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은 캐나다에서 토론토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퀘벡주에서는 주도인 퀘벡시(Québec City)마저 제치고 가장 큰 도시이다. 캐나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들어봤겠지만, 퀘벡주는 캐나다의 다른 주들과는 달리 프랑스어가 유일한 공용어이다.
처음 캐나다 지역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프랑스인이었다. 1608년 퀘벡시에 누벨 프랑스(Nouvelle-France)의 첫 번째 정착지를 세우면서 프랑스 식민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지역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프랑스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7년 전쟁에서 프랑스가 영국에 패배하면서, 퀘벡 지역을 포함한 누벨 프랑스 대부분을 영국에 할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벡 주민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퀘벡주는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만을 공용어로 사용하는 주가 되었다. 오늘날 퀘벡은 유럽을 제외하고 프랑스어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북미의 파리”
몬트리올을 일컫는 이 수식어를 처음 들었을 땐, 솔직히 좀 웃음이 났다. 캬~ 북미의 파리라니. 미디어에서 포장하는 이런 수식어를 보면 정말 감탄이 나온다.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고 했던가. 분명 어딘가에 유럽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를 바게트를 든 사람들이 지나가며, 저녁이면 와인잔을 기울이는 풍경이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 속 몬트리올은 디르다. 프랑스와의 거리는 대서양만큼 멀고, 바로 남쪽에는 전 세계 문화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지리적 위치 때문일까. 이 도시는 유럽과 북미가 4:6의 비율로 섞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래된 유럽풍 건물들이 여전히 곳곳에 살아 있다. 구시가지(Vieux-Montréal)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몬트리올 시민들의 일상은 바게트와 와인보다는 베이글과 브런치, 그리고 미국식 카페가 훨씬 인기가 많다. 이곳에서 쓰이는 퀘벡 프랑스어(Québécois)는 파리에서 쓰는 프랑스어와는 확실히 다르다. 억양도 다르고, 단어도 다르다. 퀘벡 프랑스어는 프랑스 북부 지방에서 유래한 방언으로 그 사투리가 유독 심한 사람들의 발음을 듣고 있자면, 마치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섞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프랑스 본토 출신들도 퀘벡 프랑스어를 들으면 제대로 못 알아 듣을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북미의 파리”라는 수식어는 어쩐지 살짝 과장이 들어간 표현처럼 느껴진다. 문득 드는 생각은 프랑스와 퀘벡의 관계는, 어쩌면 한국과 중국의 연변 자치주와 비슷하지 않을까? 연변은 과거 많은 한국인들이 이주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이어온 지역이고, 지금도 한국어 억양이 서울과는 사뭇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중국과 한국, 그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정의하기 힘든 오묘하게 섞인 문화와 정체성을 지닌 곳. 그런데 그런 연변을 "중국의 서울"이라고 부르면 조금 억지스러울 것이다. 몬트리올을 “북미의 파리”라 부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퀘벡주를 여행하다 보면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지역이 생각보다 많다. 관광지인 퀘벡시 정도야 그나마 영어가 좀 통하지만, 그곳에서도 중장년층이나 노년층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몬트리올은 단연 예외적인 도시다. 도시의 규모 자체가 크고 다양한 산업이 자리한 만큼, 스스로를 ‘City of Bilingual’이라고 부를 정도로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존한다. 지하철에서 한 사람이 영어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프랑스어로 대답하는 진풍경도 가끔 벌어진다.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두 언어 모두를 교육 받는다.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접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 두 언어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몬트리올은 어디에도 그대로 맞춰 넣을 수 없는 독특한 도시다. 파리라 불리기엔 너무 캐나다스럽고, 캐나다라기엔 유럽스러움이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