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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었다.

적당히 해라.(4)

by 김은석

배낭을 꺼내서 짐을 쌌다.

(할배가 나보고 짐 싸란다.)

무릎을 꿇고 어머니께 사과하는 자신의 귀로 가면의 꾸지람을 들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말 혼자가 되고 싶었다.

어머니께는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 며칠 자고 오겠다고 말을 했다.

아버지는 내 방 책상 위에 오만 원짜리 4장을 올려두고는 큰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께 감사드려야지, 아버지를 설득해 주신 건 어머니이실 테니.)

나는 집을 나서며 고개를 까닥였다.

“가입 시다. 할배.”

나는, 내 눈에 보이는(스스로도 황당하게 생각해 버린 이름이다.) 붉은 사선(死線)을 쫓아 걸음을 옮겼다.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전주였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한옥마을을 걸어 비빔밥집으로 들어갔다.

밥이, 정말,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

나물은 싱겁고, 밥은 고두밥이었다.

비빔장으로 맛을 덮고 있지만 그 비빔장이 더 맛이 없었다.

비빔장에서 비린맛이 나서 그릇을 반도 못 비우고 식당에서 나왔다.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로 입을 헹궜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정수리를 당기는 감각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사선을 따라서 시선이 따라갔다.

대나무 숲이 보였다.


제법 오르막길.

저기를 오르기 위해 배를 채우려고 했던 건데, 돈만 날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눈앞이 당기듯 밝아지며 양쪽으로 가게가 늘어선 길이 나타났다.

반짝이는 풍경이 꼭 만화나 영화에서 보던 무림의 환락가 같았다.

엉거주춤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를 뒤에서 툭툭 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사선(死線)이 이어지는 가게 하나가 눈앞에 머물렀다.

나는, 가게 앞에 서서 외쳤다.

“저기요.”

허름한 차림의 비쩍 마른 아줌마가 나오더니 내게 말했다.

“네. 뭐 하실래요?”

나는 그제 서야 그 가게가 음료와 구운 치즈를 파는 가게임을 알았다.

내 입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구운 치즈 하나 주세요.”

“4천 원입니다.”

... 비쌌다.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소스도 추가하실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스 추가하면 6천 원이에요.”

만 원짜리 한 장을 내고 4천 원의 거스름 돈을 받으며, 고개를 숙인 나는 표정을 찌그러트렸다 다시 폈다.

... 비쌌다.


치즈가 구워 지기를 기다리는 시간, 등 뒤에서 웅성거리던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귀를 막고 있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텅 비이 있었던 내 뒤로 사람이 바글거리는 것을 보았다.

나를 부르는 아줌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아줌마에게서 꼬챙이로 꽂은 치즈를 종이컵에 담아 받아 든 순간,


-빚 갚았다.


사선이, 사라졌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공터에 앉아 치즈를 먹었다.

가로 세로 길이가 검지손가락 두 마디보다 짧은 게 4천 원이라니.

한 입에 털어 넣으려다 뜨거운 치즈에 입안을 데고 조금씩 베어 먹었지만, 5분도 되지 않아 치즈를 먹어 치워 버렸고,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발걸음을 향했다.

머릿속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답해주는 말을 따라서.

전주에서 볼일은 더 이상 없었다.


“할배, 저 아줌마한테는 무슨 빚이었는데요?”

버스 안에 앉아 혼자서 웅얼거리는 나를 앞에 앉은 사람이 힐끗하고 돌아보았다.

-...

“전생? 무슨 전생? 뭐, 전생에도 전 사람 이었슴까?”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서더니 자리를 옮겼다.

-...

“아... 죄송합니다. 전전전생? 뭐 그전 일수도 있지요.”

앞과 뒤, 그리고 옆 좌석의 사람들이 한 칸씩 멀어졌다.

-...

“목숨 빚이라... 그럼 오지게 싸게 갚았네요. 치즈 한 개 더 먹을걸...”

나는 의자를 휙 뒤로 제친 후 편하게 누워서 눈을 감았다.


길거리에 앉아 구걸을 하는 거지의 옆에 앉아서 거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담배 한 까치만요.”

거지는 기가 찬 표정으로 멀뚱히 나를 바라보다 호주머니로 손을 넣어 구겨진 담배 갑을 꺼냈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나에게 쓱 내밀었다.

난 그 담배를 받으며 말했다.

“불 도요.”

허. 하고 웃은 거지는 성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인 난 거지에게 말했다.

“이젠 쉬라. 뭔 원망이 많아서 아직까지 구걸하고 있냐.”

거지는 아무런 대답 없이, 자신의 왼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길거리를 청소하던 청소부가 내게 오더니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불 붙이고 뭘 하는 짓이냐고.

난 한숨을 푹 내 쉬며 나뭇가지를 바닥에 버리고 신발로 비벼 불을 껐다.

거지는 멀뚱히 나를 보고 있었고, 청소부는 내 멱살을 잡고 경찰서로 가자며 나를 질질 끌고 갔다.

청소부의 말이 참 감미로웠다.

“술 먹고 미칠려면 앵간히 미치라. x 같은 게 와 지랄이고. 안 그래도 힘들어 디지겠는데 니미 x 같은 거 까지 앞에서 알짱거리고 니미 xx것아. 오늘 니 디짓다. 알긋나.”

부산 학장동의 새벽 6시.

아침은 오랜만에 유치장 순대국밥 당첨이었다.


경찰 아저씨는 한숨을 쉬더니 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왜 그랬어요? 술 마셨어요?”

나는 실없이 웃으며 답했다.

“그곳이 참 사고 나기 좋은 곳이죠. 안 그래요?”

경찰 아저씨가 인상을 구기며 답했다.

“뭔 뻘 소리요? 제대로 답할 생각 없지예?”

나는 경찰 아저씨의 사투리 발음에 친근감을 느끼며 답했다.

“거기가, 개 새끼하고 고양이 새끼들이 그리 마이 죽어나가는 곳이지 안 나예?”

경찰 아저씨의 표정이 조금 더 구겨졌다.

“보호자 연락처나 부르이소. 이 양반 지 정신 아니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극락왕생 하시지예.”


폰을 뺏기고 순경은 1번을 눌렀다.

연결된 사람은 명현이었고, 명현은 이현식의 가족 중 유일하게 연락처를 알고 있는 이현식의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현식의 누나는 다시 부산에 머물고 있는 이현식의 큰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유치장의 나를 빼냈다.


사선을 따라 발길을 놀렸다.

이어지는 것은 인연의 실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알지도 못하는 살아있지 않은 것.

툭툭하고, 나오는 데로.

달래고 토닥이고 풀어내고 넋두리를 듣고 나도 하다 보면,

사선은 인연이 되어 실타래에서 풀려갔다.

나는 이 짓을 10일 동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구나. 불려 갔다.

유치장에서 아침을 먹은 것이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 더 이상은 무리였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내게 부탁했다.

제발 좀 참으라고.


겨울도 아닌데 바람이 시리도록 뼈로 스며드는 날.

난 잡초가 무성한 공원의 멘 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만 주구장창 씹고 있었다.

손안에 담겨 있는 스마트폰의 액정을 보며 눈알을 굴리다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어 시선을 돌렸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에는 맥락도 이어지지 않는, 중구난방의 글 들이 휘갈겨져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내가 써 놓은 게 맞는지도 의심스러워 읽고 또 읽었다.


--

연상된 기억이,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대부분이라는 건 누군가 함께 나눌 기억이 없거나 지금 그 기억을 나눌 누군가가 없거나겠지.

근데 난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연상된 기억이 트리거가 돼서 간질 발작을 일으킨다면.

신경과 담당 의사도 약물 처방만 높일 뿐 상담이 되지 못하고.

정신과 의사도 이해를 못 하고 처방만 할 뿐인 모습이 정말 답답한데.

난, 해결법을 찾으라는 주위의 충고라는, 조언이라는, 세치 혀에서 나오는 그 말이 협박처럼 느껴지는데.

늘어나는 병원의 수와 매번 반복하는 내 병의 증상에 대한 설명이 점점 지긋지긋해지는데, 그들은 끝없이 해결법을 찾자고 한다.

그래서 도망쳤지만, 지금도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로 도망을 치고 있지만, 두려운 건 내 사실을 알고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라는 것을.

가족은, 주변인이라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난 혐오한다.

두렵고, 증오스럽고, 원망하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한탄하며, 결국 내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막연히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이.

1분 1초 매 순간마다.

내 눈앞에 보일수록.

난, 지금의 난 생각을 끊고 연상을 끊고 지금의 나를 부르짖으며, 막혀버린 목구멍으로 나오지 못하는 비명을 짓으며 나를 불러 내가 현실에 있도록.

나를, 소리 내지도 못하고 어금니를 깨물며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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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소음 속에 귀먹은 귀멍멍이의 ‘조용하다’라는 말과도 같고,

시골산의 부엉이만 우는 고요한 밤의 ‘조용하다’ 와도 같으며,

전쟁터의 포화 속에서 바로 옆의 전우의 소리마저 듣지 못하는 ‘조용하다’ 와도 같은,

’ 세상이, 조용하다 ‘ 이 말을 표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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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로 퍼지는 소름을 근육의 경직으로 눌러.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욕하며 부수기 위해 덤비는 거야.

공포가 일순간 의식을 끊어도 난 주먹을 쥐고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주먹을 뻗어.

나를 불러.

욕하고 분노하며, 나를 붙잡고.

악을 쓰며, 부서질지 언정 구부러지지 않도록,

나를 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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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해진 눈앞에서 안개가 어슬렁거려.

악을 쓴 내가 다시 어지러워 지려해.

그래도, 붙들어야지.

허리를 피고 가슴을 피고 빡빡하게 근육을 경직시켜 머리까지 뜨거워지도록 목에 힘을 주고, 무겁게 한 발 한 발.

이제야 보인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제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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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증상

수많이 들리는 소리와 냄새와 모습에 한 명씩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잘라내고 소리와 냄새와 모습을 확고히 거짓이라 분류하여 머릿속에 담았다.

그 분류에 담겼으면서도 이것만은 잘라내지 못한 게 가족이란 것이었다.

나 자신을 보호해 줄 보호인이라는 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다.

정말 이게 사실입니까? 아님 거짓입니까? 내가 묻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난 지금 어디입니까”라고 물어봤자 모두는 내게 어디긴 어디냐고, 보고도 모르냐고.

걱정하는 얼굴 따윈 지겹거늘, 누구도 제대로 답해 주는 이는 없다.

난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한 걸음 딛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인정할 수 없는 불신 속에서 입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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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현 상태

마지막 가족이라는 보호인 마저 거짓으로 다가오는 순간, 나는 되뇐다.

어디입니까도 누구입니까도 그 누구의 무엇마저 거짓이 된 순간,

나는 내 이름을 되뇌고, 온몸의 소름을 붙들어,

이 것만이 ‘나’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

스스로에게 삼켜져 뜨거운 숨을 뱉어내면,

낯선 목소리가 잊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뱉어내고 난 겨우 내가 되어 겨우 한 걸음,

부서져버릴 듯 한 까마득함 앞에 부들거리며 온몸을 붙들어 쇳소리조차 뱉어내지 못하는 목구멍에 악과 고통을 담아 잡아 뜯어낸 말 한마디는, 겨우 단 두 글자,

그것은 내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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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어떻게 살릴까... 어떻게 살려야 잘 살렸다고 스스로 만족할까.

삭제 버튼으로 슬며시 가다가도 멈칫거리는 손을 들어 허공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쓴 기억도 없는 글이었다.

어떻게 낙서들이 남아있는지 그게 더 의문이었다.

나는 결국 스마트폰의 화면을 껐다.

지우기도 아깝고 살리기도 힘들었다.

어느새 필터까지 태운 담배를 시멘트 바닥 위에 비벼 남은 불씨마저 지운 후 한 개비의 담배를 빼내 다시 입에 물었다.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어떻게 써내야 할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어째서인지 어지러운 머리도 제법 조절이 되었고, 묵독으로 읽어서 구토를 하는 일 또한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져, 그것이 말썽이었다.

도저히, 뭘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후~. 어쩔까... 또 할배 부를까? ‘내는 현식이다’를 또 지랄하며 외쳐야 제정신으로 돌아올 긴데?”

나는 담배 필터를 앞니로 잘근잘근 씹었다.

이럴 때는 의견이라도 들려줬음 하는데 여전히 가면은 말을 듣지 않았다.

“문디 새끼. 찾을 때는 눈 코빼이도 안 비치네. 이 것도 니가 쓴 거 아이가?”

가면은 답이 없었다.

줄 담배가 너무도 쓰게 느껴졌다.

나는 허공에 연기를 뱉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모르겠다. 땔 치아(때려치워).”


안 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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