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by 아는개산책


도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도 매일같이 발도장을 찍던 동연에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이따금 교내를 활보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봉사


버스에서 내려 낯선 건물 앞에 섰다.

-나 여기서 뭐 하냐.


그냥 어린애들이야. 학교 끝나 따로 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 문제집 여기 있으니까 가져가서 대충 가르치고, 아, 놀아준다고 생각하면 돼. 라던 동건 선배의 말을 떠올렸다.


하-

괜히 한다고 했나.

봉사 무슨.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문 밖까지 새어 나온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누구세요?"


좁은 방 안, 기다란 테이블을 둘러 족히 열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그중 눈이 까맣고 동그란 여자아이가 빗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머리를 까닥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 안녕? 오늘... 어... 선생님이야."

한 손으로 뒷목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속이나 한 듯 우아아 소리를 지른 아이들이 코 앞까지 바짝 다가와 앉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며 찬찬히 아이들을 둘러봤다.


침이 바짝 마른다.


그때부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교재를 보기보단 새나가는 말이 훨씬 많았지만 아이들은 세상에 나 하나 서 있는 듯 시간을 채워주었다.


창 밖으로 어둠이 내려앉는게 보였다.

차마 가야한다는만 쉽게 나오질 않았다.


시계를 흘끔 쳐다보자 가장 질문이 많던 한 남자아이가 대뜸 손을 들었다.


"선생님, 도진 쌤 애인이"

"아닌데."


조건반사처럼 바로 대답이 튀어 나간다.

뒷목이 뻣뻣하다.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책으로 탁자를 탁탁 쳤다.

-도진 쌤? 오빠도 가르치나.


"에- 맞는데."

"맞네요! 선생님, 그럼 여자친구!"

"뽀뽀도 해봤어요?"


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다 혀로 마른 입술을 스윽 훑었다.


잘해줘. 정이 고픈 애들이야. 라던 동건선배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두 팔을 잡고 매달린 아이들의 눈이 나를 붙든다.


-같이 놀아?


흐음.


"그래, 사귄다. 선생님이 어-엄청 아깝지?"


마침내 씨익 웃으며 말하자 아이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손뼉을 치고 웃어댄다.


자꾸만 웃는 아이들 앞에서 나 역시 피식 웃음이 난다.


-광대가 다 아프네.

하는데 갑자기 묵직한 저음의 소리가 섞여 들다.


"누가 내 여자친구라고."


쿵.


고개를 번쩍 들자 열린 뒷 문 앞에 김도진이 서있다. 맨 처음 질문을 한 남자아이의 손에 팔이 잡힌 채.


"선생님, 제가 데려왔어요, 애인."


위풍당당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시선이 도진의 입술로 향했다.


-미쳤냐. 눈 들어!


양볼에 열감이 오른다.


"아아. 내 여자친구. 여기 있네. 응? 선생님?"


좀 전까지도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말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아... 나는..."

"가자, 태워줄게."


오오오- 낮게 깔리는 아이들 소리가 방 안을 메운다.


어질 하다.


-환장하겠네.


힘 없이 가방을 들었다.



호수


헬멧을 건네는 도진을 빤히 쳐다봤다.

처음 동연에서 마주쳤던 그날처럼.


"왜, 남자친구가 너무 잘생겼어?"

도진은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임에도 어제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머리만 두 을 거의 덮을 듯이 자라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헬멧을 받았다.

-지금이라도 버스 탄다고...


갑자기 커다란 헬멧이 쑥 하고 내려가더니 앞이 보이지 않는다. 크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도진이 헬멧을 살짝 올려 고정다. 그러면서 눈이 마주쳤다.


깜빡.

깜빡.


도진은 빙글 웃으며 헬멧 위로 콩하고 손가락을 튕긴다.


나는 한번 입을 달싹이다가 다시 꾹 다물고는 등 뒤에 올라탔다.

허리춤의 옷을 살짝 쥐고 최대한 몸을 뒤로 뺀다.


심장이

닿지 않게.


"꽉 잡아."

"......"


부아앙-


(꺄악)


봄바람이 스친다.

아니, 봄이 떠나는 길을 바람이 배웅한다.


도진은 학교 안 호수 근처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남자친구 운전, 어때"

엄지를 내보이며 물었다.


나는 다른 곳을 보며 헬멧을 건넸다.


"변변찮네요."


호수를 둘러싼 오래된 나무들이 숨죽여 대화를 엿듣는다는 호수.

돌계단 위에 나란히 앉았다.


"다친덴? 나았어?"


머릿속엔 수많은 말이 오갔지만 한마디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돌 사이로 불쑥 삐져나온 풀 몇 가닥을 연속으로 뜯었다.


도진은 작은 돌을 찾아 앞으로 던졌다.

"봉사. 오늘 넌 줄 몰랐네."


"동건오빠가 부탁해서."


"아아 동건형. 너, 동건이 형 좋아하잖아."


으응? 고개를 돌려 도진을 빤히 바라봤다.

도진은 시선을 피하며 몸을 뒤로 기댄다.


"잘했어, 맨날 아저씨들만 오다가 예쁜 선생님 보면 들도 신나고."


은?


코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선이 칼로 깎은 듯이 날카로운 옆모습이다.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안 왔어요. 왜왜왜 왜 왜.


도진은 큰 숨을 한번 내쉬더니 앞으로도 계속 오는지 물었다. 조심스런 말투였다.


"아뇨."


나는 말하면서 뜯은 잔디풀을 꼬기 시작했다.

도진이 손을 털며 나를 응시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괜히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정들면... 흠,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해서..."


말도 꼬이기 시작한다.

도진이 검지와 중지를 꼬아 이마에 딱콩을 날린다.


"뭔 소리야, 그 작은 머리로 뭘 멀리까지 생각해."


입을 닫고 무릎을 세워 고개를 기댔다.

꼬아놓은 풀을 들어 보는데 앞으로 반짝이는 호수가 보인다.


예쁘다.

너도 내가 예쁘다고 해줄게.


"미리 결론부터 짓지 마. 하... 쪼그만 게 성격만 급해가지고."

"......"

"그냥 하루. 하루 하다 보면. 또 네 생각이랑 달라."


도진이 호수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그래. 뭐. 강요할 건 아니고. 안 겪으면 모르지."


나는 귀에 붙은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오빠는 언제부터 가르쳤지.

아니.


그날은 왜 안 왔어.


"오빤 뭐. 다 알아요?"


"응."


움직임을 멈추고 잠깐 뜸을 들이다가 도진이 얼굴을 돌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호수 안 윤슬처럼 눈동자가 흔들거리며 빛난다.


"나도 고아야."


눈이 커졌다.

그리고 빙긋 웃는 도진을 보며 묻고 싶던 말을 삼킨다.


-대체 왜.


언젠가 유진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친다.

'요즘에 동연에 사람이 없어, 도진오빠도 집에 누가 아프다고 학교도 안온다는데.'


고개를 돌려 다시 호수로 향하는 도진의 시선을 따라 호수를 바라봤다.


바람이 멈추면 저 물결의 흔들림도 멈추겠지.

흔들림이 멈추면 반짝임도 사라지나.


부드러웠던 봄밤의 공기가

조금씩 데워지고 있다.


"꼬맹, 갈까? 오늘 동연사람들 술 마신대. 오빠랑 같이 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한 번은 고아가 되는 거예요.

그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여자친구도. 없어요?"


나는 바로

내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목, 토 연재
이전 08화남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