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이었다.

가면(2)

by 김은석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불경소리가 미치도록 듣기가 싫어졌다.

천지팔양신주경, 신묘장구대다라니, 천수경, 반야심경, 화엄경..

항마진언이 멘털 유지에는 정말 최고였는데 그 마저 못하게 되었다.

외우고 있던 불경 모두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목탁 소리가 귀 옆에서 종을 치듯 울리며 들려올 때면 목탁을 들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머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 구분 지을 수 없는 모습은 뭐라 특정 지어 말하는 것마저 거부한다.

혓바닥에 비릿한 맛을 느껴 입을 벌리면 입술 안쪽 살이 이빨로부터 빠져나오는 감각이 선명하다.


결국, 내가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찾은 것은,

“x팔 이현식, x새끼 이현식. 이현식. 이현식. 이현식. 나는 이현식이다. x팔 x마. 죽인다. 부수고, 작살내서 부수고 조각내고 다져서 조각 모조리 다 씹어먹는다. x팔, x팔, x팔, x팔, x팔...”

내게 고통을 주는 것들을 향해, 발악하며 달려드는 것뿐.

내 이름을 소리 내서 외치다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시는 어머니의 허상이 보였다.

입을 다물고, 소리 없이 이현식의 이름을 삼켰다.

어금니를 씹으며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점점 더 불안해지는 어머니의 눈빛과,

‘나 자. 신. 은. 이. 현. 식. 이. 다. x팔 x 끼야!’

소리가 되지 못한 외침이. 헛구역질을 일으키고 난 결국 화장실로 달려가 속에 있던 것을 모조리 게워냈다.

구토를 하면서도 난 되뇌었다.

머릿속에 소리치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놈들 하나도 남김없이.

그의 이름을 되뇌며.

그가 된 내 이름을 되뇌며.

모조리 다 갈아 죽여 버리겠다고.

변기를 잡고 구토를 하며 울고 있는 내 귀로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너무도 멀게 들려왔다.


의식을 차리자 그리운 냄새가 났다.

포근하고 다정하며 마음이 편해지는 냄새.

어머니의 냄새.

슬며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깼니? 아들. 더 자. 엄마가 옆에 있을게.”

나는 그 목소리에 경직되었던 몸에서 서서히 힘을 빼고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포근한 마음은 오랜만에 내게 휴식을 주었다.

오랜만에.

그리고, 짧게.


-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입안에 맴도는 비릿한 침의 향 마저 그대로인데 오로지 내 생각만 가속된다.

하나씩.

하나씩.

지나쳐 온 생각은 이어지는 생각에 지워지거나 연상된 기억만을 남기고 멀어져야 정상이거늘, 마치 피카소의 얼굴 그림을 본 것 마냥 기억은 모든 각도에서 보이는 각양각색의 얼굴이 되어 생각에 잔향을 남긴다.

어렵사리 한 발짝을 떼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켜 세우면,

변한 건 그저 내가 앉아 있던 자세에서 서 있는 자세로 바뀐 것뿐인데,

갇혀 있던 방이 아닌 마치 넓은 야외 화원의 벤치 앞에 서 있는 것 마냥 햇빛에 눈이 부셨다.

감았던 눈을 다시 떠 주위를 둘러보면, 그곳은 방금 전까지 내가 앉아 있던 좁은 방 낡은 의자 앞.

허리를 숙여 의자 나무 향을 맡아보니 확실한 곰팡내가 나는데, 옷에서는 화원의 냄새가 묻어 있다.

분류되지 않은 기억이, 오류를 두고두고 반복해서, 바라본 생각은 감옥 안에 갇혀버린다.

.

난,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냄새를 맡지도 않았다.

보지 않았으며,

듣지도 않았다.

움직이고, 맡고, 보고 듣는 것을 난 서 있는 그곳에서 손가락 하나, 눈꺼풀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했으며, 하지 않았다.

생각이라는 감옥 속에 가둬져서 느낌이라는 고통에 빠져 두려움에 허덕였다.

생각의 끈을 놓으면 그만인데.

허상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망상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 멈추지 않는 손이 끈을 붙잡고 손에서 힘을 빼지 못한다.

“씨... 브브브브브브-.”

의식이.

차단되었다.

-


눈꺼풀이 무겁다.

몸뚱이가 물에 젖은 솜뭉치 마냥 무겁다.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누가 또 발작하는 나를 잡고 억눌렀나 보다.

앞으로 만나는 사람에게는 필히 자신은 간질 발작을 할 수 있으니 발작을 하면 손가락 하나 건들지 말라고 말해둬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옆으로 몸을 굴려 무릎을 세우고 팔꿈치를 당겼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폐가 당겼다.

“x팔... 드... 럽.. 게, 아.. 퍼...”

의사들은, 발작을 해서 기절을 할 때 본인은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 내가 느끼는 건 뭔데. xx새끼야.’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하고 싶어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지나가고 나면 그건 기억도 감정도 느낌도 희미해진다.

비유하며 생각을 붙잡아 봤자, 그건 그저 비유일 뿐이다.

의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악착같이 생각을 쥐어짜도, 그건 그저 비유일 뿐이다.

그저, 절실해지는 것 하나.

‘살려주세요.’

입 안에서 비릿한 맛이 나는 걸 보니 또 볼 살을 씹은 것 같았다.


아침이 되고, 어머니께서 날 깨우기 위해 방에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엎어진 채 끙끙 앓고 있는 날 보고는 왜 그러냐고 다급히 물으셨고, 나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려 헤실거리며 웃어버렸다.

잠시동안, 밤에는 누가 날 억압 했을까 생각했지만 이내 속으로 웃으며 생각을 털어버렸다.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무것도 상관이 없었다.


몸뚱이를 다시 움직일 수 있기까지 3일이 걸렸다.

잡초가 무성한 공원에 나와 스마트폰에 담아둔 음악을 재생시키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목 근육이 삐걱거렸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을 틀어둔 채 누워있으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시끄러운 소리들이 겹쳐왔다.

허공에서 가면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내게 입을 오물거렸다.

가면이, 내게 물었다.

“기분이 좋은가 봐요?”

나는 담뱃재를 털며 가면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보면 그딴 생각을 할 수 있냐?”

가면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그’의 기억에서 ‘나’를 겪은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나’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봤었어요.

‘나’는 항상 화를 내고, 항상 사람들을 배척했었기에 ‘나’에 대한 기억들의 대부분은 ‘나’가 욕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 내가 지금 욕을 하고 있지 않아서 기분이 좋은 거 같다?”

뚝하고 끊어지는 가면의 대답이 들려왔다.

“네.”

난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누를까 생각하다가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고, 이내 팔을 휘둘러 가면을 향해 담배꽁초를 던졌다.

“이 새끼가 미칬나. 왜 시비 걸고 지랄인데! 야이! x새끼야!”

담배꽁초가 가면을 통과해서 잡초 위로 떨어졌다.

“평상시와 같네요. 다행이네요.”

씩씩거리는 내게 가면이 살며시 다가왔다.

“전에 물어봤던 것 말인데요.”

“뭐!”

“상대하는 것은 모두 제게 맡긴다고 했던 거요.”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

가면이 좌우로 흔들렸다.

“들려주세요. 정보가 없어요.”

난 가면을 노려보다가 말을 씹어 뱉었다.

“x소리.”

가면이 좌우로 흔들렸다.

“없어요.”

“알아서 찾아.”

“없어요.”

“건들지 말고 좀 꺼져! xx새끼야!”

가면이 좌우로 흔들렸다.

“이유가 없어요. 어느 행동에도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아요.”

난 어깨를 늘어트리고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봤잖아.”

가면이 멈칫하더니 입을 오물거렸다.

“들려주세요.”

“나도 몰라.”

“들려주세요.”

“나도 몰라!”

“들려주세요.”

나는 가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은 허공의 가면을 통과할 뿐, 가면을 맞추지는 못했다.

‘나는’, 정말 몰랐다.

머리가 시키는 말이 아니라 입이 시킨 말이었다.

“x팔 x들! 뒷x녕 닦아주는 것도 아니고 지들 업 지들이 닦아야지! 왜 나한테 시키고 지랄이냐고!”

“네?”

내 입이 질러버린 말을 가면이 듣고 나에게 즉시 물었다.

짜증이 급격하게 솟구쳤다.

“뭐!”

“조금 전에 한 말이요.”

“내가 뭐랬는데?!”

“......”

가면은 한숨을 쉬듯 아래로 숙이더니 이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야이 새끼야! 대답은 해주고 가!!”

혼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나와, 멀리서 다가오다 발길을 돌리는 농부 노인,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악기 소리.

난 스마트폰을 주워 바닥에 집어던지려다가 급히 손을 멈췄다.

이건, 아까웠다.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전등 스위치를 눌러 깜깜한 방 안의 불을 밝혔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저녁 7시였다.

부모님은 식사를 하시고 저녁 운동으로 2시간을 걷고 오 실 테니 아직 한 시간의 여유는 있었다.

냉장고를 뒤적여 비엔나소시지를 꺼내 볶고 거기에 계란을 넣어 젓가락으로 휘적였다.

케첩을 부어 한번 더 볶아준 후 조금 전까지 볶고 있던 프라이팬 한쪽에 밥을 담아 식탁에 냄비받침대를 놓고 프라이팬을 놓았다.

추가로 냉장고에서 김치를 담아 놓은 그릇도.


밥을 위 속으로 넣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만들고 먹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분이었다.

방으로 들어가 약봉지를 하나 뜯은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 들러 500ml 생수 한통과 멘솔 담배 한 갑을 산 나는 편의점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5500원을 제대로 계산해서 지불한 자신을 칭찬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간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xxPC방.

나는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원조가 뇌전증이 심해진 후 악착같이 참으며 발을 끊었던 곳.

거기에 오른팔을 더 이상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이후로 눈도 향하지 않던 곳.

난 컴퓨터 앞에 앉아 멍청히 모니터만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한 사이트 주소를 검색해 들어갔다.

헤드셋을 머리에 걸었다.

모니터화면을 꽉 채운 채 재생되는 동영상을 바라보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한참을 모니터 화면에 빠져 있다 허기가 들어 몸을 일으켰더니, 옆 자리에 있던 사람은 이미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내 모니터에서는 햄버거 먹방이 끝나고 라면 먹방이 이어지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되어 조용히 집에 돌아온 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나는 꿈틀거리며 옷을 벗고는 색이 빠진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x팔, 하루 x나 길어...”

난 눈을 슬며시 감다가 짜증을 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책상 서랍에서 약통을 꺼냈다.

스틸녹스 10mg과 자이프렉사 5mg 알약을 입에 털어놓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침을 모아 꿀꺽 약을 삼킨 나는 다시 침대 위 이불속으로 몸을 넣었다.

“자자... 자자... 자빠지, 자자...”

몇 번을 뒤척이며 눈을 뜨고 감기를 수십 번,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시간은 새벽 5시였다,

keyword
이전 01화나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