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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었다.

적당히 해라.(1)

by 김은석

자다가 눈을 뜨면 밥을 먹고 다시 누웠다.

누워서 뒹굴다가 밥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다시 누웠다.

이유는 별 것 없었다.

그냥, 세상이, 뒤집어졌다.

머리가 바닥에 닿지 않는 한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머리와 발의 위치가 바뀌어 내가 온전히 서 있는 건지, 아니면 나만을 뺀 모든 것이 뒤집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귀찮다느니 놀 수 있다느니, 행복에 겨운 소리였다.

말로 현실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악을 지르고 모든 집기를 모조리 다 던져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것마저 사치였다.

병원 검사를 통해 이석증이라는 진단과 치료를 받았지만 뒤집어진 세상은 그대로였다.

왜 인지 이유는 알 것 같았기에.

알고 싶지 않았지만, 짐작은 되었고, 난 그것을 무시했다.

그냥 버티기로 했다.

몇 년을 버티면 돌아올까, 누구에게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내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책을 찾아서 보기도 해 봤지만, 왼손으로만 잡고 보는 것이 불편했다.

며칠을 찾아 헤매다 발견한 것이 웹소설이었다.

스마트폰을 왼손으로 쥐고 글에 빠져 있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망상도, 환청도, 환시도 소설을 읽고 있으면 소설의 내용을 상상하느라 따로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한 문장을 읽는 게 제법, 힘들었다.

‘그’가 왜 고생을 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만약 ‘아름다운 꽃이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치자.

난, ‘아’라는 글자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 하나로 겹쳐져 매직과도 같이 보였다.

‘름’이라는 글자를 읽기 위해 수십 개의 ‘아’를 찾아 깊게 빠져들어 읽어내야 했다.

‘름’을 찾아 읽고 ‘다’를 찾아 읽고 ‘운’을 찾아 읽는다.

눈앞에서는 세상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이라는 단어를 읽으면, ‘아름답다’라는 뜻을 떠올리기 위해 두통을 겪고 망각과 함께한다.

다음 ‘꽃’이라는 글자를 읽기 위해 ‘아’, ‘름’, ‘다’, ‘운’을 머리에 주입해야 했다.

‘아름다운’은 무슨 뜻이었는가.

글로는 떠올릴 수 없다. 멋지다. 이쁘다. 잘 생겼다. 못생겼다. 시원한. 상쾌한...

‘아름다운’을 떠올릴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

누가 있을까.

연예인이 만만할 것 같다.

... 잘해야 이쁘다 일뿐, 아름다운이 없다.

그림으로 바꾼다.

선뜻 떠오르는 이미지에 아름다운을 접목하고 그 뜻을 글에서 읽은 ‘아름다운’에 대입한다.

‘아름다운’이, 만들어졌다.

이제 꽃을 찾을 때다.

코스모스, 아카시아, 장미, 백합, 민들레, 수선화...

‘아름다운’이 어울리는 ‘꽃’을 이미지로 떠올려서 붙이면 그제야 문장이 완성되었다.

그제야 한 문장을 읽었다.

(왜 머릿속에는 겨우 검은색 장미 한 송이만 만들어져 있을까.)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다행이었다.

‘이었다’는 인지가 되고 이해로 넘어가는 순간, 연상으로 이었다, 이다, 일 것이다, 를 강제로 떠올리게 만들고, 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지식을 각성시킨다.

마치 목줄 풀린 개떼들처럼, 눈앞에 있는 글은 흑색으로 적혀 있는데, 내게 읽혀야 할 글들은 남아있지 않았다.

겨우 눈앞에 보이는 글은 다시 내가 처음 보는 글이 되었고, 난 다시 페이지를 돌려 글을 읽어야 했다.

이딴 것들을 이겨내는데 나는 머리를 쥐고 흔들며 바닥을 뒹굴다 화장실로 쫓아가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일을 수 없이 했었다.

후에는 너무 많은 소설을 읽어서 주제나 전개가 비슷한 소설은 혼동을 해서 어떤 이야기가 어떤 소설의 이야기였는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다시 하나의 소설을 처음부터 읽었다.

하나의 소설을 제대로 읽기까지 전편을 읽은 횟수는 최소가 2회였다.

제일 많이 읽은 횟수는 20회가 넘었다.

한 페이지를 온전히 읽기 위해 넘긴 횟수를 보탠다면, 내가 한 권을 읽은 횟수는 못해도 100회는 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읽어도 읽고 나면 기억은 흐릿해졌다.

그래서, ‘시간’은 무수히도 흘러갔다.

며칠을 누워서 보냈는지 모르겠다.

몇 달을 누워서 보냈는지 모르겠다.


참지 못한 어머니의 하소연에 나는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좌측으로 30도가 기운 계단을 밟고 내려와 현관 앞에 섰다.

최소한 걷자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각오와 함께 밖으로 나간 첫날,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일부터 출장인데 뭘 챙겨야 되나, 괜히 영업으로 들어가서 개고생 하는 건가.'

'오늘 밤은 탄수화물 없이 치맥? 그래도 소주가 좋은데. 낮술로 소주를?’

‘점수 또 깎였네. 저 아저씨는 뭔데 노려보지? 재수 없어.’

‘오, 세일한다. 색깔은 마음에 안 드는데, 그냥 살까? 사지 마?’

‘믿습니까!? 이러면 되나? 아니면 믿으십니까!?’

‘이 새끼는 어디에 숨어서. 잡히면 죽는다. xx 내 돈. x팔.’

‘아프다고 꾀병 부리고 하루 쉴까. 놀러 갈 곳 먼저 찾아봐야 되나?’

.

.

.

나는, 기가 찼다.

눈으로 보면, 소리가 또렷해졌고, 보지 않으면 그나마 흐릿해졌지만.

징글징글해진 나는 치를 떨며 집으로 돌아갔다.


늦은 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을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곳만 골라 걸으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소름이 돋는다.

단 한 걸음을 내딛는데 무수한 공포심이 차 올랐다.

무섭다.

두렵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나는 십여 분을 벌벌 떨며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힘겹게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맞네요. 할배. 앞으로 세 걸음.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에 앉아 있는 아줌마에게 고양이 천국에 잘 갔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알았어요. 알았어.”

떨리지 않는 오른팔을 들어 흥얼흥얼 멜로디를 읊는다.

그렇게 아줌마에게 말을 걸고 뺨을 맞은 후에야,

“자, 이럼 됐죠? 이제 꺼지라. 보이지도 않는데 우짜라고. 뒤질 때 차에 갈린 걸 내보고 어떻게 봐?! 안 보여!!”

맑았던 눈앞에 안개가 끼고 머리가 다시 어지러워졌다.

잊혔던 공포가 다시 차오르고, 내 걸음의 앞에는 하얀 안개가 차오른다.

생명에는 차이가 없다.

저것은 누구, 무엇, 어떤 것의 생명이었을까.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깨달은 것은 하나.

지금 현재 나 자신이 가진 모든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신을 없애고 신이라는 것들에게 자신을 바치라는, 미친 환청.


나는, 밤을 걸었다.

낮에는 누워 있고, 밤에는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혹여 질문이라도 받았다가 환청에 답하면 나는 미친놈이 된다.

그럴 바에야 잡것을 보고 벌벌 떨며 걸음을 딛는 쪽이 나는 낫다고 생각했다.

걷는 중에는 항상 근육을 경직시키고 온몸에 힘을 주어, 발 한 걸음에 지축을 울릴 듯 강하게 디뎠다.

세상아, 싸우자.

어지럽다.

진짜 x 나게 어지럽다.

.

아버지의 사무실에는 더 이상 피를 머금었던 장판도 없었고, 붉은 스티커가 붙은 가구도 없었다.

왜 내 걸음이 이곳으로 향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텅 빈 공간에 있는 것은 벽에 걸린 전신 거울 하나.

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발에서부터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눈을 보며 시선을 고정시켰다.

거울 안에서 내가 나를 보며 자신의 살찐 몸을 가리키며 웃는다.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두 눈을 가리다가 다시 손을 내리며, 즐거운 듯 미소 짓는다.

짜증이 속을 부글거리며 올라와 어깨를 감쌌다.

선명해지는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소름을 일으켰다.

왜냐고 수십 번을 물어도 답해주는 이 하나 없었다.

나는.

오른손 주먹을 뻗어 거울을 부쉈다.

거울의 파편이 손등에 박혔다.

살이 찢어지며 저릿한 감각이 올라왔고,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오른팔이 축 처지고 왼손으로 쳐진 오른팔을 감쌌다.

팔 전신으로 퍼지는 아린 통증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깨진 거울을 이마로 들이박았다.

서걱하는 소름 끼치는 감각과 함께 이마가 간지러웠다.

깨진 거울의 파편 사이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붉은 피가 이마를 적시고 왼쪽 눈으로 흘러들었다.

머리가, 시원해졌다.


폰을 켜고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명현아.”

또 거짓은 아닐까.

“나 응급실 좀.”

또, 상처받지 않을까.

나는, 이마에 흐르는 흥건한 피를 닦아내며 그에게 말했다.

“아직도 네 목소리는 먼데. 그래도, 반갑다. 친구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

잡초가 무성한 공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은 나는 울컥거리는 감정을 악착같이 꾹꾹 눌렀다.

터지지 마라. 터지지 마라.

냄비 안을 가득 채우고 자글자글 끓는 물처럼, 넘치려는 감정을 누르고 눌러 터지지 않도록, 악착같이.

하지만.

생각이. 가속된다.

왜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끌려가야 되는지.

난 여기 잡초가 무성한 공원에 있는데,

난 그냥 앉아 담배나 피우고 있을 뿐인데.

까득거리는 내 이 가는 소리가 왜 천둥소리처럼 들리고 내 피부는 오지도 않는 비가 피부를 두드리는 감각을 느끼며 눈은 물속 바닥에 기어 다니는 작은 게를 보고 있는지.

그래 개소리다.

개소리다, 이 것들은.

x 같은 개소리다.

감았던 눈을 뜨면 바닥에 퍼질러진 나를 느낀다.

생각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미치자 흐느적흐느적 손을 놀려 입가를 쓸었다.

손가락 끝에 뭔가가 진득하게 묻어 나와 눈으로 확인하니 빨간색이다.

뭘 어쨌길래 또 피일까.

오른손으로 마저 닦아볼까 하는 생각에 팔을 들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 나 팔 병신이구나.

허리를 비틀어 몸을 돌려 하늘을 봤다.

어두운 하늘에 별이 보였다.

날씨가 너무 맑아 수 만개의 별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왼팔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몸이 물먹은 스펀지 마냥 무겁기만 했다.

울컥거리는 감정이 가슴을 쥐어틀며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왔다.

화(火)가, 미쳐 버릴 것 같은 화(火)가, 목구멍에 걸려 껄떡거렸다.

왼손이 바닥을 쓸었다.

툭 하고 부딪히는 감각에 슬쩍 눈길을 돌리자 묵직한 돌덩이가 보였다.

돌덩이를 들어서 오른팔을 바라봤다.

시선은 점점 내려가 축 퍼진 오른손 손등에서 머물렀다.

-

돌덩이를 들어 손등을 찍었다.

한번,

다시 한번,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씨……x——!”

돌덩이를 집어던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손을 부여잡고, 나는 엉엉 울었다.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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