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인 나는
아마 언제까지나
어른인 당신 앞에서
어린아이로 남을 것 같다.
서른이 넘었음에도
늘 나보다 나를 더 챙기는 사람.
나이가 들어 아픈 건
당연한 일처럼 여기면서도,
나는 아파서는 안 되고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사람.
그 마음이
걱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내가 누구보다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내게
돈벌이는 되느냐고 핀잔을 주듯 말하면서도,
내가 낸 앨범은 늘 열 장이 넘게 사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사람.
공연을 한동안 하지 않으면
요즘은 공연을 안 하느냐고 묻는 사람.
내가 그렇다고 말하면
이참에 딴 일을 하라거나
이제 음악을 그만두라는 말 대신
아무 말 없이 침묵으로 지켜보는 사람.
외식하는 날이면
내가 사주고 싶어도
끝내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
몰래 계산한 날이면
집에 돌아와
만 원짜리와 오만 원짜리 종잇돈을
내 손에 쥐여주는 사람.
지금 해줄 수 있을 때 하는 거라며,
나중에 자신이 그렇지 못할 때
그때 해달라고 말하는 사람.
그 모습에
속상한 마음으로 다투다 지쳐
덕분에 잘 얻어먹는 사람이 된 지금의 나는,
어디선가 우연히 읽고 보았던
한 문장이 겹쳐 떠올랐다.
나이가 들수록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우울해지고
부모라는 역할을 잃어간다는 감각 속에서
삶의 의미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그 감정은
행복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로 행복한 걸까.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계속 곁에 있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싶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 철부지로 남겠다.
어느 날,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오래된 상자 하나를 들고 거실로 나와
어릴 적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중학생쯤,
아니면 고등학생이었을지도 모를
그 시절의 모습.
사진을 보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가장 먼저 닿은 감각은
그저
먹먹함이었다.
당신이 지나온 세월 속에
내가 지나온 날들이
겹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대화가 어려울 때마다
나와 같은 나이를 상상하며
친구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눠왔음에도,
그런데도
왜
그 사진들 앞에서
마음이 이렇게
먹먹해졌을까.
그 소녀는 참 예뻤다.
정말로
예쁜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장난을 많이 치는 사람이었을까.
성격이 좋고, 재미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아이였을까.
잠깐 스친 궁금함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어른이 된 모습과 마음이
이미 충분히 예쁘고,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소녀가
먼 미래의 자신을 만난다면
분명 자랑스러워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이미
어른으로서
철부지 남편과 딸을 지켰고,
마지막 철부지 손녀까지 사랑하며
가족을 지키는 데
자신을 다 써온 사람이니까.