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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었다.

가면(4)

by 김은석

정신과 교수와의 면담으로부터 3주 후, 기존의 일정보다 예약 일을 당겨 신경과 교수와의 면담을 가졌다.

어머니는 정신과 교수가 치매 검사를 권했다는 말을 했고, 신경과 강상석 교수는 예전에 해놓은 MRI검사에서는 소견이 없었다며, 안심하셔도 된다고 어머니를 달래었다.

신경과 교수는 치매검사도 단순히 건강검진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며 검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어머니를 넌지시 떠 봤지만, 어머니께서는 완강히 거부하셨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나오며 다른 병원으로 바꿔보자고 하셨지만, 나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쳤다는 이 감정을 전달할 자신이 없었다.

그의 몸뚱이를 끌어안고, 그저 내 목숨 줄 하나 잡고 있을 뿐인.

지금 이 모든 것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찌 된다 해도 무가치한 지금 이 ‘나’를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관계’를 거부했다.

나는 가면을 밖으로 밀어내며 문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자, 가면이 어머니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저는 지쳤어요. 다시 다른 병원을 간다면 또 검사한다고 돈 낭비에 처방전도 다시 바뀔 거고 약도 새로 적응하자는 말이 있을 거예요.]

어머니의 불안한 얼굴이 모니터 속에서 보였다.

[그냥, 3개월에 한 번씩 와서 약만 먹을게요.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죄송해요. 힘들게 해 드려서.]

어머니는 울상이 되셨지만 결코 눈물을 보이지는 않으셨다.

가면이 어머니의 옆얼굴을 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도 조금 예민하신 거 아닌가요?]

가면의 말에 어머니께서 휙 고개를 돌리시며 이현식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응?]

[... 치매...라는 말에, 조금 과민하신 거 같아서요.]

어머니는 가면의 말에 순간 주춤하시더니 발길을 돌리셨다.

그만 집에 가자고 말을 끊은 어머니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 눈을 감고 있는 이현식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때문에 엄마가 고생했던 걸... 넌 기억 못 하나 보네.]

가면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나는 방안의 모니터로 그들을 보며 점점 커져가는 소음과 무수한 시선들에 파묻히며 다시금 나 자신을 서서히 잊어갔다. 아니, 잃어갔다.

“나는, 이. 현. 식.이다. 이... 씨 x. 새끼. 들아.”

내 이름도 아닌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정신으로 만든 폐쇄된 공간 안에서 육체가 느껴야 할 감각을 이제는 정신으로 느낀다.

끌어안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금니를 다물고, 사지를 경직시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로 쏠린 압력에 코피가 주르륵 흘러도.

서서히 잠식되어 가는 나를, 나는 얼마나 잊고 있을지.

모니터로 보이는 것은 부들거리는 내 몸을 부둥켜안고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의 모습.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파 내듯이 이. 현. 식.이라는 글자 하나하나를 찍어 눈앞에 비친 환시 속에서 파내기를 수십 번.

오늘은 괜찮겠지. 방심한 난 한 순간의 방심으로 다시 깜깜해지는 앞을 보며 손을 뻗었다.

"씹... “

아무도 알 수 없는 의식의 방. 난 오로지 나 홀로 발작과 함께 고통 속에서 두 눈을 감고 몸을 부들거린다.

현실의 육체가 어떻든, 가면이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깨어났을 때는 부디 아프지는 않기를.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탁상 달력을 들어 한 장씩 한 장씩 넘겼다.

어제는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없었다.

가면도 튀어나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저 웃으시며 이현식의 어깨를 토닥이기만 하셨다.

달력을 넘기다 서랍을 열어 예전에 썼던 달력들을 꺼내 한 장씩 넘겨 보았다.

2020년, 2019년, 2018년......

명현은 올해가 2021년이라고 하였다.

2021년의 달력은 없었다.

X표시가 새겨지다 멈춘 달력은 2020년의 달력이었다.

난 애초에, 2021년을 산 적이 없었다.

기억이 없다는 것이, 몹시도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잡초가 무성한 공원.

입에 물린 담배에서 니코틴을 빨아들이며 난 허공에 떠오른 가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가면이 내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나는 말했다.

“왜?”

가면이 말했다.

“왜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세요?”

난 가면의 질문에 심드렁하게 답했다.

“뭘 물어? 네가 기억을 훔쳐갔냐고 라도 물어봐야 되냐?”

“네.”

즉답하는 가면을 향해 난 쓴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말했다.

“가면아.”

“네.”

“난 지금 말이다. 하루가 사라진 건지, 1년이 사라진 건지 의심스럽다.”

“무슨 말이에요?”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 가면이 설렁거리며 주변을 떠돌았다.

이건 사람을 놀리는 행위다.

“x팔 x이. 야!”

내 호통이 가면의 움직임을 멈췄다.

난 한숨을 쉬며 가면에게 말했다.

“명현이를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 요 며칠의 기억이 사라진 건지, 글마를 1년 전에 만나기는 했던 건지.

아니면 명현의 귀국 날로부터 명현을 다시 만난 날까지 기억이 사라진 건지. 네가 내 기억을 훔쳐간 건지!

아니면! 그 x팔 x들이 나를 가둬두고 지랄을 한 건지!”

가면이 허공에 고정된 채 어둠 밖에 남지 않은, 뻥 뚫린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떠 있었다.

“난, 모르겠다.”

가면이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알고 싶어요?”

난 피식 웃으며 천천히 가면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나는 말이다. x 나게 좋아하는 말이 있다.”

엉뚱한 내 대답에 가면이 자신의 머리를 옆으로 까닥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말이거든.”

“그런데요?”

나는 가면의 물음에 왼손을 들어 중지를 펴 올렸다.

“내가 만든 x 같은 가짜 새끼가 지랄하지 말라는 말이다. 꺼지라. xxx아.”

대답을 들은 가면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가면의 뒤가 보였고, 그것은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다.

어깨와 목덜미에 소름이 돋으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여기서 구를 기다. x새끼들아.”

턱이 부들거리며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멀게 만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불안이 매우 크셨던 듯했다.

요지부동인 아버지 대신 결국 매형을 설득해 서울로 향한 어머니는 정신전문병원에서 의사 앞에 나를 앉혔다.

의사와의 면담 후, 의사는 입원을 권했고,

매형은 입원하기 직전에 나를 불러내 내게 담배 한 개비를 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사촌 중 한 명에게 연락을 해서 정신병원을 알아보라고 했고, 추천을 받은 곳이 여기라고.

그러니, 치료 잘 받고 꼭 좋아져서 돌아오라고.

나는 입안에 연기를 가득 담아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내가 싫어하는 담배였다.

xxx 정신건강의학 전문센터 이경옥 부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이경옥 교수는 면담실에서 나와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별다른 말 없이.

체감되기를 한 10분쯤 지났을까, 교수가 내게 물었다.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하던데, 맞나요?”

난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냥 그냥 기회가 되면 보는 정돕니다.”

“최근에 주의 깊게 봤던 영화는 뭐였나요?”

난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가 뭐였나 생각해 보다가 느릿한 어조로 답했다.

“기 x충이요.”

교수의 질문이 내 느릿한 어조와 맞물려 속도가 느려졌다.

"오. 명작이죠. 어땠어요? “

가면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난, 이현식의 입으로 답했다.

“역겨웠어요.”

교수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야이, 새끼야. 대답 안 할래?!)

“어떤 점이 역겨웠나요?”

내 의지가 이현식의 입으로 전달되어, 이현식의 목소리가 이현식의 귀로 들려왔다.

내가 들어본 그 어느 때의 이현식의 목소리보다도 제일 또렷했다.

나는 이현식의 목소리로 나를 인지했다.

“인간이 벌레로 보였어요. 생물의 몸속에 들어가, 안에서부터 파먹는 벌레. 심지어,”

교수의 눈이 내 입을 향했다.

“그 벌레가 너무도 경이롭고 아름답게 보여서, 치가 떨리게 역겨웠어요.”

교수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상 위에 놓여있던 볼펜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렸다.

“혹시 러셀 크로우라고 알아요?”

퍼뜩 스치는 기억이 없었기에 난 모른다고 답했다.

“그럼 글래디에이터는 아세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나왔던 주인공은 기억하고 있나요?”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화에 나왔던 배우가 러셀 크로우라고 해요.”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을 밀어내며 교수에게 말했다.

“그 배우가 왜요?”

살며시 웃는 교수의 얼굴이 꼭 뱀의 눈을 닮았다.

“그 배우가 출연한 영화 중에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가 있어요.”

“그런데요?”

“조현병을 주제로 다룬 영화랍니다.”

“그래서요?”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 보는 걸 권해요. 재미있을 거예요.”

교수는 영화이야기를 끝으로 면담을 마쳤다.

입원한 병실은 예전의 경험과 그렇게 다를 것이 없었다.

대신 화장실은 지린내가 심했고,

샤워실이 별도로 있어 더 이상 추위에 떨며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였다.


다음 면담 일이 되었다. 교수는 책을 한 권 책상 위에 펼쳐 두고 있었다.

“책은 좀 보는 편이세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요즘은... 아니요.”

“그럼 예전에는 봤겠네요? 주로 어떤 책을 봤나요?”

“소설책을 좋아했네요. 퇴x록, xx의 제왕, xx포터, x미 등,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네요.”

“그 밖에는 더 없나요?”

“... 시집도 좋아했어요. 류 x화, 원 x연, 이 x. 당장 떠오르는 건 이 정도네요.”

교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답했다.

“이 x의 시가 제법 괜찮죠. 혹시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표제의 AU MAGASIN DE NOUVEAUTES라는 시는 읽어 봤나요?”

“사각형 내부의 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 사각이난케이스가걷기시작이다, 소름이끼치는일이다.”

“......”

“라는 구절이 있었죠, 아마.”

나는, 교수의 눈빛이 몹시도 거슬렸다.

교수가 내게 물었다.

“이현식 씨는 그 시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

“추상적으로 말해도 괜찮아요. 그냥 문득 떠올랐던 생각이나, 지금 떠오른 생각이라도 괜찮아요.”

나는, 교수에게 물었다.

“사각이 걷고 있으면 교수님은 어떨 것 같아요?”

교수가 살며시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사각형 안의 사각형이 움직이고 있어요.”

부들거리는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천천히 돌렸다.

“어떤 원동력도 없이.”

왼손을 들어 허공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어루만진다.

“무중력도 아닌데. 스스로 움직여요.”

나는 두 손을 허공에 멈추며, 좌우로 넓게 벌렸다.

“뚜벅뚜벅. 걸어서 제 앞에 섰습니다.”

교수가 말을 하려 하기에 먼저 잘라버렸다.

“사각형이, 저를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교수님은, 소름이 끼치나요, 끼치지 않나요?”

은은한 조명 빛에 차분한 면담실 안을 울리는 이현식의 목소리가, 너무도 낯설었다.

교수는 가만히 있더니 뜬금없는 질문을 꺼냈다.

“이현식 씨는 사물을 보면 글을 먼저 떠올리나요, 그림을 먼저 떠올리나요?”

난 순간 교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네?”

교수는 책상 위에 있던 볼펜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볼펜을 예로 들어볼게요. 볼펜을 떠올려보세요.라고 현식 씨에게 묻는다면, 현식 씨는 당장 뭐가 떠오르나요?”

난 답했다.

“얇고 길게 생겼고 끝이 뾰족한 플라스틱 막대... 이겠죠?”

교수는 책상 위에 볼펜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볼펜이라고 말하면, 말 그대로 볼펜, 세종대왕님이 만든 글자를 떠올리는 사람도.”

교수가 볼펜을 책상 위에 손가락으로 굴리며 말했다.

“또는, 볼펜의 용도, 즉 무엇인가를 기록하기 위한 도구.”

교수가 볼펜을 스윽 밀어 내 손이 닿는 위치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난 교수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을 놓았다.


흐르는 생각은 글자와 그림을 구분하고 소리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뜯어낸다.

그리고, 사물을 특정하는 글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뒤엉키기 시작했다.

모니터는 사과가 되고 교수는 키보드가 된다.

의자는 맹인이 되고 하얀색의 벽은, 손가락이 된다.

나는,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하는 기관이 입이라는 것을 잊어버려 벌어지는 눈은 깜빡임을 반복하다,

끝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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