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관의 섬, 일본
일본식 고용의 삼신기와 개인 말살 시스템
일본 기업문화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일본식 고용의 삼신기(三神器)'다.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노조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이 삼신기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을 철저히 기업에 종속시키는 정교한 통제 장치였다.
종신고용제도는 표면적으로는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온정주의적 제도로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를 회사라는 울타리에 가둬놓는 감옥이다. 한 번 입사하면 정년까지 그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이직은 '배신행위'로 간주된다. 최근 일본에서 '알럼나이 채용(퇴직자 재채용)'이 화제가 되는 것도 그동안 이직자들을 '배신자' 취급했던 문화의 반증이다.
더욱 교묘한 것은 이 종신고용이 실제로는 매우 선별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특권이었을 뿐, 여성이나 비정규직, 중소기업 직원들은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2024년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이 40%에 육박한다는 것은 종신고용이 얼마나 허상에 불과한지를 보여준다. 소수의 '선택받은' 정규직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을 마치 일반적인 제도인 양 포장한 것이다.
연공서열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와 근속연수에 따라 승진하고 임금이 오른다는 것이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를 무시하는 비합리적 시스템이다. 젊은 직원들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보여도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승진에서 배제되고, 나이 든 무능한 상사들은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시스템에서 개인의 창의성이나 도전정신이 발휘될 여지는 없다.
기업별 노조는 더욱 기막힌 제도다. 일반적으로 노조는 경영진과 대립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일본의 기업별 노조는 사실상 경영진의 하부조직이다. 노조 간부들은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한 경력 쌓기 코스로 노조 활동을 하고, 결국 경영진 편에 서게 된다. 노동자들의 진정한 권익보다는 회사 전체의 '조화'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이 삼신기가 결합되면서 일본 직장인들은 '회사라는 가족'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개인의 삶이나 가치관보다는 회사의 논리가 우선시되고, 회사를 위한 희생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회사 밖에서의 정체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오로지 '○○회사 직원'으로서만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일본 기업문화가 만들어낸 '개인 말살 시스템'의 핵심이다.
샐러리맨이라는 굴레, 현대판 농노제
'샐러리맨(サラリーマン)'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 직장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웅변한다. 그들은 월급을 받는 존재, 즉 '급여에 의존하는 사람'일 뿐이다. 독립적인 인격체나 전문가가 아니라 회사라는 기계의 부품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정체성은 에도시대 농민들이 토지에 묶여 영주에게 예속되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현대판 농노제라고 할 수 있다.
샐러리맨 문화의 핵심은 '전인격적 헌신'이다. 단순히 근무시간 동안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365일 회사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퇴근 후 상사와의 회식은 사실상 강제이고, 주말 골프나 각종 모임 참석도 업무의 연장선으로 간주된다. 개인적인 취미나 가족과의 시간은 '사치'로 여겨진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노미니케이션(飲みニケーション)'이라는 용어다. '마시다(飲み)'와 '커뮤니케이션'을 합친 말로, 술자리를 통한 소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 위계질서를 재확인하는 의식에 가깝다. 부하 직원들은 상사의 술잔을 받아 마시며 절대 복종을 맹세해야 하고, 개인적인 의견이나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화가 가정생활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일본 남성들의 가사 참여율과 육아 참여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회사 일이 우선'이라는 논리로 가족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그 결과 일본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경력을 포기해야 하는 'M자 곡선' 현상에 시달리고, 저출산 문제도 심화된다.
이런 샐러리맨 문화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철저히 봉쇄한다. 회사에서 정해준 역할과 목표만 추구하면 되고, 개인적인 꿈이나 비전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일본 직장인들에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당황한다. 회사라는 틀 안에서만 살아온 그들에게 개인적인 꿈이라는 것은 낯선 개념이다.
퇴직 후의 모습은 더욱 비참하다. 40년 가까이 회사에만 의존해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사회에 홀로 던져지는 것이다. 회사 밖에서의 인간관계나 취미, 관심사가 전혀 없어서 '정년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고령자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카로시, 죽음으로 이르는 충성 경쟁
일본이 세계에 '기여한' 가장 부끄러운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카로시(過労死)'다. 과로로 인한 죽음을 뜻하는 이 단어가 'Karoshi'라는 영어로 옥스퍼드 사전에까지 등재된 것은 일본 기업문화의 잔혹함을 전 세계에 알린 상징적 사건이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회문제가 된 카로시는 현재까지도 일본 사회를 괴롭히는 고질병이다.
카로시의 메커니즘은 복합적이다. 우선 법정 근로시간은 있지만 '서비스 잔업(サービス残業)', 즉 무급 초과근무가 일상화되어 있다. 상사가 야근을 하고 있으면 부하 직원이 먼저 퇴근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결국 모든 직원들이 새벽까지 회사에 남아 있게 된다. 실제 업무가 없어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더욱 교묘한 것은 이런 과로가 '자발적'인 것처럼 포장된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직접 강요하지는 않지만, 승진이나 인사평가와 연결시켜 간접적으로 압박한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나 '책임감'을 내세워 과로를 미화하고, 적당히 일하고 퇴근하는 직원을 '의욕 부족'으로 낙인찍는다. 개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과로의 늪에 빠져든다.
카로시의 전형적인 패턴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성과욕으로 시작된 장시간 근무가 점차 습관화된다. 가족과의 시간은 줄어들고 개인적인 여가나 휴식은 사치가 된다. 스트레스는 누적되지만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문화 때문에 호소할 곳도 없다. 결국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같은 과로 관련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된다.
2015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덴쓰 신입사원 다카하시 마츠리의 자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24세의 젊은 여성이었던 그녀는 입사 후 월 1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와 상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회사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녀가 SNS에 남긴 "잠을 자고 싶다", "죽고 싶다"는 절규는 일본 직장인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참사가 반복되어도 일본 기업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고 법정 초과근무 시간을 제한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로가 만연해 있다. 단순히 제도만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150년 이상 축적된 기업문화의 DNA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직적 위계와 의사결정의 마비
일본 기업의 또 다른 고질병은 극도로 수직적인 위계제도다. 유교적 전통과 사무라이 문화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 시스템에서는 상급자에 대한 절대 복종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진다. 하급자는 상급자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것조차 '생각 없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일본 기업의 회의 문화를 보면 이런 위계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네마와시(根回し)'라는 독특한 관행이 그것인데, 공식 회의 전에 미리 관련자들과 개별적으로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을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합의를 중시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자들이 사전에 결과를 조작하는 수단이다.
정작 공식 회의에서는 실질적인 토론이나 대안 제시가 거의 없다. 이미 윗선에서 결정된 사안을 형식적으로 추인하는 것이 전부다. 참석자들은 상급자의 눈치를 보며 적당한 시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나 창의적 아이디어 제시는 애초부터 기대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결재 라인의 복잡함이다. 사소한 결정도 수십 명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원래 취지가 완전히 왜곡되거나 아예 무산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신에게는 아직 12명의 결재라인이 남아있습니다'라는 인터넷 밈이 나올 정도로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은 비효율적이다.
이런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젊은 직원들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개선안이 있어도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묵살당한다. 창의적 사고나 도전 정신은 오히려 '조직의 화합을 해치는' 요소로 간주되어 억압된다. 그 결과 젊은 직원들은 점차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학습하게 된다.
반면 고령의 관리자들은 실제 업무 능력과 무관하게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지위를 유지한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이나 신기술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만, 사내 정치에는 능숙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집중한다. 이런 구조에서 일본 기업들이 혁신에 뒤처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집단주의라는 가면 뒤의 개인 소외
일본 기업문화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집단주의'다.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조화와 협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진정한 집단주의가 아니라 개인을 억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기업의 '집단주의'는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통행이다. 아래에서는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 하지만, 위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이용한다. 일반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야근과 휴일 근무를 감수해야 하지만, 경영진들은 회사 돈으로 골프를 치고 접대비를 쓴다. 집단주의는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더욱 교묘한 것은 이런 불평등을 '일본적 가치'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주장하면 '서구적 개인주의에 물든' 것으로 비난받고, 집단에 순응하는 것만이 '성숙한' 태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논리의 실제 목적은 기존 권력 구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직장인들과 개별적으로 대화해보면 대부분 현재의 기업문화에 불만을 갖고 있다. 과로에 시달리고,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으며, 개인적인 삶을 희생해야 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는 이런 불만을 표출하지 못한다. '집단의 화합'을 깨뜨린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소외된다. 진정한 자아는 억압하고 회사가 원하는 가면만 쓰고 살아가야 한다. 동료들과도 진솔한 소통이 어렵고, 상사와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모든 관계가 업무적이고 형식적인 것에 그친다.
그 결과 많은 일본 직장인들이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 '샐러리맨 우울증'이나 '번아웃 증후군' 같은 용어가 일반화되어 있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직장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조차 개인의 '적응 능력 부족'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전가하는 것이다.
방관 사회를 만든 기업문화의 책임
일본 사회 전반에 만연한 방관주의는 기업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평생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아온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 앞에서도 수동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기업문화가 양산한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이 사회 전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도 일본인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정부나 전문가의 발표를 그대로 믿고 순응할 뿐, 비판적 의문을 제기하거나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이는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것에 익숙해진 결과다.
정치 참여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식의 타인 의존적 사고가 만연해 있다. 이 역시 회사에서 경영진이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것에 익숙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다. 환경 문제, 인권 문제, 사회 불평등 같은 이슈들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관심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기업문화의 교훈이 사회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방관주의는 결국 일본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새로운 변화나 혁신에 대한 요구가 없으니 기득권층은 안주하게 되고, 사회는 점점 경직된다. 문제가 발생해도 누군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의존적 태도만 있을 뿐, 스스로 나서서 개선하려는 노력은 없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것을 해결하려는 사회적 역동성이 부족하다. 모든 사람이 방관자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업문화가 만들어낸 '순종적이지만 무기력한' 인간들이 결국 사회 전체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일본이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기업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의 창의성과 주체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수평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하지만 150년 이상 축적된 관성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관의 섬에 갇힌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