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을 사 들고 온 적이 없어

PART Ⅰ. 존재의 퍼즐: 아빠라는 사람

by 연우

퇴근길, 아빠는 만원 지하철을 타고 귀가한다. 한 손에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 봉지를 들고 현관문을 연다. 아내가 반기고, 아이들은 웃으며 달려간다. 정장 차림의 아빠는 피곤한 얼굴로도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구두를 벗는다.


어렸을 적 TV 속에서만 보았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 장면은 반복 재생되는 비디오테이프처럼,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우리 집 현관문은 그런 식으로 열리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 집 현관문은 아빠에 의해 바깥에서 안으로 열리지 않았다. 현관문을 여는 사람은 주로 엄마와 나였다. 가끔은 치킨이나 자장면을 들고 온 배달 아저씨였다.


아빠는 문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문을 잠그는 사람이었고, 문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문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치킨 봉지를 든 아빠는 TV 속 존재일 뿐이었다.


아빠는 면도하지도 않았고 양복을 입지도 않았다. 출근에 쫓겨 현관을 뛰어나가지도 퇴근길에 서류 가방을 들고 귀가하지도 않았다. 턱수염은 덥수룩했고 머리는 장발이었다. 운전 면허증조차 없었기에 차가 필요할 땐 항상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아빠는 분명히 아빠였지만 왜인지 ‘아빠’라는 단어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출퇴근, 외식, 출장, 주말 나들이―TV 속 아빠의 모습은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었다. 친구들이 “주말에 서울 대공원에 다녀왔어.”나 “아빠가 출장 선물로 사다 주신 샤프야.”라고 자랑할 때마다 나는 입을 다물곤 했다.


아빠는 바닥에서 생활했다. 누워서는 생각하고 엎드려서는 글을 썼다. 엎드려 글을 쓰다가 다시 뒤돌아 눕기만 하면, 바로 취침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그랬다. 아빠는 작가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무명 시절까지 합치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는 작가였다. 심지어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작가였다.


아빠는 아침에 자고 밤에 일어났다.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신 뒤, 다시 방바닥에 누웠다. 누워서 생각하거나 글을 쓰고 있으면 그것이 곧 아빠가 근무 중이라는 뜻이었다. 아빠의 하루는 방 안에서 시작되고 방 안에서 완성되었다.


아빠에게 놀자고 조를 때마다 엄마는 아빠를 가리키며 “쉿. 지금 아빠 일하시는 중이야”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수염과 머리가 덥수룩한 188cm인 장신의 남자가 하얀 민소매 내의에 사각 트렁크만 입고 방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만 보였다. 언제 자는지 언제 일하는지 구분할 수가 없어서, 나는 아빠에게 놀자고 조르기를 서서히 그만뒀다.


종종 상상하곤 했다. 한밤중에 초인종이 울리면 문이 열리고 아빠가 들어오는 장면을, 지친 얼굴로도 웃어 보이며 치킨 봉지를 내민 손을,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치킨을 뜯는 우리 가족을. 그렇게 마무리하는 하루를.


치킨을 싫어하거나 먹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배달로 자주 시켜 먹었다. 전화 한 통이면 따뜻한 치킨이 금세 현관문 앞에 도착하니까. 하지만 중요했던 건 치킨이 아니었다. 배달은 직접 가서 사 오는 포장과 달랐다. 밖에서 음식을 사 오는 것은 바깥세상과 우리 집을 이어주는 특별한 연결고리 같았다.


포장 치킨에 집착했던 건, 어쩌면 그것만큼은 쉽게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놀이공원에 가거나 자전거를 배우거나 캐치볼을 하는 것들은 내게는 아주 큰 소원이었다. 마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갖고 싶어요”라고 비는 격이었다.


언젠가 아빠가 사 들고 올지도 모를 따뜻한 치킨 한 봉지. 그 작고 소박한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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