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의 획일화, 생각 없는 세대의 양산

- 방관의 섬, 일본

by NAH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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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제도와 획일화, 생각 없는 세대의 양산





메이지 이래 150년, 황국신민 양성 시스템의 지속


일본 근대 교육의 출발점은 1872년 '학제(學制)' 공포였다.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근대적 교육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그 본질은 '황국신민(皇國臣民)' 양성에 있었다. 개인의 자아실현이나 창의성 계발이 아니라 천황에게 충성하는 순종적 국민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진짜 목표였던 것이다.


1890년 공포된 '교육칙어(教育勅語)'는 이런 목적을 명확히 드러냈다. "일단 완급이 있으면 의용공에 봉사하여 이로써 천양무궁한 황운을 부익하라"는 구절이 보여주듯, 교육의 최종 목표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신민을 기르는 것이었다. 개인의 사고나 판단보다는 무조건적 복종과 희생정신이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되었다.


문제는 1945년 패전 이후에도 이런 교육철학의 본질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천황에 대한 충성이 국가와 집단에 대한 헌신으로 바뀌었을 뿐, 개인을 집단에 종속시키는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민주주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기존 권위주의적 교육관이 온존되었던 것이다.


전후 일본 교육이 추구한 것은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인재'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개인의 행복이나 자아실현보다는 국가적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는 발상이었다. 고도경제성장기에 필요한 것은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모레쯔 사원(猛烈社員)'이었다. 교육제도는 바로 그런 인간형을 양산하는 데 최적화되었다.


현재의 일본 교육제도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개성 존중'이나 '창의성 계발'을 표방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획일화와 순응이 강요된다. 문부과학성이 아무리 교육개혁을 외쳐도 150년간 축적된 관성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일본 교육의 DNA에는 여전히 '황국신민 양성'이라는 원시 코드가 남아있는 것이다.


실제 일본의 학교 현장을 보면 군대식 규율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학생들은 모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며, 같은 방식으로 인사한다. 개성이나 창의성은 ‘문제 행동’으로 간주되어 철저히 억압된다. ‘튀어나온 못은 망치로 맞는다’는 일본 속담이 오늘날에도 교육 현장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유토리 교육의 실패와 다시 강화된 통제


1980년대 일본 교육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인한 학생들의 스트레스, 왕따와 학교 폭력의 확산, 창의성 부족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유토리 교육(ゆとり教育)'이었다. 여유 있는 교육을 통해 개성을 살리고 창의성을 기르겠다는 취지였다.


1998년부터 본격 도입된 유토리 교육은 수업 시간을 줄이고, 교육과정을 간소화하며, '종합적 학습 시간'을 신설하여 학생들의 자율성을 높이려 했다. 또한 절대평가제를 도입하여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려 했다. 표면적으로는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교육개혁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토리 교육은 철저히 실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철학의 근본적 변화 없이 제도만 바꿨다는 점이었다. 교사들은 여전히 획일적 사고에 갇혀 있었고, 학부모들은 입시 경쟁에 매몰되어 있었다. 사회 전체가 다양성이나 창의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토리 교육이 '학력 저하'라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었다. PISA 등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일본 학생들의 순위가 하락하자, 언론과 여론은 유토리 교육을 '교육의 질 저하'의 원인으로 몰아갔다. 창의성이나 개성보다는 여전히 암기 위주의 학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2008년부터 일본은 유토리 교육을 포기하고 다시 '탈유토리(脫ゆとり)' 정책으로 회귀했다. 수업 시간을 늘리고, 교육과정을 강화하며, 다시 경쟁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잠깐의 개혁 시도도 결국 기존 체제의 강력한 관성 앞에서 좌절된 것이다.


유토리 교육의 실패는 일본 사회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150년간 축적된 획일적 교육문화는 단순한 제도 변경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교사, 학부모, 사회 전체의 의식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한 진정한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현재도 일본 교육현장에서는 유토리 교육(ゆとり教育)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유토리 세대'라는 말은 '나약하고 경쟁력 없는 세대'를 가리키는 부정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육의 다양성이나 창의성을 추구하려던 시도가 오히려 사회적 낙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입시 지옥과 암기 중심 교육의 폐해


일본의 교육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입시 지옥'이다. 한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입시 경쟁을 벌이는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 교육은 사실상 '대학 입시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전락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이 경쟁은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철저히 파괴한다.


일본의 대학 입시 제도는 복잡하고 비합리적이다. 우선 '대학입시센터시험(現 대학입학공통테스트)'이라는 전국 통일 시험을 치르고, 그 다음에 각 대학별 '개별시험(본고사)'을 치러야 한다. 이중의 관문을 통과해야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시험이 암기 위주로 출제된다는 점이다.


특히 센터시험은 객관식 문제 일색으로, 정해진 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능력만을 평가한다. 논리적 사고나 창의적 발상, 비판적 분석 같은 고차원적 사고력은 전혀 평가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오직 '정답'을 외우는 데만 매달리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습관을 잃어버린다.


이런 입시 제도의 영향으로 일본의 중고등학교 교육은 완전히 왜곡되어 있다. 교사들은 입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은 가르치지 않고, 학생들도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역사 수업에서는 연대와 사건명 암기에만 집중하고, 과학 수업에서는 공식 외우기에만 매달린다. 왜 그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는지, 그 과학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고는 사치가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암기 중심 교육이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점이다. 일본은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이 최고 수준이며, 그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입시 스트레스와 관련되어 있다. '수험 우울증'이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입시 경쟁의 부작용이 심각하다.


또한 입시 위주 교육은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정해진 답만 찾는 데 익숙한 세대가 사회에 나가면 혁신이나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만을 추구하게 된다. 실제로 일본의 창업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고, 이는 교육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일본 정부가 대학 입시 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2020년부터 도입된 '대학입학공통테스트'도 기존 센터시험과 큰 차이가 없고, 여전히 암기 위주의 평가가 중심이다. 150년간 지속된 입시 지옥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교실 안의 전체주의와 개성 말살


일본 학교 현장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것은 그 획일성이다. 전국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학생들은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자세로 앉아서, 똑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받는다. 이것은 단순한 질서 유지가 아니라 철저한 개성 말살이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교칙(校則)'이라는 학교 규정이다. 일본 학교의 교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세하고 엄격하다. 머리 색깔, 헤어스타일, 교복 착용법, 가방 종류, 신발 색깔까지 모든 것이 규정되어 있다. 심지어 속옷 색깔이나 양말 길이까지 정해놓은 학교들도 있다.


이런 규정들의 목적은 '집단의 조화'라고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개성을 철저히 억압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다르면 안 된다', '튀면 안 된다'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을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집단에 동화되는 것만이 안전한 선택이라고 학습한다.


교실 내 수업 방식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전형적인 수업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학생들이 받아쓰는 '강의-필기' 중심이다. 학생들의 질문이나 토론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형식적 수준에 그친다. 학생들은 의문을 제기하거나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지메(いじめ)' 문화다. 집단과 다른 행동을 하는 학생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이 현상은 일본 학교의 고질적 문제다. 성적이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쁘거나, 외모가 튀거나, 성격이 특이한 학생들이 주로 표적이 된다. 이지메는 단순한 개인적 갈등이 아니라 획일성을 강요하는 시스템의 산물이다.


교사들조차 이런 획일화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과정은 문부과학성에서 세세하게 정해놓고, 교과서도 검정을 통과한 것만 사용할 수 있다. 교사의 재량권은 거의 없고, 창의적인 수업을 시도하려 해도 제도적 제약이 많다. 결국 교사들도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가르치는 '교육 기계'가 되어버린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갑자기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인간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18년간 획일성과 순응만을 학습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혁신적 사고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경직성과 보수성은 바로 이런 교육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PISA 역설과 진짜 실력의 격차


일본은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22년 평가에서도 수학 5위, 읽기 3위, 과학 2위를 기록했다. 이런 결과만 보면 일본 교육이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전형적인 'PISA 역설'이다.


PISA는 만 15세 학생들의 기본적인 문해력과 수리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주로 객관식이나 단답형 문제로 구성되어 있어, 사실상 암기력과 계산 속도를 측정하는 데 그친다. 일본 학생들이 이런 유형의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초등학교부터 그런 식의 문제 풀이만 훈련받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PISA 점수와 실제 창의성이나 문제해결 능력은 별개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글로벌 경쟁력 지수'에서 일본의 '혁신 능력' 순위는 PISA 순위보다 훨씬 낮다. 2023년 기준으로 13위에 머물러 있다. 기초 학력은 높지만 창의적 사고력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본 학생들의 '학습 동기'나 '자신감' 지표들이다. PISA 설문조사에서 일본 학생들은 "수학이 좋다", "과학이 재미있다"고 답한 비율이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다. 성적은 좋지만 흥미는 없다는 모순적 상황인 것이다. 이는 강압적이고 주입식인 교육 방식의 폐해를 보여준다.


또한 일본 학생들의 '자기효능감'도 매우 낮다. "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즐겁다" 같은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낮다. 시험 점수는 높지만 자신감이나 학습 의욕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 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드러낸다. 단기적으로는 높은 성적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습자의 내재적 동기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강압적 훈련을 통해 일시적 성과는 얻을 수 있지만, 평생학습자로서의 역량은 오히려 저하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성인 학습 참여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 자발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극히 적다는 뜻이다. 이는 학창시절의 강압적 교육이 학습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심어준 결과로 볼 수 있다. PISA 고득점의 이면에는 이런 심각한 부작용이 숨어 있는 것이다.




생각 없는 세대의 양산과 사회적 결과


150년간 지속된 획일적 교육의 결과, 일본은 '생각 없는 세대'를 대량생산하고 있다. 정해진 답을 찾는 데는 능숙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능력은 현저히 부족한 세대 말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정치적 무관심이다. 일본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21년 중의원 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은 36.5%에 불과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 혐오가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 무관심을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학습된 세대가 성인이 되어 정치 참여를 포기하는 것이다.


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기업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젊은 직원들의 '주도성 부족'이다. 지시받은 일은 완벽하게 수행하지만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개선방안을 모색하지는 않는다. 혁신이나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만을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방관 태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중대한 사안에서도 일본 젊은이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비판적 의식이나 저항 정신을 발휘하기보다는 정부나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순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교육을 통해 내재화된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있다. 어릴 때부터 교사의 말은 절대적이고, 교과서의 내용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라고 배운 세대가 성인이 되어서도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국제적 경쟁력에서도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한때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했던 일본이 최근 들어 급속히 뒤처지고 있다. 특히 IT나 바이오 같은 신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이나 한국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이는 기술력 부족이라기보다는 혁신적 사고의 부재 때문으로 분석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본의 위상은 더욱 초라하다.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수에서 일본은 미국, 중국은 물론 인도, 영국, 독일에도 뒤처진다. 안정을 추구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문화가 기업가정신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모두 교육제도에 있다. 개인의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억압하는 교육을 150년간 지속한 결과, 일본은 '순종적이지만 무기력한' 국민을 만들어냈다. 단기적으로는 사회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활력을 고갈시키는 것이다.


일본이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제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150년간 축적된 관성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교사, 학부모, 사회 전체의 의식이 함께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방관의 섬에 갇힌 일본이 진정한 교육 개혁을 이룰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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