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3)
가면은 잠들어 있는 이현식의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방을 들러보고 ‘나’가 잠들어 있는 동안 이현식의 몸으로 방안에 있던 책들을 읽었다.
책장 한 줄을 가득 채운 퇴x록을 한참 읽던 가면은 언뜻 눈에 스치는 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표지에는 -기형도 전집-이라고 쓰여있었다.
‘기형도라.’
가면은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책으로 손을 뻗었고, 가면은 책에 빠져 들었다.
나는 뻐근한 눈을 억지로 뜨며 머리맡으로 팔을 휘적거렸다.
손끝에 걸리는 스마트폰을 들어 전원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아무리 못해도 4시간은 잔 것 같은데, 몸과 머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다가 핑하고 오는 현기증에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앉을 수조차 없는 몸뚱이에 진저리를 치며 나는 악을 질렀고, 내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놀라서 방문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오늘 하루 내 외출을 금지시켰다. 담배도, 술도.
몰래 나가서 꽁초라도 주워서 피워야 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눈앞에 가면이 나타났다.
가면이 지그시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속삭이듯이 중얼거렸다.
“못생긴 인간이었네.”
난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밥이나 먹어요. 부모님 점심 드시러 오시면 또 굶고 나가잖아요.”
가면은 내가 외출금지 된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찝찝한 불안감이라 해야 할지, 뭔가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을 잊고 있는 듯한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무시해 버렸다.
나는 김과 밥으로 대충 아점을 때우고 내 방으로 돌아가 컴퓨터 전원을 켰다.
한글 파일을 실행시키고, 깜빡이는 커서를 노려보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단어 하나조차 적지 못한 채 난 한글 파일을 꺼버렸다.
달력의 1부터 17이라는 숫자에 붉은색으로 X표시가 되어있었다.
나는 달력 한 장을 앞으로 돌려 X표시를 확인했다.
이전에 발작을 한 날로부터 한 달하고 12일.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지만, 잠시뿐.
나 자신이 느끼는 전조 증상의 느낌이 목 뒤에서부터 슬며시 정수리까지 올라감을 느끼며,
나는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나, 자신은, 이. 현. 식.이다. xx새끼들아.’
.
어금니를 물고 두 주먹을 말아 쥐며 어깨의 근육을 당긴다.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리며 오른쪽 목 아래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전기가 흐르는 듯한 아린 감각에 이마를 벽에 박았다.
입 안에서 단내와 따뜻한 숨결을 뽑아내고, 확인한 시간은 오전 10시 21분.
감각에서는 30분은 더 흐른 것 같았는데 흐른 시간은 겨우 1분이었다.
.
나는 전조증상(의사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여주지 않는)을 털어내고,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구름이 진한 게 꼭 비라도 쏟아질 듯한 날에 흠뻑 취해 있을 때, MP3 또는 시계로만 쓰던 스마트폰에서 벨소리가 울려왔다.
수신 화면을 터치하고 폰을 귀에 대자 들려오는 목소리.
[올만이다. 쌍똘아. 잘 살았나?]
환청에서 들었던 목소리, 유일하게 남은 친구, 명현이었다.
가면은 ‘그’의 정보를 검색했다.
채명현.
11살에 알게 되었고, 소식을 끊어도 끝내 연락이 오는 사람.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
.
.
가면은 ‘나’의 정보를 검색했다.
채명현.
가끔씩 ‘나’가 ‘그’를 밀어내고 모습을 보였을 때도 멀어지지 않은 사람.
섣부른 감정으로 이현식을 판단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인정’(상대의 본질을 그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한 사람.
.
.
가면은 추가적인 정보를 훑어보고 난 후, ‘나’ 대신 자신이 채명현을 마주했을 때의 행동방식을 구상했다.
오후 4시 20분.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먹구름이 진하게 하늘을 덮은 날.
28년의 세월 동안 알고 지내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눈앞에 서 있었다.
머리 한 구석에서는 가면이 발악을 하고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지금 나는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그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데, 그가 누구고 왜 나를 불러 나와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잊어버린, 주민 등록증과 손거울을 보며 알아낸 내 이름을 속으로 되뇌며, 나는 친구의 말에 맞장구 쳐주며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안 글나, 친구야.”
나는 생각한다. 그의 대답을.
’뜬금없이 날씨 타령은. 오늘 저녁에 한 잔 할래?‘
그는 답했다.
“뜬금없이 날씨 타령은. 오늘 저녁에 한 잔 할래?”
나는 말했다.
“아니, 오늘은 좀 쉴래. 대신 저녁 먹고 담배나 하나 피자.”
그리고 생각했다.
‘한대만? 맥주 한 캔만 하자.’
그가 말했다.
“한대만? 맥주 한 캔만 하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 밥 먹고 톡 보내라.”
나는 그가 돌아서 멀어지는 것을 보며 무심결에 떠올려 버렸다.
-모르는 사람이다.
나 자신과 28년 지기 친구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그 친구의 언행이 내 생각을 따라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가 정녕, 내 망상 속의 존재가 아닌지.
의심하게 되어 버렸다.
내 머릿속 환상의 존재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이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한번 더, 확인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없는 시간에 집에 들어가 밥을 먹고 나온 나는, 공원을 걷다가 명현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랜만에 치킨 호프집이나 가자고. 생맥이나 한잔하자고.
명현은 바로 답이 왔고, 곧, 나와 명현은 호프집에서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와 생맥 500cc를 한잔씩 들고 잔을 부딪히고 있었다.
“언제 왔노? 온다는 연락도 없드만. 잘 살았고?”
‘이틀 됐다. 니도 알제? 내 사촌 동생 제니라고. 관광 제대로 시켜주드라.’
“이틀 됐다. 니도 알제? 내 사촌 동생 제니라고. 관광 제대로 시켜주드라.‘
“재미있었겠네. 뭐 보고 왔는데?”
‘디즈니 가서 놀고 왔다.’
“디즈니 가서 놀고 왔다.”
“재미있었겠네.”
‘마블도 실컷 보고.’
“마블도 실컷 보고.”
슬며시 짜증이 올라왔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두 잔 째 생맥을 시켰다.
주량이 소주 3잔이었던 나는 취기를 느끼며, 담배타임을 권했고, 나와 명현은 호프집에서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부들거리는 오른손으로 담배를 피우다 왼손으로 손을 바꾸는 내 모습을 본 명현이 내게 물었다.
“팔은 아직 안 나았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말이 귀에 들려왔다.
(가면은 생각했다. 그의 기억에서 이 감정은 설렘, 일 것이었다.)
“고마, 이리됐다. 전봇대에서 떨어질 뻔 해가.”
“계속 그란기가?”
난, 실없이 웃어버렸다.
“모린다. 지금... 한 6년 됐나? 아니, 5년 짼가? 대충 그 정도 됐지 싶다.”
시간을 새던 감각이 틀어진다.
어찔 거리는 게 취기가 올라온 건가 싶었다.
난 불현듯 명현에게 물었다.
“오야. 우리 지금 몇 살이더라.”
두 눈을 깜빡이던 명현이 답했다.
“시답잖게 갑자기 와그라노. 우리 40이다. 와?”
묻지 말았어야 했다.
이질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난 명현에게 물었다.
“니, 언제 귀국했노?”
명현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 재떨이에 비볐다.
“들가자. 쌍똘아. 먹던 건 마주 먹고, 집에 보내 줄 꾸마.”
난, 명현의 팔을 잡았다.
“말해라. 내 빡치는 거 보기 싫으면.”
명현은 피식 웃더니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이미 니 빡치 있거든. 쌍돌아.”
명현은 한숨을 푹 쉬더니 답했다.
“내 귀국한 지 1년 됐다. 마블얘기 또 해줄까?”
나는 암담해지는 눈앞에 잠시 비틀거렸지만 강하게 팔을 붙잡는 힘에 다시 몸을 가눴다.
괜찮냐고 묻는 명현의 팔을 뿌리치고 나는 몸을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더 이상 그의 옆에 있는 것이 소름이 끼쳤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이번에는 내 1년이 증발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오영지 교수는 내 앞에 앉아서 내 뒤에 서 있는 어머니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아드님은 요즘 좀 괜찮으세요?”
어머니는 잠시 주춤하시더니, 최근에 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얘 친구 중에 명현이라고 있는데예.”
“네. 어머님.”
“걔가 전화해서 말해주더라고요. 술자리에서 1년 전에 이야기를 물으면서, 요 1년간의 일은 기억을 못 하더라구요.”
“술을 많이 먹었었나요?”
“생맥 500 한잔 했다고 했슴니다.”
오영지 교수는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현식을 바라보았다.
가면은 아무런 대답 없이 교수에게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교수가 다시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다시 손을 멈추더니 몸을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오해 말고 들어주세요.”
“말씀하세요.”
“이현식 씨, 치매 검사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개 숙인 이현식의 몸 때문에 내 눈에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거칠어진 호흡의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어머님, 검사만 할 뿐입니다. 기억상실 증상의 원인은 다양해요. 당장 치료를 해보자는 게 아니라 원인을 찾아보자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난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화를 내는 모습을 알게 되었다.
이틀 되었다는 명현의 말은 서울로 일을 하러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날을 말하는 것이었다.
명현은 내 앞에 서서 담배를 입에 물고 말했다.
“병원은 잘 갔다 왔냐?”
명현의 손에 들려있던 담배 갑에서 한 개비의 담배가 삐져나왔다.
그는 그것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술은 끊자. 정 먹고 싶을 때는 맥주 한 캔만. 알긋나?”
나는, 명현을 보며 씩 웃었다.
“그래.”
나는 생각했다.
나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모른다.
채명현이라는 남자와 같이 있었던 세월의 기억은 남아있지만, 그때 겪었던 감정과 느낌이 거세되어 있었다.
처음 만나 화기애애한 시추에이션으로 명함을 건네고는 다시 보지 않을 사람과 같은,
스쳐지나가는 사람 1인.
나는 ‘그’의 ‘남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느낌은 어떤 건지 알았다.
정말로 타인을 보듯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피로 이어진 ‘가족’ 그 누구도, 완벽한 타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이 종족.
아니, 같은 유전자 배열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조차 아닌, 어떤 것.
‘그’는 단 하나의 희망을 품고는 있었다.
늦은 밤이라도 문자 한 통이면 만나서 담배 한 대도 나눠 피며 헛된 일상이라도 털어내고 가벼워진 걸음으로 집으로 갈 수 있게 해 준 ‘사람’.
하지만.
나는 등 뒤로 멀어지는 명현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그의 이름 채명현은 떠올랐지만, 나에게 채명현은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떠나버린 ‘그’를 떠올렸다.
명현은 떠나버린 ‘그’를 찾지 않았다.
‘그’를 아는 건 이제 ‘나’ 혼지 남은 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찐득한 점액질이 온몸을 휘감고 눌어붙은 감각이 몹시도 포근했다.
난 그제야, ‘그’의 말이 ‘이해’되어 버렸다.
“그래, 남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