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해라.(6)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흡연 충동에 몸을 일으킬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었더니 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보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
“어. 웬일이고? 오늘 쉬나?”
명현이 어정쩡한 목소리로 답했다.
[번개네. 폰을 귀에 대고 있었나? 바람 쐬러 갈래?]
나는 킥킥거리며 웃어주고는 답했다.
“그래. 울 집으로 올 거가?”
[30분 뒤에 도착하것다. 쫌 있다 보자.]
“알긋다.”
명현의 차를 타고, 우리가 향한 곳은 남해였다.
나는 명현이 차를 몰고 가는 길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길 또 오네. 드라이브하기에 바다가 그림이더만..”
명현은 웃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글나. 난 이야기 듣고 첨 온다. 그 사람도 좋다고는 하더라.”
오늘은 무슨 일일까.
소름은, 돋지 않았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느린 속도로 드라이브를 즐기던 짧은 시간이 지나고,
“쌍똘아.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는데. 그 할아버지가 여 사셨거든.”
'그래.'
“어. 근데?”
“치매가 와가, 아들 집에서 살았는데...”
“... 어.”
“아들이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안 보이더라네. 할아버지가.”
“... 어.”
“찾았다. 산속에서. 이미... 돌아가신 걸.”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 길이 새로 생겨서 뻥 뚫렸다는 말 듣고, 차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길래.... 함 와보고 싶더라.”
나는, 내가, 언제 이곳에 왔던 것인지.
“근데 니는 언제 와 봤노?”
그저, 명현의 물음에 답했다.
“한 5년 됐다. 저 언덕 넘으면 차 세아바라.”
머리를 작게 흔들며 혼자서 중얼거리는 명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 길 생긴 지 이제 한 달 됐다...”
나는 차를 세우고 내린 명현을 이끌어 바닷바람이 시원한 길 위에서 한 곳을 가리켰다.
“이쁘제?”
<난 단 한순간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어.>
“저기에 한 집이 있었는데 노을이 질 때가 되면 해가 딱 집 옆에 서가 진짜 이뻤다.”
명현은 그렇냐며 내 말에 맞장구를 쳐 줬다.
그의 말과 행동 사이에 망설임의 틈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이 도로가 생기기 전에, 근처에 할아버지 집이 있었는데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할아버지 집이 없어졌다는 명현의 말에, 나는 그렇냐고 대답을 해주며.
‘아스팔트 도로가 길게 뻗은 여기서 바라보는 저곳은 정말 이뻤단다. 친구야.’
-조심히 가이소. 어르신.
나는, 명현을 불렀다.
“친구야.”
명현이 힐긋 나를 보는 것을 느끼며,
“인지만 해라. 이해는 하지 말고.”
명현에게는. 씁쓸할 뿐인 말만이,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변화를 주는 데에도 막대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치웠다.
전기기능사 문제집 표지를 찢어 책상 위에 붙여둔 곳을 손톱으로 슬며시 긁으며 낮게 한숨을 쉰 나는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 떠 있는 가면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버릴 거예요?”
가면의 질문에 나는 답했다.
“알면서 뭘 물어?”
가면이 감정 한 줌 없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각오는 하고 있는 거예요?”
짜증 나는 저 놈의 목소리를 찢어버릴 수만 있다면.
“새삼스럽게 지랄하지 마세요. 지금 몇 달째 죽겠는데 뭔 x소리야.”
매일, 하루하루가 고층 빌딩에 연결된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다.
소름이 돋고, 목 근육이 수축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사지로 이어지는 감각에.
이빨이 따다 다닥 부딪히는 소리만이 내가 현실에 있다고 인식시켜 주었다.
왜 인지 모른다.
뭐가 이유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이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 나를 등 떠미는 감각이었다.
결국 나는 책상의 윗면에 붙여둔 문제집 표지를 뜯지 못했다.
그대로 책상을 들어 창고로 쓰는 빈 방에 던져버렸다.
문제집 표지 아래에 쓰여 있을 문장들을, 나는 다시 볼 용기가 없어서.
물론, 예전 ‘그’가 미쳐서 써 놓은 문장은 ‘나’의 기억 속에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발악하며 잊어버리고,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뿌리치는 것이 내게 있어 최선이었다.
-
미친놈 소리 들으며, 부처님께서 바라보는 곳을 적고 방위를 낙서해 두고, 보살님들의 방위를 적고 알아볼 수도 없는 낙서를 해 둔.
그것은 ‘그’와 ‘나’의 -진실- 인 망상이었다.
발악하며 망상이라고 거부하고 부정하지 않는 한, 자아마저 오롯이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모두 태워버릴, 단 하나의 -진실-이었다.
-
매형이 생일 선물로 준 용돈을 모아 책상과 의자를 샀다.
대부분을 조카들의 생일 선물이나 어린이날 선물로 줘버려서 여유롭지는 않았기에 조립식으로 구입을 했다.
책상과 의자를 조립하고 방에 배치를 한 날.
나는.
모든 게 끝났음을, 깨닫고, 받아들였다.
가구 배치 따위가 끝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늦은 밤, 운동이라는 핑계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남기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몸 전신의 닭살이 거꾸로 서고 숨이 가빠졌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오랜만에 선명해졌다.
-이제 가자.
-이제 오거라.
목소리들이 나를 불렀다.
지금 걸어 나간다면 나는 어떻게 될지.
미치도록 두려워서.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모두 가렸다.
고인 눈물이 떨어져도 마스크로 스며들도록.
숨을 고르고 걸음을 디뎠다.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모른다.
횡단보도와 점멸하듯 반짝이는 빨간색 신호등.
그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나는 뻗어나가려는 발걸음을 의지로 멈춰 세운다.
가지 마라.
가지 말자.
아직은. 절대. 가지 않을 거다.
멀리서 가까워지는 울림소리에, 나는 보지도 않고 왼팔을 옆으로 뻗었다.
턱 하고 걸리는 그것이 나는 무엇인지 몰랐다.
짧은 비명과, 둔탁한 후두부의 마찰 통증과 함께, 눈앞으로 지나가는 덤프트럭의 바람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옆에서 횡단보도로 뛰어가는 사람의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하하하고 웃어버렸다.
“액땜했네요.”
가면의 가벼운 저 목소리를, 찢어서 부숴 버리고 싶었다.
나는, 힘이 빠져 비틀거리는 다리로 쓰러지려는 몸을 지탱하며 걸음을 옮겼다.
살았다.
나는, 살았다.
x팔. 살았다.
울컥하고 오르는 숨을 콱. 하고 내리누른다.
덜덜 떨리는 숨을, 멈추지 않도록 의식해서 삼키고 뱉어낸다.
뜨거운 공기가, 목구멍에서 올라와서 이빨 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x팔.
누가 알까.
필히 죽으리라 믿고? 아니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걸음을, 옮겼었다.
두려움이 나를 잡지 않았다면.
살아있음에, 난 걸음을 멈추지 않았었다.
공포가 나름 잡지 않았다면.
서서히 차오르는 감각이 가슴의 명치를 치고, 울컥하는 감정이 끝내 눈물이 되어 흘러나온다.
걸음을 멈추지 말자.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나는, 끝내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입을 덮은 마스크가 소리를 삼키고, 얼굴을 반쯤 가린 모자가 눈물을 가렸지만.
나는, 참지 못한 울음을 뱉어내며 악을 질렀다.
“차라리! 죽이라! x새끼야!”
가면이 허공에 뜬 채 한숨을 쉬었다.
살고 싶으면서 왜 그랬냐는 가면의 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도저히 스스로도 이해가 불가능한 사람이구나.
끅끅거리며 울분을 토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히죽 웃어버리는 내 얼굴이,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
모두 맡겼으면서 왜 툭툭 튀어나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냐고 가면이 툴툴거렸다.
과거를 보고 전생을 보고 미래를 보고.
아버지에게 다시 화내는 나는.
“왜! 멀쩡한 꽃을 씹어먹고 지랄인데! 아직도 지가 사슴인 줄 아나!?”
“사람이 됐으면 사람답게 살 것이지. 허구한 맨 날 사람 대가리를 꽃 대가리 씹듯이 뜯어 먹나!! 봐바라. 아버지 마누라 사람이다. 니는 짐승이 아니라 말이다! 앵간이 씹어라! 쫌!!”
머리가 지끈거렸다.
속이 메스껍다.
오랜만에 술 생각이 나서 집에서 뛰쳐나와 혼자 공원에 앉아 안주도 없이 폭탄주를 만들어 먹었더니 네 잔도 못 먹고 아까운 술만 다 버렸다.
학교 다닐 때나 관리사무소에서 일할 때는 소주 3병, 맥주 9병 섞어도 거뜬했는데.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약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느껴지는 건 간질 전조증상.
버티자.
버틸 수 있다.
가속되는 생각을 흐트러트리며 나 자신의 발을 바닥에 고정시킨다.
움직일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흐트러트리면 남는 건 나 하나뿐이다.
약사가 나를 보며 입을 벌렸다.
대답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그냥 흐트러트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난, 약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겼다.
라고 생각하며.
멀뚱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약사에게 말했다.
“술 깨는 약 좀 주세요.”
.
.
왜 순경이 날 내려 보고 있을까.
왜 몸이 욱신거리고, 전신에 힘이 없을까.
순경이 눈을 뜬 내게 말했다.
”의식 차렸네요. 조금만 기다리면 구급차 올 거예요. “
난, 그 말이 무슨 의미 인지 알 수 없었다.
약사가 내 시야에 들어오더니 말했다.
”무슨 병 있어요? 구급차 오기 전에 약이라도 좀 줄게요. 경련을 너무 심하게 해서 저희도 엄청 힘들었어요. “
난 그들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씁쓸함이 내 입꼬리에 걸리는 감각이 너무도... 선명했다.
‘졌구나.’
허탈감에 빠져 일주일을 버텼다.
8일째 되던 날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몸을 일으켰을 때.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었다.
머리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보이는 건 그냥 내 방인데, 머릿속은 폭죽이 터지는 강한 바람 부는 바닷가다.
정신이 없다.
정말.
바닥이 흔들리고, 휘청이는 몸을, 바람이 몰아쳐 머리까지 흔들려 가누지 못할 정도인데.
폭죽까지 터트려 버리는 이명 속에, 소리 없는 전란 속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고 거리감을 없애버린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여기, 내 방에, 나 혼자만이 남아있다.
낡은 선풍기 탈탈 돌아가는 소리가 내가 듣는 소리고.
토독토독 옷감이 바닥을 스치고 두드리는 리듬 있는 소리.
이불의 부슬거리는 감촉이 내가 있는 여기라고,
폭죽 밑에서 비명을 지를 나를 끌고 와 이불을 보여주며 좀 보라고 악을 질러도,
쉽사리. 그래,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내가, 미치겠다.
나는, 무뚝뚝한 얼굴을 보며 손을 휘저었다.
그의 얼굴을 본떠 내 손으로 만든 가면을 보며,
내 얼굴을 닮은 그의 얼굴을 그대로 베껴놓은 얼굴인, ‘가면’을 보며.
지쳤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 입술을 비틀어, 나는 말했다.
“살고 싶다.”
그의 몸뚱이로.
그의 턱으로.
그의 이빨로.
그리고, ‘그’의 것이었던, 입으로.
“살고 싶다. x팔.”
나는 지껄였다.
눈앞이 흐려졌다.
목소리가 덜덜 떨려 나왔다.
명치에서 울컥이는 고통에 숨이 턱턱 막혀, 뱉어내고 싶어도 넘어오지 않는 갑갑함에 난 주먹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이, 뚫린 입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을 마구잡이로 두드리자 내 몸뚱이는 우웩 소리와 함께, 위액만을 토해냈다.
나는 눈앞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그의 얼굴을 그대로 베껴놓은 가면을 향해 말했다.
살고 싶다고.
숨을 고르기 위해 호흡을 반복했지만 더욱 격해지는 울분이 통제를 벗어났다.
내가 아는 것은.
(왜, 어떻게 아는 지도 알 수 없는.)
분리하는 것, 오직 그것 하나.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살고 싶다고 발광을 하던 '나'가, 나를 살리기 위헤서 선택한 방법.
가고 싶지 않은데.
개똥 밭에 굴러도 현실이 좋다고.
하지만, '이현식'을 현재에 잡아둘 방법을, 난 하나 밖에 알지 못했다.
호흡이, 눈물이 진정되지 않지만, 모든 고통과 통증과 잡념들을 끌어안고 나는, 침전된 의식 속에서 문을 열었다.
이제는, 내 입은 우는 소리 대신 욕지거리를 반복해서 뱉어내고 있었다.
셀 수 없는 눈과 도저히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간다.
.
.
어둠 속으로 들어가 문을 열어.
한 발을 안으로 들이면,
그곳에는 무수한 눈과 셀 수 없는 입이 있어.
시선은 멈추지 않고 입은 잠시도 쉬지 않아.
난.
그곳으로 들어가.
내 것도 아닌, 그의 것이었던 ‘이름’을 중얼거리며 전신의 근육을 경직시켜.
단 한순간이라도 의식의 끈을 놓친다면, 난 나를 잊어버릴 거야.
나도, 그의 이름도. 존재했다는 모든 기억과 감정과 느낌을.
난 슬쩍 고개를 돌리며 등 뒤에 있는 가면에게 속삭여줬어.
문은 닫히고, 내 주위에는 무수한 눈과 입 밖에는 없어.
그래.
나는. 이제 싸울거야.
뭘 위한 건지도 모르겠고, 누굴 위한 건지도 몰라.
오직 한 가지만.
단 하나.
하나만 기억 할거야.
나는,
.
.
이현식이다.
x팔 x마.
-
적당히, 과하지 않게.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주위의 시선을 향해 친절한 표정과 친절한 음성과 친절한 몸짓으로.
자신이, 부서지지 않을 만큼만.
내가. ‘나’가,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모두 다 가져가 버린 자리에서.
그냥 적당히.
부서진 과거도.
두려운 미래도.
없이.
적당히.
물은 더 이상 물컵에서 넘치지 않을 거다.
남은 건,
‘나’조차 빠져버린 이현식이 되겠지만.
그래.
그냥...
'가면아.'
“적당히, 해라.”
.
.
.
고생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