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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었다.

가면(8)

by 김은석

입원으로부터 16일째.

가면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이현식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꼭 뱀의 허물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난 머리를 잘래잘래 흔들었고 이현식의 몸을 차지했다.

그리고, 교수와의 면담.

“그래서. 오늘은 무슨 얘기하실 건데요? 영화? 책? 아님 음악인 가예?”

이경옥 교수의 얼굴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험악해진 말투의 원인을 교수는 모를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거리를 드러낸 만큼 나는 그녀를 포기했었고, 나에게 교수는 내 울타리 밖에 있는 남이었다.

교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지친 음색으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이현식 씨가 말했던 것 외에도 병원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좀 피곤하네요. 환자 진료와 겹쳐 처리하다 보니 이제야 모두 끝냈어요.”

내 목소리는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그래서요? 저 보고 우짜라고 예?”

교수가 등을 펴고는 고개를 들며 나른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현식 씨는 다음 면담날. 저와의 면담을 마치고 퇴원하게 될 겁니다. 이현식 씨의 보호자 분께는 제가 이미 연락을 해 뒀습니다.”

나는 힐긋 교수의 눈을 바라봤다.

다크서클이 진한 얼굴이 제법 피곤해 보였다.

나는 한 숨을 폭 내 쉬며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보이소, 교수님.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게 예.”

나는 의자에 기대어 퍼져 있던 몸을 일으켜 엉덩이를 당기고 허리를 세웠다.

“...할배요. 할배가 좋아하는 사람이 앞에 있슴니다. 내 못 듣는 거 할배도 알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봐 주이소.”

환청이, 꼭 퍼즐의 조각처럼, 컴퓨터의 코딩처럼, 한 조각 한 조각 씩 이어져 글자 하나를 만들어 간다.

어찔 거리는 현기증과 욱신거리는 머리 통증 속에서, 난 보이는 말을 교수에게 전했다.

“북쪽은 쪽박이고 서쪽은 병신 된답니다. 남쪽은 복불복이고 동쪽이 대박이라네요.”

교수는 내 말을 무슨 소리냐며, 불신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순간 뭔가 머리를 스친 듯 눈빛이 변했다.

“광명...”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모릅니다. 묻지 마이소.”

지끈거리는 두통이 점점 커져간다.

“할배요...올만에 목소리 들을 수 있어 좋긴 했는데, 이젠 그만하지요. x나 아픈데예.”

난 뒤로 넘어져 푹신한 의자에 몸을 눕혔다.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몸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뜨거운 열기가 손가락 끝, 발가락 끝에서 시작해서 척추를 따라 머리로 올라온다.

정말, 더러운 기분이었다.

“교수님.”

“네. 이현식 씨.”

“저, 진짜 기분 더러워요. 이딴 거, 전 진짜 알고 싶지 않았거든요.”

교수의 눈빛이 진지해졌음을 인지한다.

“어떤 느낌인지, 제게 설명해 줄 수 있나요?”

-

이딴 감정, 느낌, 기억. 알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단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것은 상실감조차 없을 거라 생각한다.

시력이 아닌 ‘본다’가 없던 이에게 아무리 ‘본다’를 설명해 봤자 그 사람에게는 없는 거다.

시력을 가졌던 사람이 맹인이 되어 ‘본다’를 설명 듣는 다면, 그 사람은 상실감을 버틸 수 있을까.

난, 묻고 싶지도 않다.

난 정반대를 보고 있으니까.

알고 싶지 않았다.

느끼고 싶지 않았다.

기억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발작하는 그 순간의 손끝, 발끝, 눈동자에 새겨지는 그딴 감각.

치가 떨리는 그 딴 것.

난 알고 싶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들리는 것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보이는 것들을 구분 짓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리 설명한 들, 이해 따위 없는 이딴 것들. 난, 알고 싶지 않았다.

-

나는, 교수에게 설명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일순 머리를 스치는 말이 있어, 난 힘들게 교수에게 답했다.

“팔꿈치로 앞을 보이소.”

“네?”

교수의 되물음에, 나는 호흡을 고르며 손을 들었다.

“잠시만 예.”

몸이 너무도 뜨거웠다.

피부의 털이 바삭바삭 타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머리로 전해진다.

충혈된 눈으로 보이는 것은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모두가 온기를 뿜는다.

“할배요...작작하자...”

몸을 짓누르는 중력이 몇 배로 증가한 듯 한 감각이다.

아프다. x 나게 아프다.

“xx놈아. 니 죽고 내 죽이까.”

상체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눈으로 전해져 들어와 내게 정보를 준다.

내 몸이 떨리고 있구나.

“내 뒤지면 와. 그때까진 어림도 없어.”

떨림이 조금씩 잦아든다.

조금씩 몸이 가벼워졌다.

몸 전신이 축축한 게 땀을 오지게 흘린 모양이었다.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어 교수의 얼굴을 보았다.

“죄송함다. 뭐라고 했지예, 교수님?”

“아... 어떤 느낌인지, 물었어요. 팔꿈치로 앞을 보라고 현식 씨가 답했어요.”

왜 이런 걸까.

“맞네요. 느낌이라, 이거는 말로 설명하는 게 쪼메 힘듭니다.”

왜 이렇게 술술 교수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예전에 어떤 박사가 말한 것 중에 제 느낌과 가장 비슷한 걸 말했네요.”

내 울타리에서 밖으로 쫓아낸 사람인데,

“그 박사는 한 가지 가정을 내놨지예. 시신경을 모두 뽑힌 사람에게 뭐가 보이냐는 물음이 타당한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그’는 알까.

“정답은 ‘없다’랍니다. 검다나 하얗다는 말은 망막이 손상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지. 시신경이 모두 적출된 사람에게는 본다는 것이 ‘없다’라네요. 그 ‘본다’를, 시신경이 적출된 사람이 타인에게 설명한다면, 이라는 질문에 박사가 답한 대답이 ‘팔꿈치로 앞을 보라’ 였습니다.”

나는 모르겠다.

“제가 교수님께 설명할 수 있는 방법도,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팔꿈치로 앞을 봐라’.”

교수는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지켜보다 고개를 돌리고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세상에 올바른 데이터가 있는 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학습하는 건 쉽데요.

근데, 데이터가 없거나 심지어 오류 난 데이터를 본능적으로 받아서 인지하고 이해해 버렸어요.

입력된 적도 없고, 가정된 적도 없고, 훈련된 적도 없고, 예측 가능한 연관성조차 없는데, 분석해서 이해해 버렸어요. 부지불식간에 말임다.”

언제부터였는지 교수는 자신의 턱을 괴고 나를 보며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사람이라면,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떠 올릴 거고 어른들은 낯선 경험이라며 소중히 하라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요. 무섭고, 두렵고, 벗어나고 싶슴니다.

진짜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진짜 뒤지겠는데.

극복이요?

무슨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않는 것을 무슨 수로 극복을 해요.

처음 알게 된 후로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오고 그리고 지워집니다.

어떤 것인지, 왜, 무엇 때문인지, 지워진 느낌은 또 떠올릴 수도 없네요.

그럼 뭐 합니까. 경험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서 또다시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데.

생각해 내지는 못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올라요.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요.

없었던 데이터인데 입력받지 않은 데이터인데 어디서 생겨난 건지.

난 이걸 이해시키고 싶은데.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이해시킬 수 있는 말을 찾아내고 싶은데, 생각나는 건 저딴 비유 따위밖에 없슴니다.

참... 지랄 맞지요. “

나는, 혼자서 줄곧 중얼거리다 문득 떠올렸다.

언제부터 교수에게 사투리를 쓰게 되었을까.

내 울타리에서 밀어낸 순간부터.

하지만, 내 울타리에서 밀어낸 사람한테는 언제나 극 존칭이었다.

난.

교수가 진중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잘 했어요. 네. 참, 지랄 맞지요. 저도 이해는 무리겠지만, 들을 수는 있어요. 들을게요. 이현식 씨.”

난 피식 웃고 말았다.

가슴이 뜨끔한 게 시원하면서도 간질거리는 것이 아직 남은 게 많은 듯하다.


결국, 나는 교수 앞에 앉아 엉엉 울면서 소리쳤다.

“그래. 나 두 번째다. 그래서 뭐!

매일 같이 뒤지고 싶다 노래 부르던 새끼가. 지가 뒤지고 쉽다고 해서 뒤졌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

눈물과 콧물을 소매 끝으로 닦아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매분, 매초. 언제 발작해서, 지랄 떨지 모르는 몸뚱이 하고, 아작 난 멘털에 헛것 보고 헛소리 듣는 x 같은 쓰레기만 두고.

내한테 떠맡기고 뒤져버렸는데! “

후욱 불어내는 숨에 열기가 담겨 따뜻하다.

“내는 말입니다. 교수님.

태어난 순간마저 지랄 맞심다.

지 떠밀은 새끼한테 복수도 못하면서, 꼴에 화는 났는지.

그래서 만들어낸 게 접니다.

6살이라는 애새끼가.

애새끼가 저를 만들어 낸 깁니다!“

교수가 티슈를 세장 뽑아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 야무지게 코를 풀었다.

“그라고는 혼자 뒤져버렸으요.

x나 짜증 나는 새끼.

저는요. 원조 같은 아가 제일 짜증 나요.

지는요! 개똥밭에 굴러도 여서 구를 깁니다.

x 같은 이승이라도! 시궁창 같은 x 같은 곳이라도! 전 안 뒤질 깁니다.

과거요? 내가 산 것도 아닌데 저보고 우짜라고 예.

미래? 쌍욕 할랍니다. 지 같은 상황 함 되어 보라고. 그딴 말 나오나. “

나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보다.

“지는요. 현재만 살 거라 예. 개똥 밭에서, 시궁창에서 뒹굴어도 전 지금만 살 거라 예! x나, x팔 악-착 같이요!”

교수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내 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호흡을 고르는 순간이 되자 살며시 손을 뻗어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난 그것이 위로를 해주는 것이라 순간 생각했지만, 저릿한 감각이 내 생각을 부정했다.

그리고, 현실은 생각이 아닌 감각을 따라갔다.

“‘가면’의 생각은 어떤가요? 다른 할 말은 없나요?”

... 나쁜 x.

교수의 목소리가 마이크에 에코를 가득 먹이고 말하는 것처럼 울림이 커지며 멀어져 갔다.

교수가 이현식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인격이라는 건 당신의 경험처럼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랍니다. 그리고 쉽게 만들어서도 안 되고요.”

나는 생각했다.

역시, 오늘도 x 같은 날이다,라고.

이현식은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더니 교수에게 말했다.

“저 화장실을 좀 다녀오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교수님?”

교수는 그러라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면담 시간이 어느새 2시간에 가까워졌지만, 교수는 좀 더 이현식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듯했다.

나는 ‘방’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아직도 훌쩍이며 숨을 고르는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지만 순간 피식하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창피하고, 시원하고, 부끄럽고, 개운하고, 지쳤지만, 홀가분했다.

나는 모니터의 전원을 껐다.

귀와 머리로 들려오는 환청에 깨질듯한 두통과 온갖 시선들에 전신이 따가웠지만, 오늘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8일째의 날.

이경옥 교수는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힘내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고생해요.”

난 교수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화내는 대신 실없이 웃어버렸다.

“러셀 크로우가 나오는 영화가 뭐라고 했지요, 교수님?”

이제야 이 교수의 미소가 포근해 보인다.

“뷰티풀 마인드요?”

-별수 있나. 사람뿐만 아니라 그 환경까지 그 사람의 얼굴에 담겨 오는 것을.

“네. 잘 볼게요.”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면담실을 나가려던 나를 순간 떠오른 생각이 멈춘다.

“교수님 예.”

내 부름에 멀뚱히 나를 보던 교수가 답했다.

“네?”

“언제가 될진 몰라도... 나중에 제가 글을 하나 쓸 깁니다.”

“네.”

“보내드리고 싶은데, 받아 주실랍니까?

나는 교수의 메일이 적힌 명함을 한 장 받아 챙기고는 면담실을 나왔다.

캐리어를 끌며 나오자, 병원에서 나온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세 명이였다.

매형과 누나, 그리고 어머니.

나를 안으려는 어머니를 피하며 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병원에 빈대 많더라.”

내 말에 세 명의 눈이 동시에 떨렸다.

“에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빈대가 있어? 잘 못 봤겠지.”

내 말을 믿지 않는 누나에게 팔의 소매를 걷어 빈대에 물린 자국을 보여줬다.

세 명의 눈동자가 다시 떨리는 것을 보며 난 피식 웃어버렸다.

정색한 어머니가 매형에게 부탁하며 모두를 이끌어 차에 태웠다.

“임 서방. 미안하지만, 좀 부탁하네. 돌아가면 필히 차 소독하고.”

캐리어를 받아 든 매형이 짐을 싣고 운전석에 앉으며 안전띠를 매었다.

저녁 7시 40분.

우리는 병원에서 멀어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5시였다느니.

정신과 교수가 참 친절했다느니.

환자와 면담 후 6시에 환자를 보내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답답해서 카운터에 문의를 했더니 짜증만 내서 황당했다고.

다시 교수와 면담하겠다고 하니 그제야 교수님이 환자와 면담 중이라 늦을 수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고.

나는 부모님께 말했다.

나와 교수님이 면담을 마친 시간은 오후 5시 50분이었다고.

병실에서 보내주지 않아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아직 보호자가 오지 않아서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고.

우리는 모두 병원을 욕하며, 출출해진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을 검색했다.

시간이 시간이라 마땅한 곳이 없어, 우리는 휴게소에 들러 배를 채웠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나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속옷 한 장 빼고 옷을 모두 벗었다.

마당에 있는 드럼통에 옷과 병원에서 가지고 나온 것들 대부분을 넣고 불을 피웠다.

심지어 캐리어까지 부숴서 넣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경옥 교수에게 받은 명함도 같이 있었지만, 재가 되고 나서야 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집은 별 일이 없었다. 뭔가 충고를 해야 한다는 상태도 없었기에, 팥 하나 뿌리지 않았지만, 무난하게 흘러갈 뿐이었다.

-이런 게 제일 좋은 거지.

‘귀찮아하며 널브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난 기쁘게 자리를 깔고 누웠다.

나머지는 가면이 알아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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