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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었다.

epilogue

by 김은석

■하나. ‘나’의 기억


-

내가 느끼는 감각 중에 적응도 되지 않고 공포심만 짙은데,

이 감각이 때로는 내 질문에 더 많은 대답을 해준다.

그 감각은 질척거리는 늪에 나 자신을 빠트려 떠오를 생각이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생각 없이 그저 몸을 웅크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나를 침전시키는 감각이다.

마치 중독되는 것처럼. 또는 부지불식에, 순식간에.

늪 속에 있는 자신을 보면 나는 공포를 느끼고 그 감각을 지우기 위해 머릿속을 흩트린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조차 인식에 왜곡이 있는 그 순간 난 입을 닫고 머리와 입속으로 강하게 외친다.

‘그’의 이름을.

악착같이.

그런데 말이다.

그 짧은 침전 속에 난 너무도 많은 기억과 정보를 얻고, 때로는 나를 잊어.

때로는 창작이 되는 내 거짓말이나 환상이 현실로 다가와 눈앞을 어지럽힌다.

내가 하는 건 어금니를 물고 이름을 머릿속에 주입하며 구역질을 참는 것뿐.

때로는 그 감각이 글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정리되어 문장이 되기까지는 몇 차례 반복되는 감각과 고통과 공포를 느낀 후다.


.


늪은, 무서워. 두려워.

알 수 없는 공포가 짓눌러.

벗어나고 싶은데 발버둥이 먹히질 않아.

그리고 한 적 없는 질문에 답을 주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꺼내진 지식은 나를 조금씩 침식하며 나를 지우는 것 만 같아.

그래서 머릿속으로 외치는 거야.

답이나 지식이나 모든 해답이, 인지하는 현실마저 믿을 수 없게 만들어.

나를 잠식하는 감각이 처음은 정말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지만, ‘그’의 이름을 외치며 나를 나 자신이 구속하고 현재에 붙들어 박아.

내가 있는 곳에서 늪을 향해 주먹을 뻗어.

늪을 부수려고.

늪은 언제나 눈앞에서 감았거나 떴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언제나 늪은 나를 빠트려.

침식하고 잠식해서 답과 지식과 글을 주고.

난 나를 아등바등 지켜서 늪을 부숴 기어이 늪 밖에서 나를 보고 나서야.

늪을, 기록하는 거야.

-


■둘. 가면의 대답.


가면은 가만히 생각했다.


-적당히 해라.


가면은, ‘그’의 기억에서 ‘그’만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나’ 또한 배웠으며, 환청과 환시, ‘나’와 ‘그’가 의심하지 않고 믿기도 하였던 것들마저 배웠다.

그래서, 가면은 ‘나’가 ‘그’를 거부했던 기억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적당히, 해라.”


가면은, 그 말뜻이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부담 가지지 말고 과욕 부리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의 -적당히 해라.- 와,

응석 부리지 말고 놀 핑계 만들면서 농땡이 부리지 말고 똑바로 살라는 뜻 의 -적당히 해라.-라는 뜻인지.

가면은, 자신의 몸이 제법 차가운 것을 느꼈다.

이 안에는 뭐가 있을까? 우울증? 조증? 경련발작?

아님, 자신의 부모도 알아보지 못하는 정신분열증을 가진 병자?

명현이라는 인물과의 기억의 조각 중 하나에서는 가족마저 자신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면 친구를 찾으라 하였고, 그 마저 되지 않는다면 공무원을 찾으라고 하였다.

유치장에서 바쁜 순경을 자리에 앉힐 수만 있다면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며.


가면은 수첩을 펼쳐 보고, 노트를 휘적거렸다.

가면은 현식의 몸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지럼증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고, 헛된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헛된 것이 보이는 일도 없었다.

가끔은. 그래, 아주 가끔은 ‘그’와 ‘나’가 봤던 것과 들은 것을 보고 들을 때도 있었지만, 그건 그저 가끔이었다.

가면은, 그럴 때는 그냥 조심히 중얼거려 줬다.

일 좀 제대로 하라고.


가면은 눈을 감고, 방 문 앞에 선 자신을 느꼈다.

몸이 예전보다 둔하게 느껴졌다.

가면은 다시 눈을 떴다.

가면은, 그제 서야 또렷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몸을 일으켰다.

“원조(‘그’) 대신, 주체(‘나’) 대신, 이제 제가 살 차례인가 보네요.”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소리가 된 목소리를 들으며 가면은 머리를 숙였다.

부모님께는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지,

그래도, 주체(‘나’)는 죽지는 않았으니까.

언젠가,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저는 담배 끊을 테니 돌아와서 담배 피운다 하면 안 돼요. 술은 맥주 캔 딱 2개. 안 먹으면 더 좋고.”

가면은 뭔가를 흥얼거리며 방 문을 열려다가, 유난히도 귀에 감기는 그 노래를 음성 검색으로 찾아 노래 제목을 읽었다.

가수와 노래 제목은, 조관우의 늪이었다.

가면은 피식 웃으며,

“너무 깊게 빠지지는 말아요. 헤어 나오지도 못하면 어떡해요.”

가면은, 이현식의 삶을 시작했다.


■셋. 가면.


나는, 텅 빈 밤의 거리에서 생각을 한다.

이제 혼자 남은 나는,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백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긁어서 흔적을 남긴 그 어떤 무엇이라도, 그것 하나로 나의 기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캄캄한 밤의 텅 빈 거리에서 천천히, 조금씩 발을 디뎌 본다.


나는, 거리를 두고, 밤 속의 고요와 같이, 주변을 채운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소리에서 지운다.

백색 위에 그려내고 싶은 것은 인격체가 긍정하는 지식이 아닌, 나라는 ‘하나‘ 가 표출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의 자국 일 뿐.

이해받지 못하든, 이해가 필요하든, 나에게는 필요 없는, 상관없는 사고 일뿐.

나는 아마, 살고 싶다 보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선택을 한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위에 돌을 들어 비벼서 찢어진 모습을 보아도, 그것이 흔적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마도, 나는 그것을 흔적이자 기록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며 걸음 멈춘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노파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서 계셨다.

“총각. xx병원 가는 길 아요?”

나는 할머니에게 길을 가르쳐 드리고 고개를 돌렸다.

잠시 생각하다가 나도 그 병원에 가는 길이었기에 다시 고개를 돌리고 할머니께 같이 가자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심히 고개를 돌리고는 신호등의 초록빛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밤이면 항상 산책을 나왔다.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두 시간 정도 잡다한 생각과 함께 걷다 보면 조금은 불규칙하게 뒤엉킨 기록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생각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눈앞에 아이가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손에 들린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나는, 방망이를 피하고 아이의 가슴을 차서 날려버렸다.

나는 넘어진 아이를 힐긋 보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산책길 끝에 다다른 곳은 잔디가 무성한 관리되지 않은 공원이었다.

멀뚱히 밤하늘을 올려보고 있자 어딘가에서 첨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보니 강아지 한 마리가 배수로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좋은 곳으로 가기를. “

몸을 일으키고 나는 다시 걸었다.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일.

의사가 내게 물었다.

“이번에는 별일 없었어요?”

나는 대답했다.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들을 일축하고,

“그냥, 무난했어요.”

의사가 희미하게 웃더니 내게 물었다.

“몸은 안 아파요? 계절 바뀌는 이때가 좀 힘들 텐데.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 전신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긴 해요. “

”지금도요? “

”네. 지금도요. “

의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기록을 한다.

”뭔가 색다르거나… 일상이지만 한 번쯤 말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었나요? “

나는 고개를 저으려다 떠오르는 기억들을 모아서 답했다.

길을 잃은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졌다고도 말했고,

나를 때리려던 10살 정도의 아이를 발로 찼다고 말했으며,

배수로에 빠진 강아지에게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도 해 줬다고.

의사의 표정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 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많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의사에게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이가 있지만 치매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동자가 맑았고 말투가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아이는, 한 가지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 말을 따랐을 뿐이라고.

때릴 각오가 있다면 맞을 각오도 있다는 말을.

그래서 때려줬을 뿐이라고.

강아지는 처음에는 자신도 손을 뻗었지만 몸을 움츠리고 으르렁 거리는 의사의 표현은 거부의 표시이기에, 난 강아지의 뜻을 존중해 주고 내 도리만 지켰을 뿐이라고.

의사는, 입을 닫고 다음 시간에 보자며 나를 돌려보냈다.


시골집에는 키우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제법 큰 진돗개 잡종으로 아버지가 가져다 둔 개였다.

나는 산책을 나가기 전 개에게 다가가 개의 눈앞에서 손에 쥐포를 들고 흔들었다.

목줄 때문에 입이 닿지 않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상체를 숙이고 개의 입 앞에서 쥐포를 흔들자, 켁켁 거리며 달려들던 개가 머리를 거칠게 흔들더니, 무언가가 내 이마를 스치고 가는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앞이 따끔거려서 이마를 손으로 닦았다.

찐득거리는 붉은 액체가 손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창고로 가서 삽을 들고 나왔다.

“짐승은 공격이 아닌 죽일 각오겠지… 그럼 죽을 각오도 있는 거겠고.”

나는 목줄에 목이 졸려 켁켁 거리는 짐승의 머리를 삽으로 찍었다.


백지에 색을 칠 할수록 백지는 형형색색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섞여서 점점 검게 변해 갔다.

돌로 비벼 찢어진 틈으로도 보이는 것은 겹겹이 칠해져 하나로 뭉친 검은색이었다.

흔적을 남기고, 기록을 할수록,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기준을 만든다.

친절에는 친절로.

악의에는 악의로.

각오에는 똑같은 각오로.

나는, 텅 빈 밤의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검게 칠해지고 듬성듬성 찢어진 종이 하나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들고 팔랑거리며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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