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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었다.

가면(7)

by 김은석

입원한 지 10일 째의 날.

나는 먼저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거 아세요, 교수님?”

교수는 이현식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원조는 말이에요. 지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교수가 귓속말을 하듯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헤실 웃으며, 천천히 방 안의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전등의 불빛이 알갱이가 되어,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모여드는 모습이 제법 신기했다.

“9살...이었을 거예요. 자신보다 4개월 정도 차이 나는 사촌을 형이라 부르며 엄청나게 따랐지만, 그와의 카드게임에서 지자 대성통곡을 했어요.”

나를 향한 교수의 두 눈동자가 반짝이는 모습이 제법 신기했다.

“그 사촌형이 원조를 달래며, 착각했다며 자신이 졌다고 말하고 나서야, 원조는 울음을 그치고 병신 같이 웃었습니다.”

교수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것만으로는 현식 씨... 아, 지금은 ‘나’인가요? 제가 주체인격이라고 부르기로 했던... 아무튼, 원조인격이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요?”

교수의 물음에 나는 살며시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원조는 말이에요. 지는 게 싫어서 경쟁을 포기했어요.”

교수가 키보드를 눌러 뭔가를 기록하더니 고개를 모로 살짝 꺾었다.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교수는 나를 보며 어떤 말들을 적었을까.

“학생이라면 당연히 하는 공부에,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자, 그는 성적표를 받으면 항상 그 종이를 씹어 먹었어요. 성적 따윈 자신의 눈으로 본 적이 없었고, 어는 순간부터 답안지는 항상 같은 번호를 적었죠.”

내 표정은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기에, 교수의 눈빛이 저렇게도 반짝이고 있는 것일까.

“체육으로 지는 게 싫어서, 이기는 노력을 해도 아무런 진전이 없자, 과도하게 자신의 몸에 무리를 줬고, 무릎이 망가져 버리자 그는 헤실거리며 자신을 향해 말했어요. 이제 할 필요 없다고.”

교수의 입이 벌이지는 그 모습이, 왜 이토록 보기 싫은 걸까.

“제가 말씀드린 것들은 원조가 18살까지 한 행동입니다.”

교수의 입이 닫혔다.

“원조가, 지고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담금질 하자는 마인드로 정신을 차린 건 18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고 나서부터에요. 그래도 지는 건 싫어서 경쟁이 필요한 곳에는 최대한 가지 않았지만.”

나는 이현식의 발끝을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기억에 다시 말을 이었다.

“한 가지, 깜빡한 게 있었네요. 원조가 15살에 고입연합고사 시험을 위해 머리를 싸맨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교수가 그에게 답했다.

“뭔가요?”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식이 쓰레기라 촌 동네 농업고교 말고는 보낼 곳이 없으니 애먼 노력 하려 하지 말라는 말을 한 담임선생을, 죽일 수 없는 자신이 개탄스러워서. 어머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였어요.”

교수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교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나는, 교수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원조는, 화낼 줄을 몰라요. 난 어머니가 술을 마시고 그날의 일을 아버지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들은 그날, 한 밤중에 식칼을 빼들고 집에서 나왔었는데. 그것마저 무슨 불안감을 느낀 건지 갑자기 깨어난 원조에게 육체의 통제력을 뺏겨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교수의 눈빛이 왜 싸늘하게 변하는 걸까.

“나도, 지고이기는 건 싫어요. 귀찮아요. 경쟁을 하는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게 정말 쓸데없이 느껴져요. 그런데 말이에요, 교수님.”

교수가 아무런 답이 없다.

나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내 거 뺏들어가는 새끼는 내 손으로 죽인다.”

왜 아무런 말이 없을까.

“내 거 손대면 대가리부터 뿌숴줄구마.”

쾅. 하는 소리와 내 손에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움찔하고 어깨를 떠는 교수가 왜 저리도 한심스럽게 보이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난 원조가 약해서 싫었던 게 아닙니다. 그냥 참기만 하는 게 재수 없었을 뿐입니다.”

내 말 좀 들어줬으면.

알아주지 않더라도, 들어 만이라도 주었으면.

“그런데, 이젠 내 것이 없어요. 이제.”

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원조는 사라져 버렸고. 가면은 이현식을 빼앗아 가려고 발악하고, 난 환청과 환시에 고통받고 있네요.”

교수가 천천히 자세를 고치며 내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원조가 말한 ‘남이다’라는 말이, 이제 내 말이 되었네요.”

나는, 교수가 무슨 말이라도 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등 뒤에서 감싸오는 하얀색의 천은 이전에 한번 본 것이었다.

등 뒤에서 옷에 팔을 넣으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꺼칠꺼칠한 면이 제법 포근함을 주기도 하는, 한 시간만 입고 있어도 좀이 쑤시는 옷, 구속복이 나를 감쌌다.

교수가 살며시 손을 들어 제지했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내 짐작에 있었던 말이었기에, 난 입을 다물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난 알고 있다.

그 말의 뜻은, 거절이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침묵을 선택하고 가면을 끄집어낸다.

나는 가면을 더 이상 억누르지 않는다.

나는 가면에게 속삭이며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니 x대로 해봐라.”


병원에 입원한 지 14일째 되던 날.

내 면담 시간은 내가 입원한 이후로 항상 오후 4시부터 시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보다 한 시간이 늦은 오후 5시에 교수가 찾아왔다.

교수는 나를 앞에 앉혀둔 채 내게 물었다.

“오늘은 가면 씨인가요? 아니면 주체 씨인가요?”

나는 입을 열어 교수의 말에 답하고 싶었지만, 활발해진 가면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도 눈꼬리를 가늘게 휘며 웃었다.

“가면 씨군요. 오늘도 잘 부탁해요.”

“그는, 27살에 간질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취업을 포기, 고향으로 내려가 5년을 허송세월로 보냈습니다. 부모도 반대하는 직업전문학교의 기숙사에 32살의 나이에 들어가서 1년 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취직했지만, 간질 발작과 공황증상으로 스스로 도망쳐 나왔죠. 34살에는 가공배전 자격증 취득을 위해 교육을 받던 중 사고를 당하고 오른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면은 이현식의 오른팔을 들어 천천히 손목을 돌렸다.

“교수님.”

가면의 부름에 교수가 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이 오른팔 있잖아요. 저는 참 신기하답니다.”

“뭐가 신기한가요?”

“언제 어느 순간에 통증이 올지 알 수 없어요. 거기다 주체인격은 오른팔을 움직이면 항상 경련을 일으키고 힘도, 비교하자면... 왼팔의 30%? 정도밖에 못 써요. 그런데요. 전 아니에요. “

교수가 책상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가면 씨는 어떻게 오른팔을 움직이나요?”

“맡기면 돼요.”

교수가 흥미가 돋은 표정으로 가면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요?”

“저는 ‘그’나 '나’와 같이 소리를 듣거나 그들을 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수많은 기억의 경험과 기억의 감정, 기억의 느낌 속에서 그들에게 말하는 방법을 찾았어요.”

“그래서요?”

“그들에게 말했어요. 원하는 데로 하시라고.”

교수는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 의자에 등을 붙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교수님.”

가면이 교수를 부르자 교수가 의자에 등을 기댄 자세 그대로 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조현병에서 말하는 환청과 환시는 실제 하는 현상인 건가요?”

교수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전 말이에요. 그들의 목소리도, 모습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원조의 기억과 주체의 기억은, 그건 없다고 할 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실험을 하나 해봤어요.”

“그 실험이...”

“네. 제 오른팔을 그들에게 준다고, 결론지었어요.”

가면이 이현식의 팔을 부드럽게 들어 올리며, 동작을 취했다.

그 팔에서는 어떠한 경련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 보세요. 교수님. 제 선택이 옳은 것 같지 않나요?”

교수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길래.

“교수님.”

“네.”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해 드릴게요.”

“제가 무슨 질문이라도 했나요?”

“그건 저도 몰라요.”

교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하지만, 전 답해야 돼요.”

교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말씀해 보세요.”

“들으래요. 들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래요.”

“그 말은 가면 씨의 말인가요? 아님 환청?”

“몰라요. 그저, 그들이 시켰어요. 전 시킨 대로 따라한 것뿐입니다.”

가면은 여전히 이현식의 오른팔을 허공에서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면씨는 들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몰라요. 그저, 그들이 시켰어요.”

“가면씨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몰라요. 그저. 그들이 시켰어요.”

이현식의 허공을 젓는 오른팔이 멈추지를 않는다.

교수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비비며 오늘의 상담을 종료하자고 말했다.

교수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선 가면이 그제야 이현식의 오른팔을 아래로 내렸다.

이현식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이제 갔나 보네요.”

교수는 가면의 말을 무시했다.

“이제 나가보세요. 이틀 후에 보죠.”

가면은 교수에게 꾸벅 머리를 숙인 후 면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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