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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다시 프랑스어

몬트리올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머릿속을 맴돌았던 고민은 다름 아닌 “프랑스어를 제대로 배울 것인가?”였다. 이곳의 공용어가 프랑스어이니 당연히 배우면 좋다. 그걸 누가 모를까. 하지만, 프랑스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언어, 제대로 하려면 정말... 진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프랑스어의 특성 상 찔끔찔끔 배우는 정도로는 절대 진전이 없다. 그렇게 하다보면 늘 기초 수준에서만 맴돌게 된다. 각을 잡고 미친 듯이 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중급 문턱에 이르며, 그쯤 되서야 “아, 이 언어 그래도 정복해 볼 수 있겠구나”라는 최소한의 희망과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니 프랑스어에 대한 애정도 없고 공부할 각오도 없다면, 차라리 일찍 포기하고 영어권 도시로 이주하는 것이 현명하겠다고 느꼈다. 실제로 몬트리올에 온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큰 프랑스어의 장벽을 느끼고 다른 주로 이동한다. 그래서 나도 현실적인 조건들을 따져봤다. 커리어, 영주권, 생활비, 자녀 교육까지.


image.png 최근 갔었던 피자집의 불어 메뉴판. 로컬 음식점은 가끔 영어 메뉴판이 없을 때도 있다.


내가 속한 업계는 몬트리올에 관련 회사들이 가장 많다. 북미에서는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크고,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글로벌 회사들이 많다. 한 곳에 오래 다니기도 좋고, 이직에도 유리하다. 커리어 측면에서는 캐나다에서 베스트이다. 영주권은 어떤 의미에서 더 수월하다. 퀘벡에서는 2년 일하고 B2 수준의 프랑스어 시험 성적만 제출하면 신청 자격이 생긴다. 물론 그 B2라는 문턱이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조건이 단순한 만큼, 성적만 확보하면 길이 열린다. 배우자의 경우 초급만 요구되니 조금 수월하다. 타주는 나이, 영어 성적, 경력 등 경쟁이 치열한 반면 퀘벡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게다가 렌트비도 토론토, 밴쿠버보다 저렴하고, 자녀 교육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외면하면 몇 년 후 다른 도시로 이주해야 하고, 다시 영주권 조건 채우려면 가족도 나도 또다시 고생해야 할 것이다. 그냥 지금 내가 고생하면 나 이외에는 모두가 편해지는 상황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친밀감이었다. 공식 회의와 업무는 영어로 진행되지만, 대부분 직원이 프랑스어 원어민이라 평소 대화는 프랑스어로 한다. 마치 한국 지사의 글로벌 기업에서 영어로 업무 보고를 하면서도 서로는 한국어로 수다 떠는 느낌이랄까? 업무엔 문제 없지만 프랑스어를 모르면 자연스러운 친밀감 형성엔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이 있다. 물론 이런 것들에 개의치 않고 영어만으로 잘 생활하는 직원들도 있다. 근데 난 그렇게 언어적 장벽이 있는게 솔직히 불편했다. 나도 그들의 대화와 수다에 끼고 싶었다.


다행히 인터넷이나 소문으로 들은 프랑스어를 잘 못하면 압박이나 눈치를 준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프랑스어 못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특히 젊은 동료들일수록 더 그랬다. “프랑스어 안 해도 됩니다! 하지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어요!” 이런 분위기랄까. 왜냐하면 프랑스어 원어민 본인들도 프랑스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정말 쉽지 않다고…)


그렇게 약 한 달 간 필요한 정보도 찾고 회사의 분위기도 잘 살피면서 찬찬히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결국 여기서 계속 일하고 영주권도 따려면 프랑스어를 배우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난 결심을 했다. 2년 동안 프랑스어에 올인해서 DELF B2 자격을 취득하고, 이후에는 시험 대비가 아닌 진짜 회화를 목표로 공부를 계속하기로. 회사에서도 프랑스어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수준까지 오르자고.


그렇게... 무려 15년 만에 프랑스어를 다시 배우기로 결심했다.

사실 늦은 나이에 이런 도전이 살짝 두렵기도 했다. 직장인이라 시간도 부족하고, 나이도 있고, “나이 들면 언어 습득 힘들다”는 말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언어도 결국 지식일 뿐,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어차피 프랑스어 이후로는 새로운 언어를 배울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빨리 도전해서 배워 버리는 게 좋을 것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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