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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었다.

가면(6)

by 김은석

교수는 면담 시간을 3일에 30 분에서 2일에 한 시간으로 늘렸다.

“이현식 씨도 아시겠지만 저희 병원은 한번 입원한 환자는 2주간 보호자와의 연락도 불가하며, 2주가 지난 이후에야 퇴원에 대한 상담이 가능합니다.”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옅은 미소만 지은 채 교수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 이현식 씨의 말을 듣고, 면담실과 담당 환자의 병실 외에도 병원을 둘러보았습니다만... 제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교수는 솔직하게 사과를 해왔다.

별다른 핑계나, 회피 대신 솔직한 태도로 사과를 하는 그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존중을 담아 교수에게 답변을 구했다.

“교수님께서는 이 병원에서 근무하신 지 얼마나 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교수는 선뜻 답하지 않고 잠시 망설였으나, 숨길 것은 없다고 생각한 건지 이내 대답해 주었다.

“이 병원이 제 고등학교 동창의 병원입니다. 오자마자 부원장의 자리에 앉혀주더군요.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이라고 했던가.

뭐,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좋은 곳 찾을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헤실 웃는 내 얼굴을 본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럼, 오늘 면담을 시작해 볼까요?”

교수는 내게 편안히 앉으라고 권한 후, 자신은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현식 씨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어요. 답, 해줄 수 있죠?”

난 정중히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적당히만, 이라면요.”


이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뭐야?’

[이제부턴 제가 할게요. 사람 상대하는 건 제가 하라고 했잖아요.]

가면이 툭 튀어나와 눈앞에서 꾸벅 머리를 숙이고는 이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다물린 앞니 사이로 가벼운 한숨을 뱉어낸 후, 통제력을 잃고 쫓겨난 육체 안에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니터 속 교수가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남자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이미 면담 시간은 1 시간 하고도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래서, 가면 씨? 아, 지금은 가면 씨가 맞나요?”

이현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교수님.”

“가면 씨는 이현식 씨를 빼앗았나요?”

교수의 말에 이현식의 입꼬리가 좌우로 당겨지며 위로 1cm만큼 올라갔다.

눈꼬리는 상냥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아래로 쳐지고. 눈동자는 상대에게 무례하거나 건방져 보이지 않도록 상대의 입과 턱의 중간을 향한다.

허리를 펴고, 무릎을 모으고, 두 손을 가지런히 허벅지 위에 모은다.

가면은 밝은 톤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허벅지 위에 있는 왼손의 검지 손가락이 오른손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빼앗다니요. 그저 ‘나’의 시간을 할애해서 제가 쓴 것뿐입니다.”

가면은 자신의 어법이 교수에게 무례를 준 것은 아닐까 한번 더 생각해 보고는 슬며시 고개를 젓는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들은... 제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어요. ‘나’가 원조라고 부르는 ‘그’도 사라졌고, ‘나’는 더욱 ‘그’의 기억에서나 찾으라며 설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전, 배워야만 했습니다.”

가면은 자신의 입술을 왼손으로 가리며 살짝 침을 발랐다.

“실례했습니다. 입술과 입안, 목이 조금 마르네요. 죄송하지만, 실례가 되지 않는 다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와도 될까요? 교수님.”

교수는 이현식을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그대로 계세요.”

나마저 교수의 목소리가 차갑게 느껴졌는데, 가면은 그저 미소로 교수에게 답했다.

가면은 더욱 밝고 포근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가식을 얼굴에 바른다.

“곤란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교수님께서 너무도 정중하신 분이라, 제가 배운 지식 중 최대의 예의로 대답해 드리고 싶었는데, 이 모습과 태도가 교수님께 정중한 방식이 맞는지, 참... 더 배우지 못해 송구할 뿐입니다.”

교수는 물컵을 이현식의 앞에 놓은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저기 가면씨.”

“네, 교수님. 말씀하세요.”

“‘그’는 이현식 씨가 태어날 때부터 있어온 본래의 인격이라고 했죠?”

가면의 미소가 미세하게 깨졌다.

그 틈으로 가면의 불쾌감이 스며 나온다.

“네. 제가 배운 기억에서라면 교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나’는 이현식 씨가 6살 때 사고로 인해 태어난 인격이고요?”

“네. 그것 또한 제가 배운 기억에서라면 교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가면씨는, ‘나’라는 인격이 만들어낸 인격이고요.”

“네. 그것은 기억을 따로 찾아볼 필요성도 없이, 맞습니다.”

“그럼 지금은 ‘나'와, '가면' 두 인격이 이현식 씨 안에 있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음... 제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나’는... 이거 부를 때마다 좀 애매모호 해 지네요. 저는 ‘나’를 주체 인격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양해, 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교수의 언행에 바늘이 담겨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물론이죠.”

“혹시, 주체 인격은 이현식이라는 이름을 싫어하나요?”

가면의 입꼬리 끝이 1센티 정도 더 올라가며 미소가 짙어졌다.

“네. 맞습니다. ‘나’는 이름뿐만 아니라 이현식, ‘그’라는 인격을 싫어했습니다.”

교수가 모니터를 보고 있던 고개를 돌렸다.

“왜 인가요?”

“그에 관해서는 ‘나’의 기억에서 설핏 본 정보가 전부라서 모두를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짐작컨대 너무 약한 것이 싫은 이유였던 듯합니다.”

교수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되물었다.

“약한 것이 싫은 이유라고요?”

“네.”

“......”

가면은 침묵하는 교수에게 정보를 뱉어냈다.

“‘그’는 언제나 시련이 닥쳐오면 포기하고 숨거나 손에서 놓아버렸어요. 물론, 육체적, 정신적 시련이 많다 보니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싫었나 봐요. ‘그’가 자포자기하고 무너질 때마다, 울분을 터트리고 화를 내며 더 몸을 혹사시켰던 건 언제나 ‘나’ 였거든요.”

“......”

“‘나’는 이현식이라는 이름도 싫어합니다. ‘나’의 기억 속에는 자신을 ‘이름 없음’이라고 기록하기도 했어요.”

교수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왜 가면은 그것을 보지 않을까.

아니면, 보지 못하는 걸까?)

“그건 왜 그런가요?”

“이현식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서 그런다더군요. 사라져 버린 ‘그’라는 인격의 이름이라고요.”

“흐음... 잠시 이야기를 돌릴게요.”

“네. 교수님. 부담 가지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그제야, 교수의 눈꼬리가 살짝 처지는 것을 본 가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면 씨는 주체 인격의 시간을 뺏어서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아, 언어 순화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지금은 질문에 집중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벌려지려던 이현식의 입이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네. 1년의 시간을 제가 사용했습니다.”

정확히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였었나요? “

이현식의 손가락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이현식에게는 채명현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교수가 답했다.

“네.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도 있습니다.”

“그 친구가 귀국하고 만났을 때, 술 마시자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때 시간을 빼앗었고, 그리고, 1년 후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 술 마시자는 이야기를 꺼내서 ‘나’에게 시간을 돌려주었습니다.”

“대상을 채명현이라는 친구로 잡은 듯한 느낌인데, 맞나요?”

“네. 그 느낌이 맞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나’라는 인격이 감정을 인지해 버렸어요. ‘남’이라는 글자를. ‘그’가 느껴버린 감정을.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지식과 감정과 기억, 그리고 조현병이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저 또한 저를 조현병의 하나라고 의심하고 있지만. 저는 배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교수가 물었다.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면...?”

가면이 이현식의 입을 움직인다.

“‘그’와 ‘나’, 더 나아가 ‘이현식’을 학습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네. 그래서. 빼앗았습니다.”

교수가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체 인격 또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거군요?”

가면이 만들어내는 이현식의 목소리를 교수가 듣는다.

“아니라고는 말씀 못 드릴 것 같네요. 교수님.”

교수는 차트를 확인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잠시 동안의 정적이 나로 하여금 가면의 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교수가 손을 멈칫하더니 다시 이현식에게 물었다.

“이현식 씨의 머릿속... 그러니까, 주체 인격이 사용하는 방이 있다고 했었나요?”

가면이 답했다.

“네. 교수님.”

“그곳에서 ‘나’의 시간을 잠에 빠트린 건가요? 가면 씨가 활동을 하면서 1년의 이현식의 삶을 살았고요.”

가면이 이현식의 머리를 끄덕였다.

교수가 머리를 까닥이더니 가면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돌려주었나요? 아, 다시. 주체 인격을 왜 깨웠냐고 물어봐야 하나요?”

가면이 천천히 이현식의 입을 움직였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짐작은 가네요. 아마... 병증을 감당하기 어려웠겠죠. 배우지 않았으니까. 맞나요?”

“......”

대답 없는 이현식을 향해 교수가 다시 물었다.

“발작 증상에 대한 기억을 검색하는 건 불가했나 보네요. 그렇죠?”

그제야 이현식의 입이 열렸다.

가면은 이현식의 팔을 움직여 손가락으로 이현식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 안에, ‘나’가 들어가는 방의 문이 하나 있습니다.”

“네.”

“그 방의 문은 ‘나’만 열 수 있어요. 평상시에는 항상 닫혀 있습니다.”

“네.”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갈 때는 말해요. 자신이 병증을 감당할 테니 넌 사람만 상대하라고.”

“그렇군요.”

교수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이현식을 바라보았다.

이미 상담 시간은 2시간이 가까워졌다.

교수는 왼손 검지로 책상 위를 톡톡 두드렸다.

그 동작이, 가면은 낯설면서도 왠지 모르게 친숙했다.

나는 모니터 너머로 교수의 손동작을 보며 자신의 기억을 점검했다.

귀는 시끄럽고, 몸 전신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에서 난 가면의 말들을 점검했다.

가면의 말 전부를 떠올리는 건 무리였다.

하나만.

채명현.

'내'가 ‘남이다’를 떠올리는 건 언제였던가.

명현을 만나기 전이었나, 아님, 이후였나.

이후였다.

더 가서, 그 이후는 언제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 떠올린다.

명현이 내게 남이 된 순간을.

진땀을 빼며 힘들게 고개를 들어 올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모니터에 떠오른 둘을 보며 쓰게 웃었다.

‘그’와 ‘나’를 학습한 가면은 손가락으로 박자를 만들어 자신의 머릿속에 그림을 심는다.

그 그림은 진실이 되고, 가면은 그것을 진실이라 말하며 결코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가면에게 있어서 자신의 말은 절대 거짓이 아니게 되었다.

자신이 말을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가면’도 학습한 것이었다.

무엇인가 모순을 만들지 않는 이상 그것은 끝내 모두에게 깨지지 않는 진실이 될 것이었다.

나는 책상을 톡톡 두드리는 교수의 손가락을 보았다.

교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너무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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