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설계하고 기록한 '말씀의 상속자들'
그들은 누구였는가?
80년대 대학 캠퍼스의 주인이자, 민주화 투쟁의 '설계자'를 자처했던 이들.
그들은 스스로를 억압받는 민중의 아들이라 칭했지만, 그들의 뿌리는 대부분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그들이 어떻게 부르주아란 말인가? 그들 역시 가난한 집의 자식들이었다."
이것은 '쁘띠 부르주아'라는 계급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순진한 질문이다.
계급은 단순히 통장 잔고의 액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사상)과 사회 구조 속에서의 위치(경제)에 의해 규정된다.
586 학생운동 엘리트들은 그들의 DNA부터가 프롤레타리아와는 이질적인, 명백한 '사상적, 경제적 쁘띠 부르주아'였다.
그들의 혁명은, 그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본질적으로 쁘띠 부르주아의, 쁘띠 부르주아에 의한, 쁘띠 부르주아를 위한 혁명이었다.
그들이 탐독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외쳤지만, 그들이 그 사상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철저히 쁘띠 부르주아적이었다.
전위대 의식(Vanguardism), 혹은 구원자 콤플렉스
그들은 레닌의 '전위당' 이론을 신봉했다.
"무지몽매한 노동 대중은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으며, 오직 과학적 이념으로 무장한 우리 학생/지식인 '전위'만이 그들을 이끌 수 있다."
이 선민사상은 연대의 언어를 가장한 가장 폭력적인 지적 오만이다.
프롤레타리아가 동등한 혁명의 '주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가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프롤레타리아의 '동지'가 아닌 '계몽군주'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관념적 낭만주의
586 프롤레타리아에게 '투쟁'은 내일의 밥줄이 걸린 처절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586 쁘띠 부르주아에게 '투쟁'은 책에서 배운 이념을 실현하는 숭고한 실천이자,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낭만적 드라마였다.
그들은 노동자의 삶의 고통에 공감한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이라는 역사적 주체(Historical Subject)의 관념적 위대성에 매료되었다.
그들의 혁명은 세미나실과 막걸리집에서 완성된 '머릿속의 혁명'이었고, 노동 현장은 그 혁명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실에 불과했다.
도덕적 순결주의와 비타협성
그들은 극단적인 도덕적 순결주의에 집착했다.
노선이 조금이라도 다른 동지를 '회색분자'나 '프락치'로 몰아세우며 끝없는 사상투쟁을 벌였다.
이는 당장의 생존과 타협이 더 중요했던 프롤레타리아의 현실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자일수록, 관념의 순수성에 더욱 집착하는 법이다.
그들의 비타협성은 순수한 열정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지 않은 자들의 '관념적 유희'에 가까웠다.
그들의 사상적 특성은 그들이 처한 경제적, 구조적 위치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쟁'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특권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반란의 사치'를 누릴 시간적 여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완독하고, 밤새 이념 토론을 벌이며, 시위를 조직하는 행위는 엄청난 '시간적 잉여'를 필요로 한다.
하루 12시간씩 미싱을 돌려야 했던 586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불가능한 사치였다.
비록 가난했을지언정, "아들/딸은 우리처럼 살게 할 수 없다"는 부모의 희생 덕분에 당장의 생계에서 한 발짝 비켜나 '시대를 고민할'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의 혁명은 그들이 부정했던 부모 세대의 땀이 만들어준 '잉여의 산물'이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심리적 안전망
586 프롤레타리아에게 파업의 실패는 곧 가족 전체의 생계 파탄을 의미했다.
그것은 실존적(existential) 위협이었다.
그러나 586 쁘띠 부르주아에게 구속과 제적은 '영광의 상처'이자 훗날의 훈장이 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돌아갈 가정과 사회적 관계망이 있었고, '민주화 이후'에 변호사 시험을 보거나 언론사에 입사하여 재기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 믿음이 있었다.
그들의 투쟁은 목숨을 건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모든 것을 잃는 게임은 아니었다.
'문화 자본'이라는 잠재적 부(富)
그들이 대학에서 쌓은 것은 투쟁 경력만이 아니었다.
명문대 학벌, 정교한 이론을 다루는 능력, 논리적 말하기와 글쓰기.
이것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 이다.
80년대에는 당장 돈이 되지 않았지만, 87년 이후 민주화된 사회에서 이 '문화 자본'은 정치권력과 경제적 부로 직접 전환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유망한 '미래의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던 것이다.
586 학생운동 엘리트들은 프롤레타리아의 언어를 사용했을 뿐, 그들의 삶과 감각, 그리고 사회 구조적 위치는 명백히 쁘띠 부르주아의 그것이었다.
그들의 '계급 배반'은 87년 이후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처음 혁명을 꿈꾸던 순간부터 그들의 DNA에 이미 예고되어 있던, 피할 수 없는 계급적 운명이었다.
문화적 자본의 세습
그들의 아버지는 가난했을지언정, '글'과 '지식'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교사, 하급 공무원, 소상공인 등. 비록 부르주아는 아니었지만, 자녀에게 책을 사주고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할 수 있는 '문화적 자본'을 가진 쁘띠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집안에 돈은 없었어도, 책과 신문은 있었다.
'잉여'의 특권
이 문화적 자본의 세습은 그들에게 결정적인 특권을 부여했다.
바로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이념 서적을 탐독하고, 시대를 고민하며, 투쟁에 나설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잉여'였다.
그들의 투쟁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부모 세대의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담론 자본의 축적
그들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서구의 정교한 이론들을 학습하며, 자신들의 저항을 체계적인 '담론'으로 만드는 능력을 길렀다.
그들의 진짜 자본은 화염병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명명하는 '언어'였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훗날 사회의 지배계급이 될 수 있었던 '담론 자본(Discourse Capital)'이다.
우리가 지난 30년간 배워 온 80년대 노동 운동사는 하나의 장엄한 현대 신화(神話)다.
그 신화의 서사는 이렇다.
어둠 속에서 신음하던 무지한 노동 대중 앞에, 어느 날 서구의 선진 사상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사자(使者)처럼, 노동자들에게 해방을 위한 세 가지 성스러운 보물, 즉 '삼종신기(三種神器)'를 하사했다.
첫째는 '계급의식의 거울(鏡)' 이었다.
노동자들은 이 거울을 통해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착취당하고 있는지, 자신들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둘째는 '조직과 투쟁의 검(劍)' 이었다.
노동자들은 이 검을 쥐고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하는 법을 배우며, 자본가에게 맞서 싸울 힘을 얻었다.
셋째는 '혁명 이념의 구슬(玉)' 이었다.
노동자들은 이 구슬을 통해 단지 임금 인상을 넘어, 인간 해방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인가.
이 서사 속에서 대학생 운동가들은 어둠을 밝히는 프로메테우스이자, 길 잃은 양들을 이끄는 선한 목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신화의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가장 추악한 진실을 고발하고자 한다.
이 '삼종신기' 신화는 노동 운동의 역사가 아니라, 엘리트 지식인 집단이 노동계급의 주체성을 어떻게 거세하고, 그들의 투쟁을 어떻게 자신들의 지적 식민지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가장 완벽한 증거다.
이 신화의 전제는 끔찍할 정도로 오만하다.
"노동자는 스스로 깨우칠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의 자생적 투쟁은 결국 엘리트의 지도가 있어야만 완성된다."
이 전제 아래, 노동자의 모든 주체적 고뇌와 자발적 저항은 역사에서 삭제된다.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대학생이라는 감독의 연출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배우로 전락한다.
바로 이것이 타자화(他者化)의 극치다.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구별짓기는, "나는 너희를 이끌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노동자의 '삶의 현장'에 들어왔지만, 결코 그들의 '삶'을 살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 현장'이라는 자신들의 이론적 프레임 안에서 노동자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재단했을 뿐이다.
그리고 가장 역설적인 진실이 여기에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노동 운동사(史)가 단 한 번도 이 '삼종신기' 신화의 구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586 쁘띠 부르주아가 여전히 이 사회의 거대 담론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반증이 아닌가?
만약 노동계급이 진정으로 해방되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역사를 썼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노동 운동사는,
여전히 586 쁘띠 부르주아의 목소리로 쓰인 그들의 영웅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