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홍콩은 곧 영화배우 장국영이었다. 그의 인생작 《패왕별희(覇王別姬)》 속 우희의 비극적인 운명은, 그의 삶과 어쩌면 그리도 닮아 있었을까. 홍콩에 도착한 후, 나는 그의 슬픈 자취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 여행의 고단함 탓에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나마 그 건물을 바라보며 장국영을 떠올렸다. 그곳은 초호화 럭셔리의 상징이다. 1963년 개장 당시 홍콩 최고층 건물이었던 이 호텔은 수십 년간 홍콩 사교계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가장 화려한 곳이 가장 비극적인 장소였다는 아이러니.
《패왕별희》: 무너진 예술과 현실의 경계
장국영의 인생작 《패왕별희》는 격동의 20세기 중국사를 배경으로 경극 배우들의 예술혼과 운명을 그린 대서사시다. 이 작품이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이유는, 예술과 현실의 위험한 경계를 처절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 역할인 우희를 맡은 청데이(장국영 扮)는 극 중 인물처럼 현실에서도 사랑과 예술의 경계에서 위태로웠다. 문화대혁명이 경극을 짓밟았듯, 현실의 고통은 그의 영혼을 파고들었다. 장국영은 청데이 역을 통해 아름다움과 고독, 사랑의 처절함을 ‘예술 그 자체’로 완성하며 기억되었다.
무대 위의 우희가 현실의 청데이를 집어삼켰듯, 장국영 역시 화려한 스크린의 삶과 깊고 고독한 내면의 고통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다 균형을 잃고 말았다.
장국영과 홍콩의 역설
2003년 4월 1일, 그는 이 호텔의 24층에서 투신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은 “더 이상 삶을 사랑할 수 없어서 죽는다”는 역설이었다. 어쩌면 그 말은, 그가 삶을 얼마나 처절하게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깊은 증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마지막 순간을 보낸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은, 지금도 그의 기일이 되면 호텔 앞에 꽃을 바치며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가끔 4월 1일이 되면 그가 출연했던 영화의 음악을 들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그를 추모한다.
장국영이 홍콩의 가장 화려한 빛이었다면, 그 빛이 닿지 않는 이면에는 생존을 위해 빈틈없이 들어찬 그림자가 존재했다. 그의 비극적 선택이 남긴 공허함을 안고 내가 향한 곳은,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인 초고밀도의 거주지였다.
홍콩의 또 다른 얼굴: 초고밀도의 풍경
홍콩섬 동부의 몬스터 빌딩(익청빌딩)은 수천 개의 창문과 실외기가 다닥다닥 붙어 중앙 안뜰을 둘러싼 모습이 마치 미래 디스토피아의 스케치 같았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촬영지로 유명하지만, 이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생활의 공간이었다.
건물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올려다본 풍경만으로도 그들의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허공을 향해 위태롭게 내걸린 빨래들은 한 줌의 햇볕을 간절히 붙잡고 있었고, 빈틈없이 맞붙은 창문들은 한 뼘의 공간조차 얼마나 귀하게 쓰이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하늘을 찌를 듯 좁고 높게 솟은 그 거대한 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딸과의 여행이라 보안 문제로 숙소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밀도 높은 풍경은 잊히지 않았다.
화양연화, 나의 젊은 시절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예술가, 장국영. 그리고 초고밀도 주택과 최고급 호텔이 공존하는 홍콩. 이 도시는 예술혼의 비극과 삶의 극단적인 밀도가 교차하는, 빛과 그림자의 도시로 남아 있다.
홍콩은 장국영의 마지막 무대였고, 나에게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도시였다. 이 여행은 단지 홍콩이 아닌, 나의 젊은 시절로 떠난 여행이었다. 젊은 시절 열광했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와 배우 장국영의 영향이 나를 만들었기에.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홍콩은,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는지도 모른다. 꽃처럼 붉고, 그래서 더 아릿했던 나의 젊은 날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