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늘 밤 10시쯤이 되면
내 목소리를, 내 안부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왜 그 시간을
그렇게 귀찮아하기도 하고,
힘들어한 적도 있었을까.
음악을 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나는
매일의 시간이 다르다.
출근도, 퇴근도 정해진 게 없고
그 변화에 익숙해진 지도 오래다.
그래서 나는
늘 밤 10시쯤 당신에게 전화를 한다.
그 시간을 넘기면 넘겼지,
일찍 거는 일은 거의 없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할까 봐
한참을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딱,
내 모습 같았다.
일정하지 않은 시간을
아무리 설명해도
썩 시원한 대답이 되지 않았나 보다.
낮에 전화를 하든,
밤 9시에 마쳐 전화를 하든
질문은 늘 같았다.
요즘 일이 없냐고,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러냐고.
처음엔 대답했지만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말수는 더 줄었다.
정말로 일이 없던 날들에는
나 스스로의 불안과 자괴감에
같은 질문에
괜히 화풀이하듯
짜증을 낸 적도 많았다.
밥은 먹었는지,
이제 집에 가는 중인지.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는 당신과의 연락은
오로지 전화뿐이었고,
전화가 오랫동안 되지 않는 날이면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하는 불안에
다른 일에 집중을 못할 때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같은 질문이 돌아오는 밤이
숨이 막혔다.
얼마 전
나는 이런 소통이 힘들다고
당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매일 연락하는 것보다
정말 생각날 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연락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의미 없는 대화 같다는 생각에
결국 뱉어버린 말이었다.
그때 당신이 말했다.
“나이 많은 할머니를
니가 이해해 주면 되지.
니도 니 이야기 안 하면서.”
그 말은
강요처럼 들리지도,
부탁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당연하게 이해해 달라는 말을
듣는 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건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재미없고 뻔한 대화를 넘어
그저 내 목소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내 목소리 하나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지
느껴줄 사람.
나 역시
당신의 목소리 하나로
힘이 없는 하루였는지,
괜찮은 하루였는지
궁금할 사람이란 걸.
투박하고
빈 여백이 많은 통화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알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보세요.’
이 한마디로.
감기에 걸렸을 때도,
친구를 떠나보냈을 때도,
내가 주말에 간다고 했을 때도,
엄마의 기일이 다가올 때도,
내가 당신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을 때도.
떨어져 있어도
‘여보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우리는 안심하고,
걱정하고,
서로의 하루를 궁금해한다.
그거면 된다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전화를 받지 않으면
괜히 기다리게 되고,
다시 걸어보게 되고,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마음이 쓰이는 사람.
나도,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