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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좀 지켜 (2)

그 창고

by 아는개산책

(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창고 안에서


노란 플라스틱 상자 안에는 드릴이나 각종 공구, 오래된 서류들이 두서없이 들어있어, 평상시 그 자리까지 발걸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상자들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여 있는 구석진 공간 한켠에 나와 현주는 숨을 죽이고 몸을 숨긴다.


꼬옥 꼬옥.

머리카락 보일라.


그 와중에도 현주가 조용히 묻는다.


'과장님, 여기 쥐 있는 거 아니겠죠?'


-두 여자 벗고 있는 걸 쥐가 보는 게 낫겠지, 사람이 보는 것보다.


"쉿, 쉿"


나는 대답 없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제발 닥쳐주길 바랐다.


"그래서? 호텔 가서?"


-강훈이다.


"호텔 가서 뭐 했겠어요, 나는 완전 취해서 뻗었는데, 와 그분 장난 아니더라"


인겸의 목소리가 끝나고 곧바로 담배연기가 숨어있는 자리까지 스며든다.


-이 자식들...


그리고 한참을 떠드는 호텔 침대 위, 오르락 내리락 아기가 생길 뻔 한 이야기들.

현란한 기술얘기를 하는데 받아 적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담배 두 가치 정도를 각자 태우고는 그 둘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자, 팀장 왔겠다."

"고과장은 왔어요?"


고오 과아 자아앙?

'님'자 어디 갔니?


"아 몰라, 그분은 뭐 가방을 가지고 다녀야 출근했는지 퇴근했는지를 알지"


웃기지도 않은 말에 둘은 하하 거리며 문을 닫는다.


"어휴, 저 둘 뭐야아?"


현주가 벌떡 일어섰다.


"야, 빨리 옷 입자"


나는 서둘러 남은 발 한쪽의 입구를 찾아본다.

한쪽 다리를 들자 몸이 기우뚱-


"아니 , 그래서 그건 그 여자한테 준 게 아니라고, 아 좀 믿어봐"


우린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대로 주저앉는다.


'아씨, 여기 추운데 무슨 아침부터 다들'


-시체안치실은 더 추워.


나는 조용히 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어막는다.


"여기서 그 여자 얘기가 왜 나와? 만난 적도 없다니깐. 여기 회사 상무, 상무한테 빌려준 거라고."


-넘버 투다.


온갖 짜증이 섞여 있는 말투에 상대방이 누구인지 뻔히 짐작이 간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변명을 하고 또 하고.

무한 굴레의 통화.

속절없이 시간만 흐른다.


"아우씨, 짜증 나니까 끊어. 들어간다."


탁 소리와 함께 신경질적으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욕이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아침 댓바람부터 속옷만 입고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과장님, 우리 일어나도 되겠죠?"


힘 빠진 그녀의 목소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창고문이 한번 더.


쾅-


어 엉엉엉. 엉엉 엉엉....


어린아이처럼 참지 않고 터지는 이 울음소리는.

누구지?

숨죽인 채 귀를 쫑긋한다.


"나 이제 어떡하라고 흐어 엉엉. 오빠가 책임지라고 엉엉. 그러니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 엉엉"


하...


"흑, 흑, 어, 어, 어어 맞다고오!. 응..."


나와 현주는 눈을 한번 마주치고 다시 작은 틈사이로 다 보이지도 않는 그녀를 살핀다.


-같은 여자인 데에. 나갈 수가 없잖아아아.


"흑, 응... 결혼? 정말? 흑.. 응.. 알았어. 응. 그럼 이따 여기로 와. 흑 엉엉엉"


여자의 눈물이 결혼에서 멈췄다.


'나갈까요?'

'애 떨어질지도 몰라'

'네...'


전화가 끊기는 소리가 분명히 났는데 움직임이 없다.


"히힛"


응? 두 명인가?


"크크크. 나도 결혼한다! 애들 알면 놀라 자빠지겠는데? 이 지겨운 회사도 안녕이다, 이제."


목소리는 누구보다 씩씩했지만, 우리는 조용히 앉아있길 잘했다 싶다.


그녀는 죽대며 중앙의 탁자 위에 걸터아 휴대폰으로 쁘게 문자를 보낸다.


'다리 저려요'


이렇게 피곤한 아침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사람들은 회사밖에서 참 많은 일들을 하는구나.



창고밖에서


서둘러 각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창고문을 텅 다.


-깜짝아, 뭐야?


문 앞에는 조금 전 창고 안에 들어왔던 강훈, 인겸 그리고 넘버투와 그녀까지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헉, 아니 왜..."


"비밀. 지키실 거죠?"


인겸이 윽박지르듯 묻는다.


끄덕끄덕.


팔짱을 풀며 그녀도 보탠다.


"누구한테 말하기만 해 봐, 그땐"


-반말이야?


그런데 무섭게 다가오는 그녀가.

내 머리카락을 잡는 건 아니겠지?

손이 다가온다.


"악"


역시,

착각이다.


너무 많은 비밀을 엿듣다 보니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던,

그들만의 이야기들.


"하.."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뒤에서 옷매무시를 다듬는 현주를 돌아본다.


"괜찮아?"


"네? 네! 과장님, 옷 잘 어울리던데요? 어떻게, 사다 드려요?"


맑고 투명하고 햇살 같고 속 없는 구름 같기도 하고.


"됐어..."


-네가 입으니까 이쁜 거지. 내가 입으니까 걍 스머프더만.


낮말은 새가 듣고 아침말은 스머프가 듣는 우리회사.


"사무실이나 가자"


현주가 폴짝이며 나의 곁으로 와 팔짱을 쏙 낀다.


좋다.

너랑 있으니

아무 없었던 것도 같.


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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