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해라.(5)
김장을 하는 날.
오랜만에 내려온 누나네 식구까지 합해 집안이 시끌벅적 해졌다.
나 홀로 방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자, 방문이 살며시 열리며 어린 조카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진짜예요. 때리면 큰일 나요.]
가면이 나에게 잔소리를 한다.
웬일이지?
귀찮구먼, 하려면 지가 하지.
나는 조카를 의자에 앉혀서 너튜브를 보여줬고, 나는 누나에게 혼이 났다.
툴툴거리고 있는 내게 누나는 점심으로 중국집 음식을 먹을 테니 시키라는 불호령을 내렸고, 나는 메뉴를 적어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xx반점입니다.]
“네. 여기 xx동 xx아파트 103동 205호인데요.”
[네. 103동 205호.]
“짬뽕 둘 짜장 셋 볶음밥 하나 탕슉 대자 하나요.”
[네. 짬뽕 둘 짜장 셋 볶음밥 하나 탕수육 대자 하나요.]
어라.
난 수화기를 땠다가 다시 귀에 대었다.
상대의 호흡소리도 들리는데, 조금 전은 왜 그랬을까.
난 다시 말했다.
“짬뽕 둘 짜장 셋 볶음밥 하나 탕슉 대자 하나요.”
[네. 짬뽕 둘 짜장 셋 볶음밥 하나 탕수육 대자 하나요.]
역시.
안 들렸다.
난 다시 말했다.
“네. 짬뽕 둘 짜장 셋 볶음밥 하나 탕슉 대자 하나요.”
수화기 너머 짜증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 들렸다.
짐승들이 지르는 소리와 같이.
개나 고양이가 울부짖는 소리와 같이.
말 뜻을,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네! 짬뽕 둘 짜장 셋 볶음밥 하나 탕수육 대자 하나요!”]
x팔. 안 들린다고! 무슨 뜻인지! 안 들린다고!
“네! 짬뽕 둘 짜장 셋 볶음밥 하나 탕슉 대자 하나요.”
[네! 짬뽕 둘 짜장 셋 볶음밥 하나! 탕수육 대자 하나요!”]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폰을 집어던지고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았다.
씩씩 거리며 화를 가라앉히고는 아직도 지랄이라며 혼자서 발악을 했다.
가면은 최근 뭐가 그리도 들뜨게 하는지 신이 나 보였다.
누구는 죽겠는데.
가면이 코앞으로 오더니 속삭여 온다.
“오늘은 무슨 꿈을 꿨나요?”
할 수만 있다면 잡고 비틀어 부숴서 씹어 먹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왜 이걸 만들었을까.
“보면 되잖아. 와 물어보고 지랄인데. xx놈아.”
가면이 이죽거리며 속삭여 온다.
“말해 주세요. 그게 더 재미있어요.”
짜증이, 물 밀 듯이 밀려왔다.
.
가출을 한 나는 공장에 취직했다.
라인을 타며 반복된 동작만 하느라 몸뚱이 전신이 쑤셨지만, 집에 돌아와 노트에 볼펜으로 끄적이고 있을 때는 나름 행복하기도 했다.
나는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운 음식은 몸의 고통을 잊게 해주기도 했다.
스파게티면을 8분간 삶고 불닭소스와 짜파게티 소스를 뿌려 섞었다.
한 입 가득 넣고 우물거리자, 혀에서부터 화끈거리는 통증이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질문한다.
오늘은 뭘 했더라.
-공장을 갔다 왔지.
공장은 이름이 뭐더라.
-xx기계잖아.
지금 시간은 몇 시지?
-8시잖아.
원래 이렇게 늦게 왔어?
-6시 마치고 버스 타고 걸어오면 같은 시간인걸.
그 공장 난 언제부터 다니기 시작했지?
-1년 되었다.
1년이라, 난, 가출해서 어디에 있었지?
-...
대답이 없다.
매운맛이 혓바닥을 적시고 입안이 화끈거릴 때, 눈에 보이는 모습이 바뀌었다.
내가 있던 원룸의 2인용 식탁이 아닌, 부모님과 같이 있던 집의 4인용 식탁이 되었다.
난, 질문을 이었다.
내 원룸은 어디였지?
-... 네가 처음 자취했던 곳.
원룸의 대문을 열던 복도는,
네가 근무했던 아파트의 복도는.
내가 일하던 공장은,
매형이 소개해줘서 한 달간 일했던 공장은.
난, 가출을 했나.
-... 아니.
...
꿈이네.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일나라. xx놈아.”
내 목소리가 찰진 욕지거리와 함께 들려왔다.
살며시 눈을 뜨자 그곳은 그의 어머니와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전원주택의 그가 살던 작은 방안이었다.
일어나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매콤한 김치찌개 향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빠르게 고양이 세수 후 식탁에 앉았다.
구수한 밥 냄새에 코를 박고 있자,
밥상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는 아버지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난, 헤벌쭉 미소 지으며 밥 한 숟가락을 크게 퍼서 입에 넣었다.
... 비릿한 피 냄새에 다시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던 식탁은 온 데 간데 없이, 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 자신이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아님 누워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온몸을 기어 다니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손으로 몸을 더듬어 털어내고 손톱으로 피부를 긁었다.
“-”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
꿈이구나.
난 허탈히 웃었다.
웃는다고, 생각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하나를 움직이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무언가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진절머리가 쳐지는 감각과 함께, 오로지 손가락 하나에 모든 의식을 집중하기 위해,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두 눈을 감고 호흡마저 끊었다.
꿈틀 하는 느낌에 목소리를 내보았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에 성급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다시 새끼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꿈틀.
다시 꿈틀.
난, 그제 서야 다시, 삼키고 멈췄던 호흡을 뱉어낸다.
-아아아악!!!
벌떡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면 그곳은 내 방이었다.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은 등을 훑어 땀을 털어내자, 방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난, 어머니에게 말했다.
“누구세요?”
어머니는, 물방울이 되어 흘러내렸다.
소름이 전신을 씻어낸다.
감각이 얼어붙고 치가 떨렸다.
이 무슨 x 같은 일이란 말인가.
“x팔!!!!!!!!!!”
상체를 벌떡 일으킨 내 앞에 흰 옷차림의 모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난 그녀에게 허탈히 웃으며 물었다.
“제가 들어온 지 며칠 되었나요?”
여자는 눈을 멀뚱 거리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환자분 어머니와 같이 오셨잖아요?”
난 잘래잘래 머리를 저었다.
정신병동에서 낮잠이 길었나 보다.
깜빡인 눈이 포착한 천장은 매우 익숙한 벽지와 전등이었다.
나는 허허하고 웃고 말았다.
“지랄도 풍년이다. xx놈아.”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찡그렸다.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너무도 짜증이 났다.
땀을 많이 흘리고 잤는지 등이 축축했다.
나는 부들거리는 팔로 몸을 지탱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조금 전 본 벽지와 전등이 왜 익숙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것들은 내 집, 내 방에 있는 것들이었다.
소름이 돋아 한기가 돌고, 근육이 경직되어 고통이 몸 전신을 덮고 열이 올랐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없는 건 마음에 들었지만 대신 세상이 뱅글뱅글 돌았다.
그리고, 한동안 가라앉았던 어지러움이 다시 돌아와 고개를 들고 나를 반겼다.
누우면 그나마 숨은 쉴 수 있었지만.
진짜. 지랄도 풍년이었다.
.
누가 만든 말인지 참 찰지다는 생각이 드는 말을, 난 요 근래 자주 쓰게 되었다.
‘지랄도 풍년이다.’라는 말을.
평상시에도 자주 악몽을 꾸는 편이었지만, 글에 집착하게 된 이후로는 악몽을 꿔도 악몽 같지 않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무섭거나 가위를 눌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꿈을.
그것이 악몽이었다.
무한히 반복될 듯 한, 수십 번의 꿈이, 깨어났다고 생각했던 현실이 다시 꿈일 뿐인, 반복되는 일상정인 꿈의 반복.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현병의 병증과 닮아 있었기에,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이 옵션을 낀 악몽이 열 번 이상 반복되면 제법 심력을 소비시켰다.
그래도 글감이 늘어나는 것이 좋아 나도 가면과 함께 웃었더니, 가면이 머리를 저으며 사라져 버렸다.
“나도 힘들어. 새끼야.”
듣는 이 한 명 없는 푸념은 괜스레 스스로를 뻘쭘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