨죽인 꽃눈을 틔우지 못한 채

겨울나무로 서 있는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허나 세상에 이유 없이 늦게 피는 꽃이 있을까요

더 고운 빛깔, 더 깊은 향기를 채우기 위해

조금 더 두터운 슬픔을 뚫고 있을 뿐입니다


숨 막히게 당신을 가뒀던 낡은 세계의 껍질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싹 틔우는 당신의


뿌리 끝까지 고독의 수액을 채워나가며

생을 단단히 다지는 고요한 묵상의 시간

그 어둡고 시린 겨울이 지나가면

비로소 가장 환한 봄의 몸을 열고


피어날 꽃은

기어이 피어납니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2화(JL의 시) 세컨드 윈드, Second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