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있든,
멀리 떨어져 지내든
늘 그 생각을 갖고 살았고,
지금도 가지고 다니는 마음이 하나 있다.
당신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이유는 어떤 걸까.
어떤 목표라든가,
당신에게 힘이 되고 활력이 되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어쩌다 한 번쯤 느끼는 마음이 아닌,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던 나만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을
받기만 해 오던 내가
온전히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했을 때였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당신은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안했다.
이별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조금 흐르고 연세가 드시면서
안 그래도 많던 걱정은 더 늘어났고,
마치 미리 작별 인사를 하듯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거나
곧 갈 때가 되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뱉는 그 말들 하나하나가
오히려 나에게는 상처가 되어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당신 앞에서 운 적도 많았다.
그때도 궁금했다.
아니, 그땐 바랐다.
나와 함께
그 무렵엔 일주일에 한 번씩,
잘 못 보더라도 길게는 두 주,
한 달에 한 번쯤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외식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드라이브를 하며
좋고 예쁜 것들을 함께 보면서
그 시간이
당신의 삶의 낙이자
살아갈 이유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며
“다음 주에 또 올게.”라는 말과 함께
헤어질 때쯤이면
“다음엔 회가 맛있는 데가 있다던데, 거기 가보자.”
“다음엔 한식 먹어보자.”
라며 내일을 기약하듯 말하는
당신의 모습에
나는 크게 안심하곤 했다.
나태주 선생님의
「너를 아끼며 살아라」라는 글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이유가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내일을 기다릴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하고 있었던 생각이지만,
이 문장은 그 마음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에,
왜 당신이 떠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