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나운서와 게이샤, 여성성의 상품화와 소외

by NAHDAN

제2부

억압의 시스템 - 개인을 소거하는 사회 구조




9. 아나운서와 게이샤, 여성성의 상품화와 소외



일본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하려면 두 개의 극단적 여성상을 보면 된다. 하나는 게이샤(芸者)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 아나운서다. 게이샤는 전통 속에서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존재로, 아나운서는 현대 미디어에서 남성의 시선을 즐겁게 하는 존재로 기능한다. 둘 다 겉으로는 '예술성'이나 '전문성'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여성성을 상품화하여 소비하는 구조의 상징이다. 2025년 현재에도 일본은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 3위(22.1%)를 기록하고 있고, 여성의 첫 출산 후 퇴사율이 42.1%에 달한다. 이런 수치 뒤에는 여성을 독립적 주체가 아닌 '소비의 대상'으로 보는 뿌리 깊은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게이샤와 아나운서 사이에는 500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지만, 그들이 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락된 '안전한 영역' 안에서 제한적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남성의 욕망과 환상을 충족시키는 존재로 머무르는 것이다. 이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여성의 성공 모델'로 제시되었지만, 실제로는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제하는 정교한 메커니즘의 일부였다. 오늘날 일본 여성들이 여전히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은 일본 사회가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에 저항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게이샤, 남성이 만든 이상적 여성의 원형


게이샤라는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그 기원부터 살펴봐야 한다. 놀랍게도 최초의 게이샤는 남성이었다. 1600년대 에도 시대 초기, '게이샤'라는 말 그대로 '예능에 종사하는 자'들은 주로 남성 연예인들이었다. 이들은 다이묘들의 연회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재담을 하는 전문 엔터테이너였다.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여성들이 이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게이샤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여성 게이샤의 등장은 에도시대 상업 문화의 발달과 맞물려 있다. 막부의 엄격한 신분제 하에서도 상인들의 경제력은 점점 커져갔고, 이들은 자신들만의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요시와라 같은 유곽은 단순한 매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단지였고, 게이샤들은 그 문화의 핵심을 담당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게이샤가 남성들의 이상을 투영한 '인공적 여성상'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게이샤가 체화해야 했던 덕목들을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들은 교양 있고 예술적 소양을 갖추어야 했지만, 동시에 남성들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다. 지적이어야 했지만 남성을 위협하지 않을 정도로만, 아름다워야 했지만 소유 가능한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야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진짜 여성'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게이샤로서의 정체성과 양립할 수 없었다.


이런 구조는 당시 일본 사회의 여성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에도시대 여성들은 '오쿠사마(奥様, 안주인)'로서 집안에 머물러야 했고, 공적 공간에서의 활동은 철저히 제한되었다. 게이샤는 이런 제약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형태의 감금이었다. 그들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는 배제되었지만, 대신 남성의 오락을 위한 공적 영역에 허용되었을 뿐이다. 이는 여성을 '아내와 어머니' 또는 '유흥의 대상' 이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 가두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논리였다.


메이지 이후에도 게이샤 제도는 계속되었지만, 그 사회적 의미는 더욱 복잡해졌다. 서구 문명과의 접촉으로 '근대적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이상이 등장했지만, 게이샤는 '일본 전통 여성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상징으로 재포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게이샤는 실제 역사적 존재가 아닌 '박제된 전통'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대신, 남성들의 향수를 충족시키는 산업화된 기호가 되었다.




현대 게이샤의 딜레마, 전통인가 관광상품인가


2025년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게이샤의 수는 교토의 기온 지역을 중심으로 약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은 '일본 전통 문화의 보존자'라는 숭고한 타이틀을 부여받고 있지만, 실상은 관광 산업의 일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게이샤와의 만남을 '진정한 일본 문화 체험'으로 여기지만, 정작 그들이 만나는 것은 상업화된 퍼포먼스일 뿐이다.


현대 게이샤들이 직면한 가장 큰 모순은 '전통성'과 '상업성' 사이의 괴리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수백 년 전통의 예능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당 수십만 원을 받는 고급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전통적 교육 과정인 '미나라이(見習い)'와 '마이코(舞妓)'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은 현대적 접객 기술과 외국어 회화 능력이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런 상업화 과정에서 게이샤의 본래 의미마저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게이샤는 단순한 접대부가 아니라 고도의 예술적 소양을 갖춘 문화인이었다. 그들은 시를 지을 줄 알았고, 정치와 경제에 대한 식견도 있었으며, 때로는 유력 인사들의 상담자 역할까지 담당했다. 하지만 현재의 게이샤들은 주로 '전통적 외모'와 '예쁜 미소'로 평가받는다. 관광객들이 원하는 것은 깊이 있는 문화적 소통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이국적인'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현대 일본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이샤는 여전히 '일본 여성의 이상향' 중 하나로 제시되지만, 그 이상향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남성의 시선에 맞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간과된다. 젊은 여성들 중에는 게이샤의 '우아함'이나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이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망하게 된다. 게이샤의 세계는 생각보다 폐쇄적이고 위계적이며, 개인의 자유나 창의성보다는 전통적 틀에 대한 순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성 아나운서, 미디어가 만든 신데렐라 신화


게이샤가 전통 속의 이상적 여성상이라면, 여성 아나운서는 현대 미디어가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여성성 상품화다. 일본에서 여성 아나운서는 단순한 뉴스 진행자가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이자 '상품'이다. 그들은 '아나운서'라는 전문직의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예쁘고 똑똑한 여성' 역할을 담당하는 연예인에 가깝다.


일본 여성 아나운서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아이돌화'다. 방송국들은 아나운서를 뽑을 때 전문성보다는 외모와 친근한 이미지를 우선시한다. 실제로 많은 여성 아나운서들이 미스 콘테스트 출신이거나 모델 경력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의상도 뉴스의 품격보다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서 아나운서들이 비교적 단정한 정장을 입는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플레어 스커트나 화려한 원피스를 입는 경우가 많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그들은 뉴스를 전달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남성 진행자의 '맞장구치는' 조연이다. "그렇군요!", "정말 대단하네요!", "어머, 몰랐어요!"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남성 진행자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역할, 즉 '남성을 지지하고 받쳐주는 존재'를 그대로 반영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이런 여성 아나운서들을 두고 심각한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아나운서를 아이돌로 만드는 것이 문제"라며 방송국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국들은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이유로 이런 관행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이 심해지면서 더욱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여성 아나운서 개인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그들은 '전문직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모와 연기력으로 평가받는다. 실력보다는 인기가 중요하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구조다. 많은 여성 아나운서들이 결혼과 함께 은퇴하는 것도 이런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신데렐라 신화'의 주인공이 되지만, 동시에 그 신화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메이지 민법의 유산, 제도화된 여성 차별

현대 일본의 여성 문제를 이해하려면 1898년 제정된 메이지 민법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법은 서구의 근대 법제를 모델로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교적 가부장제를 법적으로 공고히 한 것이었다. 특히 '이에(家)' 제도는 개인보다 가문을 우선시하고, 가장의 절대적 권위를 법적으로 보장했다. 이 체제 하에서 여성은 평생 누군가의 보호와 통제를 받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메이지 민법이 규정한 여성의 지위는 충격적이었다. 여성은 결혼과 함께 친정 집안의 호적에서 제외되어 남편 집안의 호적으로 옮겨졌고, 이는 마치 물건을 이전하는 것과 같은 절차였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허락 없이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었고, 재산을 소유하거나 처분할 수도 없었다. 이혼 역시 남편에게만 허용된 권리였으며, 여성은 아무리 남편이 잘못해도 일방적으로 이혼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런 법적 차별이 '여성 보호'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었다는 점이다. 메이지 정부는 "여성은 연약한 존재이므로 남성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여성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차별이었다. 여성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제한되었고, 직업 선택의 자유도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허용된 역할은 '현명한 어머니, 좋은 아내(賢母良妻)'뿐이었다.


이런 시스템은 1947년 전후 헌법과 민법 개정으로 법적으로는 폐지되었다. 새로운 헌법은 "법 앞의 평등"과 "양성평등"을 명시했고, 민법도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개정되었다. 하지만 법은 바뀌었어도 사회 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50년간 일본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가부장제적 사고방식은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되어 계속 이어졌다.


특히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회사인간'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로 구성된 핵가족 모델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겉으로는 근대적 가족 형태처럼 보였지만, 본질적으로는 메이지 시대 '이에' 제도의 변형이었다. 남성은 회사에서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책임을 지고, 여성은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전념하는 구조였다. 이런 시스템은 남성에게는 안정적인 가정을, 여성에게는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여성을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또 다른 형태의 통제 메커니즘이었다.



현대 일본 여성의 딜레마, M자 곡선의 함정


2025년 현재 일본 여성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소위 'M자 곡선'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여성의 연령별 고용률을 그래프로 그리면 20대 초반과 40대 후반에서 높고, 30대에서 급격히 떨어지는 M자 모양을 보인다. 이는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했다가 자녀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재진입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일시적 이탈'이 여성들의 경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2019년 기준으로 여성의 첫 출산 후 퇴사율이 42.1%에 달한다. 이들이 재취업을 하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일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들의 연공서열 시스템에서는 경력 단절이 곧 승진 기회의 영구적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여성들이 '커리어'와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다.


이런 현실은 일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정부는 '여성 활약 추진'을 국정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기반해 있다. 직장에서는 장시간 근무와 잦은 회식이 당연시되고, 육아나 가사는 여전히 여성의 책임으로 여겨진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2023년 기준 17.13%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대부분 며칠에서 몇 주 정도의 단기간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구조가 여성들 사이에서도 내재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여성들이 '좋은 남편을 만나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여전히 이상적인 삶으로 여긴다. 실제로 결혼정보회사들의 조사를 보면, 20-30대 여성들 중 상당수가 '결혼 후에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답한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체념적 반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부장제적 사고의 재생산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보육시설 확충, 육아휴직 확대, 재택근무 활성화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사회 의식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보조적 존재'로 보는 시각, 가사와 육아를 '여성의 자연스러운 역할'로 보는 인식, 경쟁보다는 조화를 우선시하는 문화 등이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변화는 어렵다.



아이돌 문화와 여성성의 극단적 상품화


현대 일본에서 여성성의 상품화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분야는 아이돌 문화다. AKB48을 필두로 한 대형 아이돌 그룹들은 단순한 연예인을 넘어서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문제는 이 산업이 '순수하고 어린 소녀'라는 이미지를 극도로 상품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아이돌들에게는 '연애 금지'라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이들은 팬들에게 '가상의 연인' 역할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연애를 하면 '배신'으로 간주된다. 일부 아이돌들은 연애 사실이 발각되자 삭발을 하고 공개 사과를 하는 극단적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는 여성의 성적 자율권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며, 여성을 남성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런 문화가 점점 더 어린 나이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아이돌 그룹까지 등장하고 있고, 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언더 피프틴' 같은 프로그램이 아동 성상품화 논란으로 방영이 중단된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상대적으로 낮다.


일본의 FreeK-Laboratory 소속 걸그룹.Chura의 의미는 스페인어로 "귀여운 소녀"를 의미한다.


이런 아이돌 문화는 일반 여성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아이돌 같은 외모', '아이돌 같은 성격'이 이상적 여성상으로 제시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본모습보다는 남성들이 선호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부리부리(ぶりぶり, 교태를 부리는 것)'한 말투나 행동이 유행하기도 한다. 이는 성인 여성이 어린 소녀를 흉내 내는 퇴행적 현상이다.


아이돌 산업의 또 다른 문제는 경제적 착취 구조다. 대부분의 아이돌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데 비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적은 수입을 받는다. 그들은 '꿈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교육받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미지와 노동력을 헐값에 제공하고 있다. 이는 일본 사회 전반에 깔린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소외받는 목소리들, 페미니즘의 조용한 저항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여성들의 조용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MeToo 운동이 일본에서는 #私も(나도)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고,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페미니즘 운동은 서구나 한국에 비해 상당히 조심스럽고 온건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일본 사회의 '갈등 회피' 문화와 관련이 있다. 직접적인 대립이나 급진적 변화보다는 점진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성차별 문제를 제기할 때도 '권리 투쟁'보다는 '상호 이해'나 '상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온건함이 때로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개인적 차원의 적응이나 우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방식이 일본 사회의 특성에 맞는 현실적 전략이라는 측면도 있다. 급진적 변화에 대한 저항이 강한 사회에서는 점진적이고 비대립적인 접근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적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 가사 노동의 불평등한 분담,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조용한 저항에서 좀 더 가시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게이샤에서 아나운서까지, 500년을 넘나드는 일본의 여성성 상품화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시선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취급되고, 그들의 가치는 얼마나 매력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가로 측정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구조에 대한 의문과 저항도 커지고 있다. 방관의 섬에서 가장 오랫동안 침묵했던 목소리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 목소리들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침묵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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