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시아노스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이른 아침 까미노의 맛을 알아버린 나.
급하지 않은 일정임에도 또다시 5시에 일어나 6시가 되기 전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새벽 까미노는 홀로라는 점!
그동안 늘 JH & SY의 랜턴에 의지해 새벽을 뚫고 걸었는데, 오늘은 나만 일찍 출발하기로 해 혼자 걷기 시작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여기에서 벗어나자 완전한 암흑이 찾아왔다.
가로등도, 집도, 차도 없이 헤드랜턴에 의지해 자연을 뚫고 나갔다.
너무 무서워서 CCM을 들었다. 뭐라도 의지할 구석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어두운 길을 걷는지 사진을 찍어 남기고 싶었지만 찍힌 사진에 귀신이 나오는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다가 아무것도 못해버렸다.
6시 반부터 서서히 동이 텄고 7.5km 떨어진 첫 마을에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도착했다.
마을이라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알베르게만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똑같은 풍경, 똑같은 길의 연속이었다.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지겨워질까 봐 그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애썼다.
다음 휴식지는 출발지에서 20km 떨어진 Reliegos(렐리에고스).
마을 초입에 엄청나게 큰 바가 있었지만 사람이 많아 조금 더 안쪽에 있는 바를 가기로 하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이게 웬걸? 주말이라 그런지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동네의 모든 바는 닫혀있었다.
동네 이곳저곳을 뒤졌지만 결국 난 쉴 곳을 찾지 못했다.
눈앞에 음식의 기회가 있을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까미노의 계획은 더더욱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 이 날 순례길 위의 깨달음이다.
결국 출발지부터 26km 지점에 있던 Mansilla de las Mulas(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다행히 컨디션도 날씨도 좋았고 11시 반에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5시 40분 만에 모든 일정을 마친, 부지런한 날!
이 날 캔디가 자기가 예약한 숙소로 나를 초대했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는 알베르게가 많지 않은 동네였다.
젊은 사람들은 알베르게가 없으면 다음 도시로 바로 넘어가는 선택도 했지만 나이가 있는 분들은 미리 철저하게 예약을 하고 다니는 편이었다.
캔디도 이 동네에서의 숙소를 찾다가, 마땅치 않아 6인실 아파트형 숙소를 예약한 상태였다.
어차피 돈은 자기가 냈고, 공간이 남으니 원한다면 JH & SY도 함께 오라고 했다.
우린 당연히 기쁘게,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숙소를 쓰게 된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 동네의 바로 들어갔다.
아침 내내 먹고 싶었던 또르띠야와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이 둘에 1.6유로였다. 뭐가 분명 잘못됐다고 생각되는 가격이었다.
계란 + 빵이 1유로, 커피는 0.6유로였다.
순례길의 물가가 천차만별이라지만 이 정도 금액은 듣도 보도 못했다.
게다가 맛까지 좋아서 곧바로 또르띠야를 하나 더 주문해 먹었다.
오후가 지나자 같이 숙소를 쓰기로 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도착했다.
캔디와 우리 셋, 그리고 킴은 고민 끝에 미리 예약한 숙소를 옮기면서까지 합류했다.
여기에 호주에서 온 Harinder(하린더)까지 6인의 숙소 동맹이 완성됐다.
하린더는 호주 대사였는데, 한국 뉴스 기사도 있는 분이었다.
보통의 삶이라면 평생 만날 일 없는 인연까지도 만나게 되는 곳이 까미노이다.
또 그런 사람과 같은 방을 쓰게 되는 것이 순례길의 마법이다.
공짜로 너무나 좋은 숙소를 쓰게 된 것에 감사하며 저녁식사는 한국인 셋이 준비하기로 했다.
다행히 디아가 있던 마을이었다. 어딜 가나 성공적인 파스타와 고기, 여기에 조금 힘을 줘서 감바스까지 준비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마치 오랫동안 음식을 해온 팀인 마냥 각자의 역할을 했다.
파스타와 고기는 JH님이 진두지휘했고, 나는 감바스를 맡았다. SY님은 필요한 재료를 엄청난 속도로 준비했다.
극강의 효율로 잔치상 같은 저녁을 완성했다.
난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선한 스페인의 재료로 만든 감바스는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의 비주얼이었다.
여기에 언제 먹어도 맛있는 JH님의 파스타와 고기까지 한상을 차리고 다른 세 분을 불렀다.
파티같이 차려진 상을 보고 다들 기뻐하셨다.
자식뻘의 동료 순례자들이 차린 저녁을 기특해하시는 듯했다.
여기에 하린더가 가져온 와인으로 오늘의 주인공 캔디를 위해 건배를 했다.
감바스는 맛까지 기가 막혔다.
한국 블로그에서 본 대로 라면스프를 넣었는데, 그게 킥이었다.
다들 새우와 올리브오일만으로 이런 맛이 나냐며 감탄했는데, 미국과 호주에서 오신 분들에게 라면스프가 얼마나 놀라운 재료인지 말하기 복잡해서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기고 말았다.
이 날 식탁에서 했던 대화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하린더는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까미노를 완주하지 못하고 호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래 계획해 온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자 약간은 좌절했지만 길을 걸으며 그 또한 이겨낸 상태였다.
그 말에 까미노의 길이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 드렸다.
순탄한 길과 어려운 길이 공존하고, 오르막의 끝엔 내리막이 있다. 또 어떨 때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한다.
이런 점이 인생과 같고 까미노를 이번에 완주하지 못한 것도 분명 하나의 계획일 거라고 위로했다.
부모와 자식뻘로 나이 차이가 나도 친구처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게 영어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또 킴, 캔디, 하린더 세 분 다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마음속 어딘가 자녀들을 향한 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말에 까미노 초반에 내가 깨달았던 것을 말씀드렸다.
엄마가 열심히 일하신 덕분에 나는 해외로 가 영어를 배울 수 있었고, 까미노에서 만난 모든 이들과 영어로 대화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배웠고, 이에 부모님께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로 감사하고 있다고.
이 말엔 세분 다 깊은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이후 2차로 킴과 하린더가 사 온 후식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이 무려 3종류였다.
국적에 상관없이 '디저트 배는 따로 있어' 하며 정신없이 달려들어 먹었다.
디저트를 먹으며 킴이 'Pope Francis reflecting from hospita, 교황의 병원에서의 회고'를 읽어주셨다.
병원의 벽들이 교회보다 더 솔직한 기도를 듣고, 공항보다 더 진실된 입맞춤들을 목격한다.
호모포비아가 동성애자 의사에게 치료받고, 특권층인 의사가 거지의 목숨을 살리고, 인종차별주의자를 유대인 의사가 치료하고, 경찰과 범죄자가 한 공간에서 치료받는다.
\Respect: do not comment, do not judge, do not interfere.
Love more, forgive more, embrace more, live more intensely!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읽어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좋은 분이 떠나셨다.
그렇게 배가 부르고 심장까지 뜨거워지는 충만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킴, 하린더와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오늘 나의 룸메이트는 하린더였다.
많이 걸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컨디션이 좋은 날이었다.
따듯한 침대에서 깨끗한 이불을 덮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