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5)
교수의 눈이 내 입에서 위로 올라와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현식 씨.”
교수의 부르는 목소리가 ‘나’가 아닌 ‘그’를 부르는 것만 같아 낯설었다.
“이현식 씨.”
나는 가면을 불러냈지만, 가면은 어떻게 해도 반응이 없었다.
“지금 현식 씨가 보고 있는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경옥이라고 합니다.”
나는 자신을 이경옥이라고 말한 여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 여기는 xxx 정신건강의학 전문센터 정신건강의학과 면담실이에요.”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치솟아 오르는 역겨움에 헛구역질을 했다.
그녀는 내 헛구역질에도 아무런 대처 없이 곧은 자세로 말했다.
“솔직해지라는 말이 아니에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제게도 말해주세요. 전, 들을 수 있어요.”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교수가 왜 나를 쫓아내려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휠체어에 앉아 병동으로 이동하는 내 뒤에서, 간호조무사가 휠체어를 잡고 밀고 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 발작을 했다는 증거인데, 마땅히 전조증상을 느낀 것 같은 감각은 없었다.
마치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현실이 꿈속의 일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느낌.
나는, 억지로 생각을 털어내고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나긋하지만, 비집고 들어오는 그 느낌이 상당히 불쾌했다.
발가벗기는 정도가 아니라 살을 가르고 껍데기를 찢어내는 것만 같은 감각의 시선이었다.
목소리가, 커터 칼의 시린 칼날의 감각과도 같아, 피부를 서걱하고 가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깝치지 마라... xx 년아...”
중얼거린 이현식의 목소리가 내 귀에 남아 메아리친다.
간호조무사는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병동에 입원한 지 6일째.
입원 이후로 3번째 면담의 시간.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교수의 앞에 앉았다.
교수가 내게 인사를 하고, 먼저 말을 하기 전, 내가 먼저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
“왜 이 병원을 고르셨습니까? 교수님.”
교수는 두 눈을 깜빡이더니 포근한 미소 속에 말을 담았다.
하지만, 그 말뜻은 조금 애매했다.
“이곳 밖에 남은 곳이 없었네요. 환자를 당장 만날 수 있는 곳이요.”
나는 교수에게 더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장 옮겨요. 여기 구려요.”
교수는 고개를 까닥이며 내게 물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었나요?”
나는 6일간의 병동 경험을 교수에게 전했다.
청소를 모두 환자들에게 맡겨서 화장실은 지린내가 가득했고, 변기는 사용하고 몸을 씻지 않으면 엉덩이가 따갑고 가려웠다.
병실 안에 있는 환자들은 벽을 손바닥으로 때리는 일이 일상이었는데,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는 내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기까지는 5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침대의 시트와 담요를 바꿔달라고 간호조무사에게 말했지만, 간호조무사는 여유분이 없다는 말로 대신했고, 환자복을 바꿔줬다.
그리고, 시트를 거꾸로 뒤집어 사용하라는 간호조무사의 말에 나는 따랐고, 5일째 날 아침. 난 팔에 새겨진 붉은색 반점들을 손으로 긁었다.
나는, 병실에서 공동 생활하던 다른 환자에게 들은 말을 교수에게 전했다.
“병실에 빈대가 가득합니다.”
나는 교수에게 팔등을 보여 줬고, 교수는 내 손목을 당겨 내 팔을 주시했다.
교수는 아무런 말이 없더니, 오늘의 상담은 여기서 마치자며 면담실에서 나를 내보냈다.
지금 입원한 정신 병원은 이전에 입원했던 정신 병원과는 다른 점들이 꽤 많았다.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흡연 시간입니다. 흡연하실 분 병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2열로 줄 서 주세요.”
남자 간호조무사의 말에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서랍에서 담배 갑과 라이터를 챙겼다.
“빨리 나오세요! 23명. 남은 2명! 오늘은 안 필 겁니까!?”
병원에 입원한 남성 환자만 35명.
그중에 25명이 흡연자였다.
남자 간호조무사는 미리 흡연자를 파악해 두고 담배를 피우러 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끌고 나갔다.
그리고, 흡연실에는 병동이 나눠진 여성 환자들도 흡연을 위해 같은 시간에 모였다.
대략 50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흡연실인 병원 옥상에서 정해진 시간에 단체로 모여 담배를 피웠다.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기에 나 또한 같이 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내려가기 직전에는 간호조무사가 환자들이 옷을 털고 가는 것을 확인하며 우리를 병실로 들여보냈다.
각각 다른 병원, 다른 병동에 3번의 입원을 하며 알게 된 것은 병동 안에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꼭 한 명 이상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로 병동 복도와 공용실을 걸어 다녔다.
조현병의 약은 식욕을 돋우고 살을 찌웠다.
거기에 뇌전증의 약이 같이 섞이면 효과는 더욱 진해졌다.
의사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30년이 넘게 50kg을 넘은 적이 없었는데 약을 복용 후 64kg이 되었으니 난 의사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살찌는 약은 조현병과 간질약이라고.
간호사가 부르거나 밥을 먹는 시간, 의사와의 면담 시간이 아닌 한은 주야장천 걷기만 했다.
기존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은 그런 나에게 접근해서 말을 걸었지만, 난 웃어주기만 했다.
그 사람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에.
한 사람이 내 옆으로 와서 아무런 말없이 내 보폭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난 걷는 방향을 바꿔 간호실로 향했다.
쇠창살로 덮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님.”
내 부름에 두 명의 여 간호사가 나를 바라봤고,
난 내 옆에 멈춰 서 있는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 간호사님들도 보이나요?”
간호사 중 한 명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서류로 고개를 돌렸고, 남은 한 명은 내게 시큰둥한 목소리로 답했다.
“장난치지 말고 가세요. 저희 바빠요.”
나는 고개를 모로 꺾으며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았다.
거꾸로 써진 글을 읽으며,
“차트 바뀌었나 보네요. 환자 먹는 약이 바뀌었네요.”
많아봐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간호사의 어깨가 흠칫 떨리더니 나를 멀뚱히 바라본다.
“저희 방, 제 옆자리에 있는 분이네요. 약이 바뀌었네요.”
간호사는 차트를 뒤적였고, 짜증을 내더니 내게 소리를 빽 질렀다.
다른 간호사가 그녀를 토닥이며 차트를 확인하더니 짜증을 내는 간호사의 귀에 속삭였고, 짜증을 내던 간호사는 차트를 뒤적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몸을 일으켰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간호사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내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환자분 옆방에 입원한 환자예요.”
나는 간호사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몸을 돌렸다.
나는 간호사의 말을 한번 더 확인해야만 했다.
‘간호사의 말’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가 내게 말을 한 일이 사실인지 아니면 나만의 망상인지, 또는 더 나아가 간호사실에 간호사가 진짜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만의 망상이었는지를.
“오늘은 뭐예요? xx병원인가요?”
공용실의 딱딱한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남자 간호조무사의 옆으로 가서 살며시 소파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간호조무사는 힐끗 나를 째려보다가 TV로 눈을 돌렸다.
“첫날은 헛소리해서 죄송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가면’이 열일을 하고 있었다.
간호조무사는 이마 살을 구기며 나를 쳐다보다 몸을 일으켰다.
명백한 거부의 표시였지만.
“담배 한 갑 사드릴게요. 네?”
간호조무사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요?”
퉁명스러운 말투.
나는 씨익 웃으며 아직도 옆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속 쫓아와요. 이래도 돼요?”
간호조무사는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TV 쪽으로 돌리며,
“이현식 씨 친한 사람 없잖아. 그 사람이라도 친하게 지내봐요.”
나는 이것으로 확인을 마쳤다.
물론, 간호조무사가 진짜 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어떤 환자를 보고 간호조무사라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내 망상 속의 나 혼자만 보는 가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세 번째 확인은 본인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나는 남자가 내게 오기 전에 무엇을 하는지부터 지켜봤다.
남자는 500ml 생수통을 두 개 들고 아령을 들어 올리듯 운동을 하고 있었다.
30개의 횟수로 3세트를 채우면 다시 병동의 공용실과 복도를 걸었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 옆으로 와서 내 보폭에 맞춰 옆을 걸었다.
나는 그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날이 좋습니다.”
밖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치고 있었다.
남자도 정중한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네. 날씨가 참 좋네요.”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잡음이 섞였다.
“뭐가 보이시나요?”
내 질문에 남자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마도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 제 안에 있는 분이 답하라네요.”
남자는 자신을 3대 전, 증조할머니에게 빙의받은 자라고 소개했다.
나는 남자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궁금했던 것을 그에게 물었던 나는 그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간호조무사의 참견으로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제일 힘들 때가 언제세요?
-화장실 갈 때요. 전 서서 싸는 게 편한데 할머니는 앉아서 싸야 된다고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