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업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던 중, 알게 된 게 있다. 최종 합격 후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면 HR을 통한 리로케이션(이주) 프로세스가 시작된다는 것. 특히 다른 대륙에서 오는 경우, 그 준비 기간이 보통 6개월 가까이 걸린다고 했다. 일단 취업 비자가 나와야 하며, 해외 이사 업체를 통해 짐을 보내고, 그 후 출국 일정을 잡고, 현지 도착 후 임시 숙소에서 살며 집을 구하는 것까지 그 과정이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최종 합격한 시점이 10월 말이었으니 출국은 4월쯤이 되겠구나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직이 확정된 직장인처럼 행복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더 이상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무리하며 일할 필요도 없고, 직장 동료 눈치 볼 일도 없으며, 편한 마음으로 퇴사 준비를 하면 될 뿐이었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건 퇴사하고 해외 이주 준비를 시작하기 전 까지의 약 한 달 간의 ‘영혼의 백수 생활’이었다. 맛있는 것도 먹고, 미뤄뒀던 게임도 실컷 하고, 안 보던 친구들도 만나고, 심지어 짧게 여행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일본이냐, 동남아냐, 항공권 가격을 검색해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 합격한 회사의 리로케이션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향후 일정을 논의하자며 온라인 미팅이 잡혔고, 기분 좋게 미팅을 시작했다. 담당자는 친절하게 환영 인사를 건넨 후, 필요한 서류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예상 출근 일정을 말해주는데…"2월 중순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라는 것이었다.
엥?! 지금 11월 초인데….? 너무 갑작스러워 말문이 막혔다.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영어로 버벅대며 리로케이션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대 2주 정도는 미룰 수 있지만, 현재 당신이 투입될 프로젝트가 급하니 이 이상은 어렵다”는 단호한 답변만 해줄 뿐이었다. 안돼!!!!!!! 외국 회사도 결국 빨리 부려먹는 건 똑같구나!!!! 괜히 외국 회사는 여유 있게 일을 진행할 것이라 믿었던 내가 너무 순진하고 바보 같았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2월 출근에 반강제 합의를 했고, 정신없이 이주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그 주에 바로 회사에 퇴사를 알렸고, "유학 준비로 퇴사한다"고 둘러댔다. 해외 취업이 되었다고 하면 소문이 여기저기 퍼질게 뻔했고 온갖 말이 많아질 것이 딱 봐도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같은 일하고 있는 친한 동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은 비자 발급이 확정되기 전까진 퇴사를 미루려 했는데, 혹시나 비자가 거절되면 이건 뭐 와이프도 그렇고 둘 다 완전히 백수가 되어버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회사를 다니며 병행하기엔 도저히 무리였다. 그래! 지금까지 모범시민으로 살았으니 아무 문제 없겠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와이프랑 같이 다음주에 과감히 퇴사를 했다.
퇴사 후에는 본격적인 리로케이션 준비에 돌입했다. 관공서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떼고, 자동차를 중고 판매 사이트에 등록하고, 집주인에게 전세 해지를 통보하고, 해외 이사 업체 견적도 받고, 캐나다에서 쓸 생필품도 쇼핑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리로케이션 팀과 매주 미팅하면서 필요한 서류를 보내고 받고, 이사 준비까지 하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합격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정말 전혀 없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도 많았지만, 하루 종일 이사 준비를 하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되어 외출은 커녕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몇몇의 정말 중요한 사람들만 간단히 만나고, 나머지는 전화를 통해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다행히도 부지런히 준비한 덕에 전세 계약도 잘 해지하고, 차도 팔고, 캐나다 겨울을 버티기 위한 패딩, 부츠, 방한용품은 물론, 도착 후 당분간 먹을 한식 재료까지 알차게 준비하여 짐을 쌌다. 준비 과정이 정말 대환장 파티였던 것 같다. 마지막 날,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인사를 나눴고, 걱정하던 취업비자는 출국 일주일 전 무사히 발급되었다!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고, 드디어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서 디트로이트를 경유해 총 16시간에 걸친 비행을 마치고, 마침내 몬트리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