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영성체 – 죽음의 문턱에서 신앙의 일치를 그리다

명작을 찾아 이탈리아를 뒤지다

by 다두



Last Communion - Domenichino



현재 바티칸 미술관에 있는 도메니키노(Domenichino)의〈성 제롬의 마지막 영성체>(The Last Communion of St. Jerome)는 바로크 시대 종교화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1612–1614년경 419 × 256 cm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Oil on canvas)로 그려져 로마의 산 지롤라모 델라 카리타(San Girolamo della Carità) 성당의 제단화로 그려졌다.


작품은 죽음을 앞둔 90세의 제롬이 마지막 성체를 받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무릎을 꿇은 늙고 쇠약한 제롬은 벌거벗은 상반신에 붉은 망토를 걸치고 생의 마지막 성체를 받아 모시며 죽음의 순간을 경건하게 맞이한다.


금색 사제복을 입은 사제는 성체를 들고 제롬에게 다가선다.


제롬의 옆에는 제자들과 함께 머리에 베일을 쓴 성 파울라(St. Paula)가 무릎을 꿇고 제롬의 손에 입을 맞추고 있다. 그녀의 딸 성 유스토키옴은 성서를 들고 제롬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다. 제롬의 상징인 사자(lion)도 제롬과 평생을 같이 해서인지 늙고 지친 모습으로 조용히 바닥에 머리를 내려놓고 있다.


파울라는 로마의 귀족 여성으로 제롬의 가장 헌신적인 후원자이자 제자였다. 그녀는 제롬과 함께 베들레헴에 수도원을 세우고 금욕 생활을 실천하며 순례자와 가난한 이들을 도운 초기 기독교의 여성 성인이었다. 특히, 그녀는 제롬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Vulgata) 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유스토키움은 파울라로의 딸로 역시 어머니와 함께 제롬을 따르고 헌신적으로 보좌한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제롬의 성경 번역 작업을 직접 보좌했다.


작품의 명암은 그리 극적이거나 연극적이지 않다. 강렬하지는 않으나 화면의 주제를 조명하는 은총의 빛은‘성체’에서 시작해 제롬을 비춘다. 성체성사의 신성함이 제롬에게 직접 닿는 순간을 빛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롬의 마지막 순간을 은총(grace)으로 가득 차게 하는 성체의 신학적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천사들이 등장한다. 천사들은 제롬의 최후의 영성체의 증인으로서 제롬의 영혼을 곧 하늘로 인도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도메니키노는 볼로냐를 중심으로 활동한 카라치 형제의 제자였고, 이 작품도 아고스티노 카라치(Agostino Carracci)가 10년 전에 그린 같은 주제의 작품을 참고해서 제작했다. 이 때문에 동료 화가 란프랑코(Lanfranco)는 표절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푸생(Poussin) 등 다른 동료들은 도메니키노의 독창성을 적극 옹호해 주었다.


푸생은 도메니키노가 카라치 학파 출신으로 고전적 균형감과 자연주의적 관찰을 결합한 이 작품은 이전의 유사한 작품들보다 훨씬 절제된 감정으로 종교적 서사를 균형되게 묘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메니키노의 작품은 삼각형 구도에 인물들을 안정되게 배치하고, 성서의 서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고전주의적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카라바지오처럼 극적이거나 루벤스처럼 폭발적이지 않으면서도 정제된 양식의 숭고함을 극대화하는 특유의 기법으로 평가되었다.


제롬은 4세기-5세기 초에 활동한 신학자이자 성서학자로서,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작업은 중세와 근세 가톨릭교회의 신학적 근거와 예배 교육의 표준이 되었다.


제롬은 젊은 시절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이후 시리아 사막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금욕과 고독 속에서 성경 연구에 몰두했다. 이 경험은 그를 지적 수도자의 전형으로 만들었고, 이후 금욕을 강조하는 수도원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고행의 삶은 어느 날 발에 가시가 박혀 절뚝거리는 사자를 발견하고 그 가시를 빼주었는데, 이 같은 은혜에 따라 사자가 평생을 그의 동반자로 함께 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런 까닭에 중세 이후 그의 도상(iconography)에는 책, 두개골, 사자, 붉은 옷, 돌, 사막, 동굴 등이 함께 한다. 책은 그가 성경의 번역자로서 신학자임을 상징하고, 두개골은 그의 금욕과 죽음의 명상을 상징한다. 사자는 그의 전설적 동반자로서 지혜를 상징하고, 붉은 옷은 교회와 신학의 권위를, 돌은 회계와 금욕, 사막은 은둔과 고독을 상징한다. 그는 동굴에서 은둔하며 돌로 자신의 가슴을 찍으며 회개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도메니키노는 1581년 볼로냐 출생으로 본명은 도메니코 잠피에리(Domenico Zampieri)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키가 작아 ‘작은 도메니코’라는 뜻의 도메니키노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동네의 화가 데니스 칼바르트(Denis Calvaert) 밑에서 배웠지만 성격이 맞지 않아 뛰쳐나왔고, 이후 카라치 가문의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키웠다. 카라치 학파는 당시 이탈리아 미술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집단으로, 도메니키노는 그들의 가장 뛰어난 제자 중 한 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602년 활동의 무대를 로마로 옮긴 도메니키노는 안니발레 카라치의 작업을 도우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명문 파르네세 가문의 궁전(Farnese Palace) 장식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여러 귀족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화단과 교회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으며, 그로타페라타 수도원(Abbey of Grottaferrata), 산토노프리오(Sant Onofrio) 성당의 벽화를 그리고, 산 그레고리오 마뇨(San Gregorio Magno) 성당의 <성 안드레아의 채찍질> 등을 제작하며 로마의 화단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 나갔다.


도메니키노는 바로크 시대 화가이지만 카라바조처럼 극단적 감정과 명암 대비를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라파엘로나 코레조의 고전적 조화를 계승하며,‘바로크 고전주의’라고 불리는 독자적 화풍을 확립하였다.


그의 작품 <성 제롬의 마지막 영성체>는 라파엘로의 <변모>에 필적할 만큼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도메니키노를 명실공히 거장의 반열로 올리는 계기를 이루게 하였다.



Trasfigurazione - Raffael



도메니키노는 말년에 나폴리로 내려가 성 야누아리우스(St. Januarius)의 생애를 그린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와중에 그는 기존에 나폴리 지역에서 활동 중이던 화가들로부터 심각한 질투와 왕따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가 1641년 나폴리에서 사망했을 때 일각에서는 지역 화단의 경쟁자들로부터 독살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도메니키노는〈성 제롬의 마지막 영성체>를 통해 제롬의 생애 중에서도 신학적으로 가장 의미 깊은 순간을 묘사했다. 성인으로서 제롬의 삶이 마지막 성체성사(Eucharist)를 통해 완성된다는 가톨릭 신학의 핵심 교리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영성체는 가톨릭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실제로 받아 모시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신학적으로 실체 변화(transubstantiation)의 의미를 상징한다.


실체 변화란 빵과 포도주의 겉모습(사물의 성질)은 그대로 남지만 그 실체(essence)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가톨릭의 중대한 교리 중 하나다. 이 같은 개념은 토마스 아퀴나스 등을 중심으로 한 중세 스콜라 신학을 통해 정립되어 유래한다. 스콜라 신학은 영성체란 빵과 포도주를 매개로 그리스도의 본질과 일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체를 ‘영혼의 양식’이라고 정의했다.


가톨릭에서는 특히,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의 마지막 영성체를 비아티쿰(여행길에 필요한 양식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라 부르며 영성체 중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행하는 영성체는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은총의 선물로서 육신이 행한 신앙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메니키노가 활동하던 17세기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이 성사 중심의 교리를 강하게 확인하던 시기로, 성체성사는 개신교와의 논쟁에서 가톨릭의 정체성을 주장한 핵심 교리였기에, <성 제롬의 마지막 영성체>와 같은 종교화는 가톨릭 신학의 정통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반종교개혁 운동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특히, 성 제롬처럼 평생 학문과 금욕으로 신앙을 탐구한 인물에 대한 마지막 영성체는, 그의 삶 전체가 죽음의 순간에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절정을 이루고 구원의 확신을 받는 성사적 행위로서, 성인의 삶 전체를 응축하는 신학적 의미의 절정을 이루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9세기 이후 바티칸은 예술품 수집 활동을 강화하며, 로마 내 주요 성당의 제단화 중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바티칸으로 이전하였으며, 도메니키노의 이 작품도 당초 내걸렸던 성당에서 떼내어져 바티칸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미술사도 도메니키노의 〈성 제롬의 마지막 영성체〉를 바로크 종교미술 가운데 성체성사의 신학적 의미를 가장 깊이 있게 시각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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