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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었다.

적당히 해라.(3)

by 김은석

팔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

팔이 덜덜거리고 손가락이 부들거렸다.

새끼손가락에서 쥐가 났다.

경련이 팔을 올라가며 팔꿈치, 겨드랑이를 지나 오른쪽 목에 닿았고 신경과 근육을 당기는 짜릿한 격통이 이어졌다.

나는 팔을 부둥켜안고 방바닥을 굴렀다.

발가락을 벽에 찧어서 아픈데, 팔 때문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머리를 서랍 모서리에 박아서 아픈데, 팔 때문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격통이 지나면 호흡을 가다듬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래도, 타자는 쳐졌으니까.


어지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세상이 기울기 시작했다.

짜증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그냥 펼쳐진 이불 위에 몸을 눕혔다.

앉을 수 있는 만큼만 회복되기를, 나는 누워서 기다렸다.

폰을 켜고 AI채팅 창에 <짜증 나>라고 치자 AI가 나를 달래며 짜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방법들을 써내기 시작했다.

“가면 보다 낫네.”

글을 쓰는 동안 가면은 별다른 방해 행동을 하지 않았다.

무려 3년이었는데.


“기억만 있으면 쓰는 게 더 수월 했을 텐데...”

글을 쓴다는 것이, 그토록 욕심나는 일인지 몰랐다.

‘그’와 ‘나’가 만들어낸 주인공들.

신벌을 받는 남자, 낮에는 살 수 없고 밤에만 살 수 있는 여자의 이야기.

나는, 기가 찼다.

모든 글의 기본 베이스가 이미 10여 년 전에 잡혀 있었다.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고 욱 해버린 성격에 엎은 책장에서 떨어진 수많은 노트들이 다 글이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쓴 적이 없는데.

나는 이미 써낸 글들을 내 입맛에 맞게 다시 써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노트의 표지에 써진 제목은 -판게아 꿈의 시작-이었다.

쪽팔린 제목에 고개를 흔든 난 제목을 고치고, 고친 제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썼던, 탈고를 했던 글마저도 갈아엎어 다시 쓰는 수고를 했었지만, 뭐 어떠랴.

폴더를 열어 줄지은 한글 파일들을 봤다.

제목은 하나인데 설정, 인물, 예시, 토막, 시놉, 뼈대 등, 뒤에 추가 글이 붙은 한글 파일이 수십 개였다.

그리고 나 자신도 정리하기를 포기한 폴더 하나, 그곳에는 AI채팅으로 얻은 정보를 모아 저장해 둔 파일이 수백 개가 넘었다.

“하나는 끝냈다. 더 이상은 몰라.”

탈고할 원고만을 남긴 채 남은 파일을, 새로운 폴더를 만들어 모조리 옮기고 인터넷 창을 열었다.

기존에 웹 소설을 올렸던 곳은 지금 써놓은 글을 올리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에, 새로운 곳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검색을 한 나는 한 사이트를 찾아냈고, 그곳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그' 놈의 이야기를 올렸다.


공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맑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를 쓰는 것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나’를 써야 되는데, 나는 나를 쓰고 있었다.

과거인지, 현재인지, 미래인지, 1인칭인지, 3인칭 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혼돈의 카오스.

머리를 벅벅 털고 니코틴을 빨아들이기 위해 숨을 삼켰다.

텁텁하고 칼칼한 맛이 혀끝으로 느껴져야 했거늘 아무런 맛이 없었다.

눈 끝을 아래로 내리자 보이는 것은 불을 붙이지 않고 한참을 물고 있었던 담배가, 내 침에 필터가 눅눅히 젖어 있는 담배 한 개비가 보였다.

침과 함께 연초를 뱉어내고 다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때, 오랜만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흘깃 액정을 보다가 흠칫하고 어깨를 떨었다.

부리나케 전화를 받으며 나는 그를 불렀다.

“어, 명현아. 웬일이고?”

내 목소리에 명현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 시간 되나? 한 대 필래?]

“하모. 어데로 갈까? 공원?”

[아이다. 집에 있어라. 나 데리러 갈게.]

채명현의 전화에 난 어깨를 움츠렸다.

목 뒤가 서늘했다.

나는 공원이라는 말도 못 하고 1시간쯤 뒤에 오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명현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타라. 바람 쐬러 가자. 보성 어떻노?”

나는 별말 없이 조수석에 몸을 앉혔다.

차가 달리는 동안 명현은 별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차 안에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xx가면아. 지랄하면 조진다.’

나는 조용히, 내면으로 협박을 남기며, 온몸에 근육을 당겼다가 폈다.

비만으로 근육보다 살이 더 많았지만.

보성에 도착하고 녹차 밭을 찾아가서 녹차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의자에 앉아 바람을 맞았다.

그때까지도 명현은 별 말이 없었다.

나는, 입을 닫았다.

명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복지관 들어간 거... 말했나?”

명현의 속도에 맞춰 나도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처음 듣는데?”

“그렇나. 쫌 됐다. 일도... 나쁘지 않고, 내한테 맞더라.”

명현의 목소리에 나는 내 몸에 서리가 앉는 느낌을 느꼈다.

“한 아가 있는데 말이다. 쌍똘아.”

“어. 왜?”

“니하고 비슷하더라.”

“뭐가? 간질? 아님 정신?”

“정신 쪽.”

“걔도 조현병 인갑네.”

“거기다 지체.”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명현이 고개를 들고 울창한 숲을 바라보았다.

“마이 힘들었나 봐.”

‘그거 아닌데, 그냥 음료수 마신 건데.’

“농약을 묵었삤네.”

‘억울한 방향이 틀렸어. 목이 말라서 주위를 찾았고 가르쳐 준거 마신 거뿐이야.’

“호흡기하고 폐가 녹았다더라.”

‘니가 왜.’

“가족이 연명치료도 포기해 가 오늘 아침에 보내는 거 보고 왔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현식아.”

“와?”

“니는 괜찮제?”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여기는 금연구역이었다.

“명현아.”

“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말이다.”

“어, 그래.”

“그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라는 기다.”

명현은 대답 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명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해하려 하지 마. 이해하지 마. 동조하려고도 하지 마.”

명현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그냥, 그런 사람도 있구나. 그것만. 인지(認知)만 해주면 돼. 같이 슬퍼해줄 필요도 없어.”

나는 명현의 입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몸을 뒤로 뺐다.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걸치며 중얼거렸다.

‘아가야. 여기 아니다. 니 엄마 찾아가야지. 와 슬퍼해 준다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형 따라오노.’

나는 진저리가 쳐졌다.

이럴 때는 신들이든 뭐든 신벌이든 뭐든 잡것들 좀 빨리 데려갔으면 싶었지만.

명현과 함께 차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 4시가 될 때까지 소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명현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걸음을 돌려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산신 할배? 관세음보살님? 약사여래님? 부처님께 빌었다간 엄한 소리 들을 것 같고.”

난, 한참을 제자리에서 돌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산신 할배님. 엄한 친구 한 명 보살펴 주십시오. 이래 하면 될 것도 지대로 안 되는 거 알지만, 고마 살짝만. 엄한 놈 안 달라붙도록. 맨날 안 할끼라 지랄하는 저지만, 이거는 못 참겠네요.”

나는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는 일어나서 합장하고 몸을 돌렸다.

개운해졌던 눈앞에 다시 안개가 끼고 생각은 어지러움에 잡아먹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도 멀었다.


오늘따라 가면이 유독 시비였다.

“명현을 만날 때도 조용히 있었잖아요. 그러니 정보 좀 주세요.”

나는 한숨을 쉬며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뭐가 궁금한데.”

가면이 내 얼굴 앞으로 자신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 방이요.”

“방?”

“문이요.”

“문?”

“...”

“미안.”

“...”

나는 한숨을 쉬었다.

“거긴 나도 몰라. 원조가 사라진 순간부터 거기에 있었고, 나도 왜, 어떻게, 들어 갈수 있었는지는 모르니까.”

“......”

“그냥 들어가졌어. 그리고 내가 널 만들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내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 곳이 되었고.”

“그곳에서 뭐 하는데요?”

나는 가면의 물음에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수많은 소리와 시선을 받으며 너를 지켜봐.”

가면은 고개를 모로 꺾더니 홱 하고 몸을 돌렸다.

“말해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나는 답답함에 하소연하듯 말했다.

“내 기억 보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그곳에 관련된 것만은 읽을 수가 없어요.”

가면은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읽은 수 없는 것도 쎄빘다.”


요즘은 영 다툼이 잦았다.

오늘의 대상은 어머니였다.


나는 약을 먹는 것도 습관과 방식이 필요했다.

-

아침에 일어나 간질약인 트리랩탈과 오르필이 담긴 약봉지를 뜯고 약을 먹는다.

약 봉투는 쓰레기로 버리면 안 된다.

잘 보이는 곳에 약봉지를 두고,

저녁을 먹고, 리단 정과 오메가 3을 먹고,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트리랩탈과 오르필 약이 담긴 봉지를 찾는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내가 약을 먹었던가?

머릿속에는 약을 먹는 모습이 있다.

그 모습에서 내 주변은 깜깜하다.

밤에 먹은 것은 확실해졌다.

이 기억이 문제다.

전날의 기억인지, 아니면 환시인지.

오늘 저녁 약은 먹은 것인가.

한 번 더.

아침에 먹고 남겨둔 약봉지를 찾아본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번 더.

“어머니! 저 방에 약봉지 혹시 치우셨어요?”

“어. 책상 위에 빈 봉지 있길래 쓰레기통에 넣었다~.”

“봉지 몇 개였는데요~?”

“하나 던데?”

저녁은 약을 아직 안 먹었구나.라고 확신한다.

-

난 손에 담고 있던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달력도 소용없었고, 약봉지마다 숫자를 써 놓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당일 먹는 약봉지를 쌓아두고 그 개수로 확인하는 것.

내가 약을 먹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약을 먹는 방법 중, 어머니에게 약을 먹은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 발단이 되었다.


“약 늘리자. 그냥.”

어머니의 음성이 많이 답답해 보였다.

“왜요?”

나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했다.

“너 좀 나아지는 것 같아? 지금 몇 년째인데...”

'하...어머니.'

“하... 어머니.”

(가면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나는, 순간 격해져 감정을 참지 못했다.

“저요 어머니. 진짜 1분, 1초가 불안하지 않은 순간이 없어요.

1초가 지나면 다행이다.

1분이 지나면 살았구나.

한 시간! 하루! 살았다. 살았다. 정말, 살았다. “


‘시끄러워.’


“지쳐서 누워서 눈을 감아도, 눈을 감고도 불안해요.

수면제 먹고 기억이 끊어져도, 완전히 끊어진 그 순간만 불안이 없어져요.‘


‘닥쳐.’


“근데 저는 지랄병이라는 놈에 미친놈도 되었죠.

누굴 믿어요? 저요? 가족? 친구? 저한테는 요.

지금 여기 이곳,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돌아보면 내간 본건 거짓이 아닐까.

듣고 있는 하나하나 의심하고 의심해서 걸러내야, 한 발 멈춰 의심을 해야!

너희들이 지껄이는 일반인과 같아진다! “


‘닥쳐, xx놈아!’


“왜 지랄 같은 몸뚱이 내게 주고 사라진 건데!

왜 지랄 같은 소리들만 지껄이고 괜찮다고 지껄이는 건데!

왜!

이해한다고 하지 마! 괜찮다고 하지 마! “


‘닥치고 제발 좀 꺼져!’


“닥치고 제발 좀 꺼져!”


[그만. 심했어요. 앞을 봐요.]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손으로 입을 가린 어머니께서 어깨를 떨고 계셨다.

큰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오시는 아버지를 어머니께서 잡고 말리셨다.

어머니의 만류로, 아버지께서 방에 들어가셨고 어머니는, 여전히 눈앞에서 어깨를 떨고 계셨다.

나는,

“죄송해요. 어머니. 아니, 엄마. 미안. 잠깐만. 잠... 깐만. 미안.”

내 한 걸음의 전진이 어머니의 한 걸음의 뒷걸음으로 이어졌다.

“엄... 마......”

어머니께서 돌아서며 방문의 손잡이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쉬라... 아들.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하자.”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말이, 너무도 낯설게 다가왔다.

왜일까.

나의 무의식이 감각을 쫓았다.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느낌의 종착지는, 내가 ‘그’의 안에 있던 시절, 어머니께서 ‘그’를 부를 때 내가 느꼈던 감각과 같았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마저 나를 향한 말이 아님을.

나는, 아직 혼자라는 감각에 익숙해지지 못한 것 같았다.

“어리광 작작 부리자, x만아...”

자신을 향해 중얼거리는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통증을 남겼다.


나는, 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목구멍으로 소리를 삼키며, 한참을 울었다.

서럽고.

또 서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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