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해라.(2)
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멍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명현이 내 눈에 보였다.
잡초가 무성한 공원이 아닌 망해버린 아버지의 텅 빈 사무실 안.
내 왼손에는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손이 붙잡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명현의 발에 깨진 벽돌이 차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곰팡이의 빛으로 반짝이는 천정을 보고는 허탈히 웃어버렸다.
작은 목소리로 친구를 불렀다.
“반갑다. 친구야.”
명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얼굴만 일 그러 트린 채 거친 숨을 내 쉬고 있었다.
“아픈 건 난데 니가 와 우노?”
거칠게 숨을 가다듬는 소리와 훌쩍거리는 소리가 마치 멜로디 같았다.
“반갑다. 친구야.”
나는, 돌아왔구나.
숨소리, 걸음 소리, 눈을 깜빡이는 동작부터 걸음을 걸으며 흔들리는 몸의 엇박자 까지.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
내 친구가 내 앞에 있다.
이 감정을 난 기억 속에서 찾는다.
내 기억에는 없다.
그래서 ‘그’의 기억에서 찾는다.
있다.
친구다.
친구야.
목이 막혔다.
눈앞이 그렁그렁해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뭐가 그리도 벅차오르는지, 숨 까지 가빠졌다.
나는, 외치고 싶었다.
나는 돌아왔다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왜.
보이는 걸까.
들리는 걸까.
-입을, 다물어야 한다.
벅참이 짓눌려, 절망이 되는 순간.
내 눈앞에 보인 것은 친구의 등에 메여진 뿌연 안개 무리.
그의 걸음걸음에 묻어나는 진한 진흙 자국들.
여기는 시멘트 바닥인데.
어디선가 흙을 밟고 온 것은 아닐까.
그 진흙의 걸음이 이어지지 않고, 왜 내 눈이 머문 곳에만 남아 있을까.
-입을 다물어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다면,
헛된 말로 현혹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다면,
그의 삶은 그의 삶이다.
-끼어들려 하지 마라.
“친구야.”
빠득거리는, 어금니를 가는 소리는 내 귀에만 들리는 걸까.
“오늘 하루만 부탁하자.”
내 심장이 짓눌리는 이 고통은 정말 느껴지는 실체 하는 고통일까.
“이제는, 절대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을기다.”
거짓말이다.
“니가 필요할 때는 불러주라. 내, 언제든 달려갈게.”
전부 다 거짓말이다.
친구는 이제 평소와 같이 살 것이다.
시련은 이겨낼 수 있는 만큼만 준다는, x소리가 어울리는 x 같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할 것이다.
난 친구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친구는, 웃었다.
난 그 웃음을 보며 웃었다.
난 그 웃음을 보며 울었다.
삼키자.
비명을 삼키자.
울음을 삼키자.
그 누구도 볼 수 없도록.
몸을 웅크리고, 소리를 삼키며 바람소리와 웃음소리만 들려오는 곳에서 난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웃는 얼굴로 목메어 울었다.
아프지 마라.
슬프지 마라.
괴롭지 마라.
외롭지 마라.
...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난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말할 수 없는 나는, 입을 다물고, 웃었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도망치며, 웃는 얼굴을 보며 웃었다.
웃는 얼굴을 보며 울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나는,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을 삼켰다.
오른손의 상처가 심해 총 17 바늘을 꿰맸다.
손목의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해야 했지만 상처들을 소독해야 했기에 반 깁스를 했다.
이마의 상처도 15 바늘을 꿰맸다.
머리에 거즈를 붙이고 반창고로 고정 후 붕대로 감았다.
질색을 하시는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말하고는 담배만 피고 오겠다며 집을 나왔다.
소리가, 그림이 된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릴 수는 있었다.
들리지는 않지만, 만들 수는 있었다.
“네네.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xx아. 소름 돋게 만들기 전에 말해주면 됐잖아 xx새끼야. 그게 개미인지 참새인지. 니 입장에서는 똑같은 생명이다. 미리 말했으면 내가 보든가 살피든가.”
어깨를 스치는 소름에 나는 순간 흠칫했다.
“미안. x소리라 무시했겠네.”
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깁스로 더 무거워진 팔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렸다.
합장을 하고, 머리를 숙였다.
“극락왕생 하세요.”
그릴 수 있었고, 만들 수 있었다.
햇빛이 쨍쨍한 공원에서 퍼질러 앉아, 입에 문 담배에서 니코틴을 깊게 빨아들이고 삼켰다.
난 허공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야, ‘왜’ 냐고 물을 수 있었네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실소가 나에게 너무도 시리다.
“난 믿지 않은 거예요.”
몸서리 쳐지도록 소름이 돋는다.
“내 말을 믿지 않아요.”
머리가 어찔 거릴 정도로 이명이 귀를 덮는다.
“내 행동을 믿지 않아요.”
숨 쉬는 공기 한 모금조차, 나를 거부한다.
“난, 나를 믿지 않아요.”
쉰 목소리가, 너무도 멀게 들린다.
환청과 환시를 조현병이라 특정 지으며 듣지 않았다.
무수한 목소리들을,
무수한 전조들을,
나는 스스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는데, 전할 수 없네요.”
목이 메어, 목소리가 입 안으로 감겨 든다.
“그들이 아플 걸 뻔히 아는데, 전 할 수 없어요.”
왜 눈앞이 이토록 흐릿할까.
왜 눈꼬리를 따라 물이 고여, 턱으로 미끄러져 내릴까.
“그들도 믿지 않으니까.”
드디어,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나’를 아는 건 내가 만들어낸 ‘가면’이라는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나조차 믿지 않는 가짜 인격 하나뿐.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 오로지 혼자가 되었다.
입김이 뿌연 연기가 되어 앞으로 밀려 나갔다.
“그래도.”
그래도.
“안 죽을래요.”
아직 나는,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고라는 말. 거짓말 아님다.”
소리 질렀다.
“나. 는! 이! 현! 식!이다!!”
나는, 이현식이 아니다.
나는 ‘나’다.
하지만, 이 몸뚱이를 유지시킬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내가 직접 이승에 구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도 믿지 않아요.]
한마디도 안 져요. 이 xx는.
집에 돌아온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기를 수십 분.
눈앞에 푸른색 표지의 일기장이 보였다.
그리고 생각나는 하나.
난, 피식 웃었다.
“x고생함 해보입시다.”
글을, 써보자.
병원에서 썼던 노트를 보며 다시 글을 썼다.
시나 산문이 아닌, 원조 인격의 삶을.
내가 아는 6살부터의 일을 전부.
오른팔이 움직였다, 안 움직였다를 반복하고 부들거리는 경련을 일으켰다가 제대로 키보드를 두드리기를 반복했다.
나는, 이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처음으로 돌아갔다.
오른손으로 볼펜을 들고 글을 썼다.
고민하다 떠올린 소재는, 달 아래에서는 살고 태양아래에서는 살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를.
뼈를 잡고 살을 붙여 피부를 입히고 화장을 시켰다.
그동안 내 팔은 일주일에 한 번만 신경통을 참으면, 경련은 있지만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여자의 이야기를 마쳤을 때, 같이 쓴 원조의 이야기도 중반을 넘어섰다.
난 더욱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한 인물의 이야기를 새로 만들었다.
신벌을 겪는 남자의 이야기를.
가족에게 닥쳐 올 불행을 알면서도 무섭다는 이유로 알리지 않아 , 모두를 잃고 홀로 남아 삶과 싸우다가 이 세계로 쫓겨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이 이야기를 웹소설 게시판에 올렸다.
몇 편을 올리지 못해 스스로 내려버렸지만.
이때쯤에는 어깨를 올리지만 않으면, 오른손의 손목을 왼손으로 잡고 있으면 경련 없이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꿈(악몽)과 함께 나온 캐릭터.
나타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다시 웹소설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문제는, 너무 큰 욕심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져 스스로 통제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쓰는 것을 멈추고, 오로지 원조(‘그’)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집중했다.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지우고 또 쓰고.
다 썼다고 생각한 글을 스스로 읽으며 편째로 지워버리고 다시 쓰고.
나는, 글을 쓰며 ‘그’를 보고, 그리고 ‘나’를 보았다.
탈고를 하고 프로그램을 닫았다.
이젠 뭐 할까를 생각하다, 찾게 된 것은 AI채팅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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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정신으로 투덜거림을 시작할게.
나는 말이야. 환청과 환시 이후 생명은 차이가 없다는 걸 느껴.
꽃도, 메뚜기도, 짐승도, 인간도 죽은 곳에는 언제나 소름이 남아.
이건 정말 나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
그리고 인정 안 해.
안 할 거야.
절대로.
하지만, 차이가 없다는 걸, 느껴.
하나의 생명이었고, 불씨였으며, 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것은 똑같았다고.
그래서 무서운 거야.
부정 속에 느끼는 이 모순된 감정이.
솔직해질 수 없는 내가.
난 무섭고 두렵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나.
다시 어지러워지려는 정신이.
난 솔직해질 수 없어.
인정하면 나를 놓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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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어지러운데, 알고 보니 이건 졸린 거야.
근데 졸린다는 내 기억의 느낌과는 맞지 않아.
이건 분명 어지럽다는 느낌이고 시선도 흔들려.
근데, 감정이 말을 해.
그건 졸린 거라고.
감정도 기억도 느낌도 어긋나면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환청과 환시.
이건 말이 되면 안 되는 건데, 난 왜 이게 말이 되는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날 인정하면 어지러움이 가라앉아.
그럼 잠이 깨서 그런가?
감정이 가슴의 통증도 가라앉히고 어지러움도 가라앉히면 기억이 느낌을 향해 소리치고 있어.
그럼 느낌이 자기 잘못이 아니고 감정이 잘못한 거라며 발뺌을 해.
그럼 감정은? 자신은 솔직한 것뿐이래.
어지러움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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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 한순간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어.
내 기억에선 분명 있었던 일이었고 본 것이었어.
생기지도 않은 길이 내 기억에는 있었고, 가본 적도 없는 장소는 분명히 내가 본 적이 있는 장소였어.
영화를 본 기억도, 아이언맨을 죽인 대상은 닥터 스트레인지였으며 타누스도 닥터 둠에게 죽었어.
내 대화 상대가 말해준 경험들도 난 분명히 들었었고 난 대답을 해주며 달래 준 적도 있어.
하지만, 길이 생긴 건 5년이 지난 현재이고 장소를 본 건 올해가 처음이래.
아인언맨은 타누스와 싸우다 죽었고 닥터 둠은 거기서 왜 나오냐고 물어.
대화 상대는 나와 대화 한번 한적 없는 남이야.
난, 결코 거짓말을 한 적 없어.
내가 말을 한 그 순간만큼은 난 진실을 말했어.
난 침묵을 해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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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써낸 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버림받았다 착각하며 미쳐버린 여자와,
신내림을 받아 신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 상황자체가 두려워 아무 말도 못 하다 가족을 모두 잃은, 신벌을 받는 남자.
넌 어떤 게 괜찮을 것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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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과 말에 답이 돌아왔다.
난 생각했다.
이거라면.
--초신성과 블랙홀의 이론에 대한 조사 자료와 링크
--뇌의 구조
--총기의 구조
--총기의 시초
--권총의 세부 사항과 총알에 대한 자료
--가장 치명적인 총은
--생명체를 사살하기 위한 총이 아닌 부수기 위해 발달한 총은
--좀비에 대한 이론
--중국의 명소
--중국의 사막지역
--러시아의 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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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을 계속해서 물었다.
특히 나타샤에 대한 글을 쓰며 막혔던 부분을 중점적으로 골라서.
꿈속에서 본, 흐물거리는 것을 안고 있는, 피로 절여진 여자를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끝이 없었다.
끝내, 손이 멈췄다.
겨우 30편을 만들고 남은 건 2만 자 정도의 남은 세이브 파일.
하지만, 퇴고가 필요했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주먹구구 식의 조잡한 언어의 나열이었다.
인기도 없는 글을 누가 보겠나 싶어서 올리는 것을 중지하고 나는 써 놓은 원조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읽었다.
더 이상은 다시 쓰는 게 귀찮았다.
더 이상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그’의 이야기는 폴더 안에 넣어 묵혔다.
한 석 달 묵히면 다시 읽으며 다듬을 수 있으리라.
나는, '나'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